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와 통하다
말 꺼내면 잔소리 들을까 봐
끝까지 기다려주는 태도 필요
말 꺼내면 잔소리 들을까 봐
끝까지 기다려주는 태도 필요
“두영아~ 학교 잘 다녀왔니?” “왜?”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어?” “없어.”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아마도.” “선생님은 오늘 무슨 말씀 안 하시고?” “몰라.”
십대들, 특히 남자아이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예전엔 부모 앞에서 조잘조잘 별 이야기를 다 하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와 대화를 잘 하고 싶다. 그리고 부모 자녀 간 대화의 문은 어떻게든 열려 있어야 한다. 부모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어떻게 해야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십대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하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으면 한다. 그런데 부모는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아이를 판단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무룩해져 돌아온 15살 연희와 엄마의 대화를 예로 들어 보자.
“연희야,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 “응….”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구나?” “별거 아니야.” “분명히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엄마한테 얘기 좀 해봐.” “정말 듣고 싶어?” “그럼.” “진희가 또 난리야. 걔는 정말 싫어. 재수 없어.” “그 정도로 기분 나빴어?”
“응, 죽여 버리고 싶더라고, 완전 미친 기집애야.”
“그런 말 하면 못써, 너 엄마가 그런 말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됐어. 엄마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해! 상관하지 마!” 하며 나가버린다.
참 어렵다. 부모로서 아이를 가르쳐주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으로 한 말이 또 아이의 말문을 막았다. “그 정도로 기분 나빴어?”까지는 좋았다. 다음 엄마가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기다렸다면 연희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학생 앞에서 진희가 자기 흉을 본 것 때문에 속상했다고 말하고 엄마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난 마음이 가라앉은 다음 엄마는 연희에게 말하는 법에 대해서 충고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땐 연희도 “나도 그런 말 하면 안 좋은 거 알아. 그런데 너무 화가 나면 나도 그런 말이 나와. 미안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모든 면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당신 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어 아이가 부모가 필요할 때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성취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아이 말 중간에 너무 말하고 싶어도 그 순간은 참고 들어야 한다. 말 안 하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그냥 아이의 말을 메아리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래,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속상했구나.” 이건 적어도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 대화를 이끌어 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한편 십대 아이들도, “나도 부모님이랑 대화를 잘 나누고 싶어요. 나한데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한테 다 얘기하고 이해와 도움을 받고 싶어요. 그리고 어떨 땐 부모님이랑 얘기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사실, 엄마 아빠한테 말 안 하고 어떻게 내가 필요한 걸 얻을 수 있겠어요?”와 같이 생각한다.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진정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윤경/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아이를 크게 키우는 말 vs 아프게 하는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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