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대강당에서 열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주최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유미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학교폭력에스오에스(SOS)지원단장의 학교폭력 중재전문기관 필요성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퇴학 당하면 그만”…처벌강화 안먹혀 학습소외 등 원인 여전
피해자 공감기회 줘야 “안 걸리면 그만이잖아요?”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1학년 ㄱ(16)군에게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은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즉시 출석 정지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징계 사항 기록 △강제 전학 등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경찰도 올 초부터 “4월까지 학교폭력을 뿌리뽑겠다”며 이른바 ‘일진회’ 소속 학생이나 ‘학교 짱’ 등을 직접 관리하고 상습 폭력도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ㄱ군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지난달 교과부가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에서도 ‘학교 폭력을 행사한 적도, 당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ㄱ군은 “걸려서 학생부에 기록이 남아도 상관없고, 전학이나 퇴학도 시키면 당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얘기도 비슷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장은 “조금만 잡아주면 나아질 학생들이야 ‘학생부에 기록되면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른다’며 위축이 됐지만, 가해 정도가 심각한 학생들은 처벌이 무섭다고 하던 일을 안 할 아이들이 아니다”며 “가정 문제나, 장기간의 학습 부진으로 학습 소외현상이 일어나면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학교 폭력의 가해 원인인데, 이는 처벌을 강하게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가해학생 처벌 강화가 사후 조처로서는 의미가 있으나, 학교폭력 자체를 줄이는 근본 대책일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황준원 강원대병원 소아정신과 의사는 “처벌이 강화되면 징계가 두려워 학교폭력이 줄어들거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들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처벌이 두려워서 행동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1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가해 행동을 하지 않게 된 이유’로 가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나쁜 행동임을 알게 되어서(65%)’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처벌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재영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원장은 “가해 학생들은 자기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몰라 폭력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사회 등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은따는 괜찮겠지”…방관자엔 무대책 가해·피해 이분법 접근 한계
폭력과 장난 구별도 못해 *은따 : <은밀히 따돌림> 경기도의 한 중학교 2학년인 김아무개(14)군은 지난 2월 학교폭력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1학년 내내 한 학생에게 뺨을 맞고 “고자”라며 고환을 발로 차였다. 가해학생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부터 교내봉사 등 징계를 받았지만, 김군은 그 뒤 친구들과 교사들한테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김군의 어머니 정아무개(43)씨는 “애들이 ‘니가 고자질 했냐’, ‘니네 엄마가 합의금을 얼마나 요구했냐’는 황당한 얘기를 한다는데, 교감도 ‘친구를 경찰에 신고한 애랑 어떻게 어울리겠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교과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학교 현장엔 학교폭력과 장난을 구별하는 기본 인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라는 이분법에 치우쳐 또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방관자’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학생들은 아직도 맞거나 때리는 것만 ‘폭력’으로 생각한다. 서울 ㅅ고 이아무개(18)군은 “‘은따’(은밀히 따돌림)는 있지만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노페(노스페이스) 점퍼를 빼앗기거나 맞는 심각한 폭력은 없다”고 말했다. 임정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사(서울 한양공고)는 “얼마 전 친한 친구의 알몸을 사진으로 찍은 아이들과 그걸 방관한 아이들이 있어 학급 전체에 공개사과를 시킨 일이 있다”며 “아이들에겐 장난과 폭력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직접 찍지 않아도, 지켜보기만 해도, 또 아무리 친해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 금품갈취, 모욕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집단 따돌림도 마찬가지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한 교실 또는 한 학교가 따돌림에 가담해 다수의 방관자·방조자가 있는 ‘왕따’ 문제에는 정부의 대책도 통하지 않는다”며 “모든 학생이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교실 안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가해학생도 피해학생도 왕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생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적인 처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핀란드에선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키바 코울루 프로그램’을 1년에 20시간씩 교육한다. 박종효 건국대 교수(교육학)는 “방관하는 학생들이 피해자를 도울 수 있도록 학급별로 최소 8~9시간의 집중 교육을 실시하는 등 학교와 학생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대화 주선조차 못해”…쪼그라든 교사 권한 줄고 행정보고만 강화
학생·가족 등 소통대책 필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선 지난달 3학년 학생끼리 폭력을 행사하며 다툰 일이 발생했다. 학기 초에 서로 긴장한 상태에서 감정이 틀어져 발생한 사건이었다. 학교는 교과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에 따라 즉각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두 학생에게 봉사활동을 ‘벌’로 징계한 뒤 사안을 끝맺었다. 두 학생을 가장 잘 아는 담임교사가 대화의 장을 열어 왜 다퉜는지, 어떤 까닭으로 감정이 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나 권한은 없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둘의 관계가 어떤 부분에서 틀어졌는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모임을 가져야 사건이 재발하거나 심화하지 않는데, 교육당국의 대책에선 그런 논의가 없었다”며 “대화 자리를 주선하려고 시도했지만, 한 명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더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과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초기 단계의 학교폭력 사태가 발생했을 때 행정 보고절차만 강조하면서 사태를 평화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담임교사의 개입 권한은 되레 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은 ‘교원이 학교폭력 은폐나 부적절한 대응을 한 경우 금품수수나 성적조작, 성폭력범죄나 신체적 폭력 수준에서 징계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의 은폐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일부 교원의 행위를 막겠다는 차원이지만, 처벌 위주의 정책이 되레 교원들의 중재 의지를 방해하기도 한다. 서울 ㅇ고교의 한 교사는 “교육당국에서 결과와 실적 위주의 보고를 강조하면서, 일부에선 ‘담임교사는 오히려 편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교사가 가치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심각하지 않은 폭력 사태는 담임교사가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원단체에서는 ‘회복적 정의’ 차원의 학교폭력 대처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회복적 정의란,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은 물론, 가족과 교사 등이 모여 갈등과 피해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이 입은 아픔, 그리고 공동체에 끼친 문제 등을 인식하게 하는 해결법을 일컫는다. 교원단체인 ‘좋은교사’의 박숙영 상근교사는 “대부분의 교사가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처벌 위주나 무조건적인 온정주의만 찾게 된다”며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책임을 얘기할 수 있는 ‘회복적 정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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