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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나무 숲에서 보는 나, 그리고 우리

등록 2005-07-24 18:25수정 2005-07-24 18:27

글쓰기 교실
우리 학교 기숙사 창문으로 내다보면 붉은 빛이 세월에 바랜 작은 기와집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자그마한 기와집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대숲이 보인다. 하늘을 향하여 곧게 솟은 대나무 숲을 보면 나는 늘 생각에 잠긴다. 대나무는 결코 홀로 자라지 않으며, 그렇다고 우거진 대나무 숲의 대나무들도 모두 똑같은 모양도 아니다. 서로 잎이 다르고 마디가 다르고 길이가 다른 대나무들이 푸르름 속에서 하나가 되어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렇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너 혼자서도 살 수 없다. 나와 네가 모여 우리가 될 때 비로소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대숲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사회 속에서 우리만을 강조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렇게 된다면 자아 실현이 어려워진다. ‘우리’ 속에 갇혀 개인의 자아는 희생되고 말 것이다. 자아 실현은 본능적인 것이며 또한 그 노력으로 개인이 발전하고, 개인의 발전은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즉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실현이 늘 공동의 규범 안에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한번은 우리 학교에서 교복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두발이나 교복의 제한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나 자유로운 또는 단정하지 못한 복장 때문에 교복을 입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 교복을 입어 보지 못한 친구들은 우리가 용정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으로서 교복은 필요하므로 꼭 입자는 의견과, 교복이라는 틀 안에 묶여 자유가 제한당하므로 입지 말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팽팽한 논쟁을 벌였다. 논의는 몇 주나 계속되었고, 학부모님들까지 논쟁의 장으로 합세하여 대토론회가 되었다. 결론은 각자 알아서 단정하게 입는 선에서 교복은 입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그 긴 논의의 시간 동안 우리는 막연한 자유에 대한 동경과 공동체로서 우리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의 의견은 무시되고 어른들이 무조건 결정을 하였다면 우리는 오래도록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답안을 찾아냈던 것이다. 모두가 그 결정을 환영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 결정에 대해 불만을 갖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도 대나무 숲을 보며 배운다. 당당하게 하나하나의 대나무로서 자신을 세워 나갈 때 아름답고 웅장한 숲이 된다는 사실을. 숲 속에서도 나는 나로서 꿋꿋하게 하늘을 향해 선다. 우리 사회도 저 대나무 숲처럼 아름다우면서 개인 각각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다은/보성 용정중 3학년

[평] 대숲 생태와 공동체 잘 엮어 창의적 주장

교복 문제로 몇 주 동안 토의하고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해 주는 학교. 개교한 지 3년째인 대안학교. 전교생 69명인 학교. 무성한 대나무 숲과 들판과 보성강 푸른 물결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학교. 자연 친화적인 교육으로 고운 품성을 기르고, 토의 토론 수업을 열심히 하고, 지리산 종주 체험 학습도 하는 학교. 참된 가르침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학생들을 존중하며, 꿈과 행복을 심어 주는 학교에 우리의 자녀들을 보내고 싶다.


이 글을 쓴 학생은 대나무 숲을 보며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사색하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중3 학생에게는 약간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 내용인데도 대숲의 생태와 관련지어 자기 주장을 창의적으로 펼쳐 나가 글을 읽는 재미를 준다. 아쉬운 점은 피동형 문장이 너무 많으므로 ‘대토론회를 열었다.’, ‘결정하였다.’ 따위로 바꾸어 썼으면 한다.  박안수/광주국어교사모임 회장, 전남대사대부고 교사 ansu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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