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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녀의 몫 대신 하지 않는 부모가 훌륭하다

등록 2012-08-20 11:44

학원 수업이 밤 10시에 끝나면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과 택시, 버스 등이 뒤엉켜 학원 밀집지역에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벌어지기도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학원 수업이 밤 10시에 끝나면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과 택시, 버스 등이 뒤엉켜 학원 밀집지역에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벌어지기도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재원의 공감학습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경제력만 내세우면 가족간 갈등 심화
자녀의 관심사·취미생활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효과 훨씬 커
한 아빠가 화를 겨우 삭이면서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한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꼴을 당해야 합니까!” 아이에 대한 실망감, 아내에 대한 배신감이 짙게 배어난다. 대략 이야기는 이렇다. 아이가 극구 ‘외고’가 싫다 해서 동의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일반고 진학 후 우연히 알게 된 아이의 고등학교 성적은 ‘충격적이게도’ 중간 정도. 그러니까 이대로 가면 ‘인서울’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더 놀랍게도 성적이 고교 진학 후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외고 진학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인데도 아이와 아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아이의 ‘나쁜 성적’, 예견된 비극

우연히 아이의 ‘나쁜 성적’을 알게 된 아빠의 분노로 가정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아빠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 예견된 비극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아이가 태어난 후 자식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부부는 점차 양육과 교육 문제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대개 아이와 좀더 친밀한 관계를 맺는 엄마의 발언권이 세지면서 아빠의 의견은 무시되는데, 부부 사이에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대부분 엄마는 정보력, 아빠는 경제력을 담당한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는 큰 충돌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아이 성적에 민감해지는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잠복해 있던 갈등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만다.

경제력과 정보력이라는 강력한 후원군을 둔 아이는 당연히 초반에 앞서나간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강해지는 사춘기가 오고 소수만이 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는 치열한 경쟁 현실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와 갈등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엄마의 지시와 통제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엄마는 정보력에 더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능력까지 총동원해보지만 떨어지는 아이의 성적과 악화되는 관계를 막을 도리가 없다. 가족관계의 변질이라는 비극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우선 부부 사이의 단절을 살펴보자. 경제력을 담당한 아빠는 열심히 사교육비를 벌어오고 엄마는 쓰는 역할을 분담하지만 이외에 이렇다 할 상호교류가 없다.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마음은 늘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다. 남편의 의견을 무시한 것에 부담을 느끼는 아내의 마음은 늘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말 테다’가 된다. 아동기, 청소년기를 겪는 아이의 고민이나 어려움, 진로, 그리고 바람직한 부모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경직된 역할 분담으로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엄마, 아빠 생각의 각축장으로 변질된 가정 앞에서 아이의 미래가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정서적 공감대 형성 노력과 생각 차 조율

‘콩가루 집안’이 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가족이 확실하지만 같은 가족끼리의 유대감과 애착을 느낄 만한 공통분모가 없다. 그런 숨 막히는 가족관계에서 서로 탈출하고 싶지만 먹고 자는 문제가 당장 걸린다. 어쩌다 얘기를 시작하면 언제부터인가 서로 회피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위장 평화에 익숙한, 그래서 화목한 가정인 양 연출한다.

아이 개인의 재능이나 의지,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원활한 가족관계다. 가족관계에서 힘을 얻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과 가족관계에서 겪는 갈등으로 매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비교해보면 확실해진다. 가족관계가 정상적이면 아이의 재능은 주로 생산적인 쪽으로 발휘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로 게임이나 인터넷과 같은 소모적인 쪽으로 빠진다.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나름 노력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고 공감해준다면 아이는 금방 공부의욕을 회복한다. 하지만 정신 못 차리고 딴짓한다는 식으로 야단을 치면 공부의욕의 반대인 스트레스가 강해진다. 가족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시작은 이처럼 공감대 형성에 있다.

정서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관심사와 취미생활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가족 여행과 같은 이벤트성 조처도 효과가 있긴 하지만 이미 두터워진 아이와의 감정의 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벤트가 아니라 바로 일상에서 아이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함께 해야 한다.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를 조율하는 일도 시급하다. 부모의 생각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소재다. 아이의 생각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다름 아닌 엄마와 아빠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때다. 우선 성적과 경쟁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확인해보고 조율해보자. 경쟁에서 이겨야 성적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과 나름 노력했으면 결과에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질적으로 다르다. 아이의 진로와 행복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엘리트 코스를 꼭 가야 한다는 생각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은 분명 다르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정리하자. 아이의 성적과 성공을 위해 부모는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모 역할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아이 몫을 대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역시 다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다른 생각을, 그것도 전자의 생각에 감정을 실어 아이에게 강요하면 아이들은 부모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말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 개선하려는 진지한 결심 필요

우리나라의 가족관계는 이미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아이와 친구 사이에서 종종 엄마는 ‘미친년’, 아빠는 ‘또라이’로 불린다. ‘미친년’이 되고 ‘또라이’가 된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자녀의 성공과 행복이다. 하지만 부모의 의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아무리 선의를 가져도 관계가 왜곡되면 갈등만 커질 뿐이다. 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정성은 증오만 커지게 한다.

아이와의 관계 개선 없이 부모 역할이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관계를 개선한다는 것’, 말이 쉽지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데, 다 이유가 있다. 그냥 맡겨주기만 하면 아이의 성적을 책임지겠다는, 나아가 아이의 성격까지 개조해서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욕심을 자극하는 유혹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계 개선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제안을 이겨내지 못해 쉽고 편리한 방법만을 찾으려는 자세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박재원의 공감학습
박재원의 공감학습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처럼 생각하자. 우리는 보통 잘난 체하는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설득하는 사람보다는 공감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을 반긴다. 나이를 들먹이며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을 분명 싫어한다. 부모를 대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로서 아이와 특별한 관계를 욕심내지 말고 일반적인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훌륭한 부모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관계 개선에 성공한 부모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가정이 행복해졌다. 그리고 행복해지니 결국 아이의 성적도 자연히 오르더라”고.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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