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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공부는 운동하는 학생의 기본권 입니다”

등록 2012-05-07 16:23

‘공부하는 학생선수’ 논문 쓴 부천 원종고 임성철 체육교사
‘학습하는 사격부’ 만드니 실력 더 향상
팝송 들려주며 영어 흥미 끌어내기도
2010년 한 고교 체육교사가 사격부 감독을 맡는다. 체육교사를 하면서 학급담임만 7년을 해왔던 터라 기대감이 컸다. 2010년 3월부터 사격부 감독을 시작한 이 체육교사는 1년에 10여 차례 대회를 따라다니면서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한다. 시합 준비 위주로 학교생활을 해온 학생들은 고3이 됐을 때 특기자전형에 실패하고, 갈 곳이 없어지는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공부도 제대로 하고, 운동도 시킬 수는 없을까?”

교사는 고민 끝에 사격부 학생들을 데리고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는 과감한 시도를 해본다. 그리고 지난해 말,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영 과정을 담은 논문(<고교 운동부 감독의 공부하는 학생선수 만들기 실천과정> 연세대학교 대학원 스포츠레저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사격부와 체대진학반에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시스템을 구축해준 부천 원종고 임성철(사진) 교사의 사연이다. 지난 4월26일, 원종고 체육관에서 임 교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체대를 준비하는 체대준비생들과 학생선수들을 위한 <체대진학 길라잡이 Ⅱ>를 집필중이다.

-1인칭 화자로 이뤄진 흥미로운 논문이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논문을 쓰게 됐나?

“체육교사를 하면서 학급담임만 오래 해왔다. 담임만 하다가 운동부를 맡게 되니까 새로운 일과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때까지는 고교 운동선수가 대학을 가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격부 아이들과 대회를 나가보면서 현실을 알게 됐다. 전국 고3 학생선수 가운데 일부 상위권 수준만 대학에 가는 게 현실이다. 감독을 맡고 두세달 뒤에 그 현실을 알았다. 나머지 특기자전형으로 진학하지 못하게 되는 80% 아이들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그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논문이다.”

-논문에 ‘반성일지’가 나온다. 체육교사만 하다가 운동부 감독을 맡으면서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담았다. 반성과 고민을 하게 만든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사격부를 예로 들면, 중·고교 시절 내내 특기자로 생활했지만 정작 고3이 되어서는 사격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다. 다른 종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 종목에서 반 이상은 특기자로 대학 진학을 못 한다. 아이들이 메달을 따올 때 학교는 뭘 해줬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메달을 따오면 학교나 지도자 등은 이름을 알리고 때론 승진 가산점도 받는다. 특히 전국체전 기록 등은 관심들이 높다. 하지만 메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진학 문제에서 좌절할 때 대안을 마련해주진 못한다. 평소 내신관리 등을 해둬야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 평소 운동과 함께 공부도 제대로 하는 환경을 마련해서 진학할 때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싶었다.”

-운동을 하면 공부는 뒷전이어도 된다는 게 우리 사회의 오랜 편견이다. 현재 학생선수들은 학교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아직도 운동만 해도 되는 아이들로 여기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이 아이들은 공부에서도 배제되지만 학교행사 등에도 빠지기 쉽다. 훈련 일주일만 다녀와도 학급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일이 생긴다. 학창시절에는 공부 그리고 교우관계나 학교활동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내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도 했다.”

-2010년도부터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실천을 했다. 중간에 시행착오도 있었다.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2010년이 시도 첫해였고, 2011년이 두 번째 해였다. 첫해에는 아이들 성적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뭐가 최선인지 몰라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처음에는 이비에스(EBS) 영문법을 같이 공부했는데 내가 너무 어려운 교재를 선택했더라. 그 뒤로는 인터넷에서 노래를 부르며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카페(cafe.daum.net/shimwonsports4u)에 팝송 동영상과 가사를 올리고, 반복 듣기와 단어공부도 같이 했다.

주변 반응이 처음부터 좋진 않았다. 처음에는 코치도 안 하면 좋겠다고 반대했다. 부모들도 의아해했다. “감독이 왜 성적 관리를 하냐? 메달을 따오면 되는 거지.” 그런 반응들도 있었다. 쉽진 않았지만 아이들 성적에 변화가 생기면서 희망이 보였다. ”

-정부에서 ‘공부하는 학생선수’ 지원 시범사업 등을 마련했다. 야구나 축구는 주말리그로 전환도 됐다. 최근 들어 운동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2000년 초반에 언론이나 학계, 정부 등에서 ‘공부하는 학생선수 만들기’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0년이 지나면서 학교 운동부에 가시적인 변화도 일었다.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학생선수들이 정규수업에 참여한다는 게 수업 시간에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이전까지 학습권 보호를 강조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실질적인 학습활동을 돕고, 학교 구성원들과 인간적인 만남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제도적으로 학생선수들의 전국대회 참가 횟수를 축소한 현재의 제도도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전국사격대회의 경우, 참가 횟수가 연간 3회 이하로 제한돼 있지만 예외 조항이 너무 많다. 국제경기대회, 전국체육대회, 국가대표선발대회, 방학 중에 참가하는 대회는 참가 제한이 없다. 대회에 한번이라도 더 출전해서 실적을 내어야만 대학에 체육특기자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배경에서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이 쉽지만은 않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어느 한쪽에 소홀해지는 문제도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공부 시간은 늘리고, 훈련 시간은 다소 줄였다. 학생들은 선배들 가운데 일부만 특기자 전형으로 진학하는 걸 보면서 불안해한다. ‘나는 특기자로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런 상황에서 학업 성적이 올라가니까 아이들은 오히려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더라. 총을 조금 못 쏴도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격은 정신력이 중요하다. 총 한 발에 끝나는 게 아니라 실수가 조금 나와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 여유들이 생겼고, 그런 배경에서 사격대회 실적은 오히려 늘었다.”

-외국에서는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어떻게 양성하나?

“선진국에서는 선수가 대회에 나가면 감독만이 아니라 학습 관련 교사도 훈련과 시합에 따라간다. 학업지도를 훈련 뒤 오후에 해주는 식이다. 학생들의 최저학력 성적 기준도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

-왜 공부하는 선수가 필요한 걸까?

“지금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는 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학생선수라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학생선수라고 공부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운동을 하기 전에 학생이니까 공부는 일종의 기본권이다. 그밖에 학교가 해주는 다양한 전인교육도 받아야 한다. 교우관계도 중요하다. 공부를 해놔야 선수로 진출을 하더라도 은퇴 뒤 또 다른 자기 진로를 찾을 수 있다. 학생선수가 공부한다고 하면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문화,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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