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명중학교 통합논술세미나 수업 모습.
한겨레방과후학교 현장 리포트-수명중학교 한겨레통합논술세미나
3월21일 오후. 지난 학기에 이어 개설된 서울 수명중학교 통합논술세미나 방과 후 교실의 두 번째 수업이 열리는 날이다.
이날 수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작가인 고 박완서의 소설 <자전거 도둑>과 <옥상의 민들레꽃>을 읽고, 쟁점에 대한 모둠 토의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본 수업의 첫 활동은 독서한 내용을 떠올려 볼 수 있도록 간단한 독서 이해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 학생들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활동지에 써본 뒤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름대로 서술해보았다.
선악의 이분 구도를 중심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을 비교적 잘 파악하는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주제나 쟁점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인물의 다양한 측면을 포착하는 것이 필수다.
“전래동화는 선악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전거 도둑> 같은 현대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가진 복잡다단한 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주인공 주변 인물의 성격을 좀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고급차 주인’ 처지에서 역지사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방적이고 고압적으로 구는 자세는 ‘악인’의 면모로 볼 수 있으나, 수남에 대해 연민을 나타내는 장면, 행색이 초라한 수남을 본 뒤 수리비를 반반씩 나눠 내자고 제안하는 부분을 보면 평범한 도시인의 합리성도 지녔다. 나머지 인물들도 좀더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제시하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의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 이 소설에서 짚어야 할 첫 번째 쟁점은 소설 단계 중 절정 부분에서 ‘수남이 한 선택의 정당성’이다.
쟁점 찾기를 위해 소설의 내용과 비슷한 도덕적 선택 사례를 다룬 한 시트콤 동영상을 편집해 잠깐 보여준 뒤, 소설의 상황과 어떤 점이 유사한지 문답식으로 나눠본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모둠 토의 시간. 4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학생들은 작품의 주인공인 수남이가 자전거를 들고 도망친 것이 정당한지를 놓고, 찬성과 반대의 논거를 찾아 모둠의 의견을 정리, 발표했다.
세 모둠은 대체로 수남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내며 다음과 같이 이유를 내놨다.
“고의성이 없더라도 자신의 부주의로 남에게 분명한 피해를 입힌 것은 분명하다. 실수로 남의 물건을 훼손하고 배상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본 사람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남은 고급차 주인에게 배상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강민경, 김채원 학생)
“수남의 상황을 배려해서 수리비도 전체의 절반만 물도록 했는데,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지 않고 도망갔으니 이는 도둑질이나 다름없어요.”(윤현, 김지혜 학생)
“수남은 정직하게 도둑질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와 약속도 했는데, 이를 어긴 것이고 스스로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습을 보면 잘못한 것이 분명해요.”(홍재훈, 송수익 학생)
반면 수남의 행동에 정당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뜻밖의 강풍이 불었고, 고급차 주인은 전혀 잘못이 없고 사고의 원인은 100% 수남의 잘못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됐다.”(정은우, 장희지 학생)
토의 발표 이후, 찬성과 반대의 논거에 대해 상호 반박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홍재훈 학생은 수남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논거와 관련해 “고급차가 훼손된 원인이 100% 수남의 잘못이 아닐 수 있지만, 그렇기에 고급차 주인도 절반씩만 책임을 지자고 수남에게 말했던 것”이라며 “그 절반의 책임마저 못 지겠다고 도망친 수남의 잘못이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토론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지금까지 나온 모둠 토의 및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같은 주제로 ‘모둠’이 아닌 자신만의 ‘견해’를 자유 분량으로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뒤라 글감이 풍부해져서인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모두 글을 완성했다. 풍부한 어휘나 표현이 돋보이지는 않았으나 사고의 폭은 더 넓혀 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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