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하던 엄마, 달라진 사연
“책 던지며 나가라던 엄마, 이젠 존댓말 써요”
아이 성적 올려줘야 좋은 엄마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주부들
“책 던지며 나가라던 엄마, 이젠 존댓말 써요”
아이 성적 올려줘야 좋은 엄마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주부들
“저는 엄마가 아니라 미친년이었어요.”
서울 서초구에 사는 조아무개(42)씨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 된 큰아들이 초등 4학년일 때 엄마의 마음은 지금처럼 편안하지 않았다.
평균 90점.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 성에는 차지 않았다. 세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최고로 중요하다며 엄마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아들이 국어 80점을 받고 온 어느 날, 엄마는 책장에 있는 책을 다 꺼내 던져버렸다.
사당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아들의 성적은 곧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소식이 빠른 동네였다. “그 집 애가 올백을 맞았대.”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는 창피했다. “너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예를 들어, 학교에서 부모 참관 수업을 하면 내 아이가 대표로 멋진 발표를 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 싶은 겁니다. 그게 제 욕심이었죠. 실제로 학교에 가면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엄마의 발언권이 다릅니다.”
지방 국립대를 나온 엄마는 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다. 지방의 경우, 전교에서 한두 명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나머지 상위권은 지역 국립대로 진학하던 시절이었다.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해 이룬 성과였다. 대학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이런 엄마의 경험에 비춰보면 아들이 공부를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제가 수학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아들을 끼고 가르쳤거든요. 근데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나하나 잘 가르쳐주는데 왜 못 따라오냐는 거죠. 저는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컸는데 아이한테는 욕심이 전혀 없어 보이니까 더 화가 났어요.”
“너 바보야? 왜 알려줘도 틀리냔 말야. 정신 못 차려?” 화는 막말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구둣주걱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발로 차는 일들이 이어졌다. 낮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심성이 여린 큰아들은 겁에 질려 울었다. 저녁때 귀가한 남편은 “당장 학원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학원에 가면 기계처럼 문제만 푸는 아이가 될까봐 싫었다. 곁에 두고 가르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갈등은 더해만 갔다. 어느 날, 아들의 손톱과 발톱이 다 뜯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아들은 불안감을 손톱을 무는 걸로 표현했다. ‘음! 음!’ 자꾸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화를 냈다. 알고 보니 틱장애(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 증상이었다.
“이러다 애를 잡겠구나 싶었어요. 나도 미쳐가지만 중학교에 가면 애도 미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괴로워하던 엄마한테 한 지인이 부모 대화법 강의를 소개해줬다. 엄마는 당시 강사였던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리더십센터 책임지도자 김민자씨를 이젠 ‘인생의 멘토’로 부른다. 김씨의 대화법 강의는 당장 성적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불안을 자극하던 강의와는 달랐다.
강사 김씨는 조아무개씨를 ‘훌륭한 엄마’라고 했다. 여전히 ‘욱’하고 화가 올라오는 순간이 많지만 스스로 화를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는 요즘, 다시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아이한테 존댓말을 쓰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아들이 ‘엄마, 왜 존댓말 써요?’ 이렇게 묻더라구요. 그래서 ‘이건 너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화를 조절하려고 하는 거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임아무개(43)씨한테는 ‘좋은 엄마 강박’이 심했다. 임씨는 “내가 잘해야 아이가 잘되는 거고, 아이 성적이 내 성과”라고 생각하는 엄마였다. 큰딸은 지금 초등학교 6학년, 둘째인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불과 1년여 전까지 엄마는 아이들한테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별로 없었다. 속으로는 ‘이것밖에 못하냐?’고 비난했지만 겉으로는 ‘좋은 엄마’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살았다. 그날그날 아이들이 과제는 잘 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게 엄마의 주요 업무였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남편을 보면서는 ‘당신은 아이들도 잘 못 챙기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5학년으로 올라갈 때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엄마 내면의 갈등은 폭발했다. 아이는 말수가 줄었다. 뭐라고 말하면 째려보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처지에선 배신감이 느껴졌다. “불만이면 말로 해. 너 그럴 권리 없어.”
물리적으로는 가까웠지만 심리적으로는 멀었던 엄마와 딸 사이였다. 서아무개양은 “그런 엄마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엄마는 이제 과제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는다. 서양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둔다.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불안해하거나 흥분하지도 않는다.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를 인정하되 다음에는 더 잘해보자.”
변화는 자녀의 학습지수를 알아보러 갔던 날, 우연히 비폭력대화라는 강의를 만나면서 찾아왔다. 엄마는 “자녀가 아닌 내 마음을 살펴보게 됐다”며 “아이나 남편한테 ‘왜 이렇게 안 해!’라고 불만을 갖기보다는 내 욕구, 내 진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알았다”고 했다.
“이젠 실수를 하면 ‘아까 미안했어’라고 말합니다. 예전 같으면 죄책감에 괴로워했겠죠. 그동안 ‘자신을 못 살피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바로 제가 그런 사람이었더군요. 많은 엄마들이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엄마 역할에 대한 부담이 크면 스스로 무너지기 쉽죠. 아이 성적이 내 성과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심해지구요. 그건 아이가 만든 상황이 아니라 엄마인 저 스스로 만든 굴레라는 걸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한겨레 인기기사>
■ 손학규 “박근혜도 유신 피해자…연민 느낀다”
■ 스무디 마시던 유학생, 스무디킹 본사 오너되다
■ 불황일수록 여성 치마 짧아진다더니… ‘노출 마케팅’ 경쟁
■ ‘체르노빌’ 26년 지났어도…방사능 600배 멧돼지 출현
■ [화보] 더울 땐, 물놀이가 최고!
■ 손학규 “박근혜도 유신 피해자…연민 느낀다”
■ 스무디 마시던 유학생, 스무디킹 본사 오너되다
■ 불황일수록 여성 치마 짧아진다더니… ‘노출 마케팅’ 경쟁
■ ‘체르노빌’ 26년 지났어도…방사능 600배 멧돼지 출현
■ [화보] 더울 땐, 물놀이가 최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