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청소년 10대 요구 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청소년들이 “수행평가 30% 의무제 폐지하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의 ‘수행평가 30% 의무화’는 폐지됐지만 수행평가와 서술·논술형 평가를 합치면서 학생의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신장시키는 수업과 평가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과제형’ 줄었지만 부담은 여전해
서술형 포함, 수행평가 의미 퇴색
내신 중요해진 고교입시 영향도 커
서술형 포함, 수행평가 의미 퇴색
내신 중요해진 고교입시 영향도 커
경기도 고양시 ㅎ중학교에 다니는 1학년 최아무개양은 요즘 한 수학자의 생애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수학 수행평가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디오판토스의 생애를 정리해 파워포인트로 만들고 발표도 해야 한다. 흥미로운 과제 같지만 학생 처지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기고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이런 과제들로 밤을 새우는 일이 많다.
지난 1학기 때는 영어 원서를 읽고 영어로 독후감을 8편 써서 내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학원에 안 다니는 최양한테는 점수 깎이기 좋은 과제다. 최양은 “친구들 가운데에는 영어를 잘하는 친구한테 부탁을 하거나 인터넷 자료를 찾아서 마무리를 하는 애들이 많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ㅅ여중에 다니는 3학년 김아무개양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학기, 영어 수행평가 과제로 ‘원어민 교사와의 자유 스피치’가 주어졌다. 주제를 주면 3분 정도 자유발언을 한다.
“우리 학교는 많은 친구들이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아니면 학원에 다닙니다. 혼자서 스피치 자료를 만들어도 어설퍼요. 부모님이 영어를 잘하실 경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죠. 다 써놓고 검토라도 받으면 좋을 텐데 학원도 안 다니고 주변에 딱히 해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30점 만점에 15점을 받았어요. 전체 점수로 보면 큰 감점이죠.”
수행평가란,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나 기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특정 산출물을 만들거나 행동으로 나타내거나 답을 구성하도록 요구하는 평가 방식을 말한다. 서울 우신고 임영환 교사는 “수행평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려면 수업 때 학생 중심형 참여 수업 환경이 마련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평가가 연동돼야 한다”며 “학생들이 추가 부담을 느껴선 안 된다”고 했다.
과제형 수행평가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사교육 시장이 개입할 여지가 높다는 우려 때문에 변화도 나온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쪽지시험 등으로 수행평가를 대체하기도 한다. 정기고사와 다를 것 없는 이런 평가를 두고 굳이 ‘수행평가’라는 말을 붙여야 하냐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정기고사 이외의 수행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2학기부터 수행평가와 정기고사 서술·논술형 평가를 합쳐 학기말 총 배점의 30% 이상 이 되도록 했다. 여기에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객관성이 담보되는 서술·논술형 평가의 배점이 커질 확률이 높아진다. 문제는 중간·기말고사와 함께 치르는 서술형 평가 역시 단답식이 상당수다. 학생 개개인의 지식이나 기능을 드러내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한다는 본래의 뜻을 살리지 못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승현 정책실장은 “원래 서술형 시험은 교사마다 문제를 다르게 낼 수 있어서 사교육 시장이 개입하기 어려운 평가 방법인데 우리 학교 현장에서는 무늬만 서술형인 경우가 많아 서술형 대비 사교육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제도는 학생들을 각종 평가에 목을 매게 한다. 고교 진학 때 자기주도학습전형에서는 얼마나 성실하게 학교 수업을 했는지를 평가한다. 수박씨닷컴 이선화 학습전략수석연구원은 “고교 입시가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바뀐 시점에서 학생의 성실도 등을 알 수 있는 척도가 수행평가이기 때문에 여전히 관리해야 할 항목”이라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학교 차원에서 수행평가를 파행 운영하는 사례도 나온다. 지난해까지 서울에 있는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던 2학년 이아무개군은 올해 일반학교로 옮기면서 제대로 된 수행평가 준비를 처음 해본다. 이군은 “지난 학교에서 수행평가는 대부분 만점을 줬고 대신 정기고사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고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수행평가 준비가 힘들지만 제대로만 시행한다면 재미있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고양시 저동고 2학년 김지희양은 “친구들과 토론, 토의도 하고, 여러 가지 과제 준비나 문제도 흥미롭다”며 “정기고사 점수를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했다. 하지만 평가에 맞는 학습과 평가 가이드라인, 여유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는 ‘고행평가’일 수밖에 없다. 교육청 등에서는 수업과 연동되는 수행평가를 권장하지만 여전히 수업 따로, 수행평가 따로인 경우가 많다. 고양시 ㅅ중학교 3학년 최아무개양은 “수업 때는 열심히 교과서 진도를 나가다가 갑자기 말하기 시험을 본다고 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수업 때 이런 과제나 시험을 치르도록 시간도 주고, 훈련을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서술형보다는 수행평가가 좋습니다. 하지만 수행평가를 봐도 선생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제 하려고 갑자기 팀을 짜고 발표를 준비할 때 무임승차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진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억울합니다. 선생님이 우리가 하는 활동을 수업 때 보셨으면 어떤 아이가 공짜로 점수를 받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근데 선생님들도 진도를 나가야 하니까 수업 때 수행평가와 관련된 활동까지 하려면 부담스러울 겁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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