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와 통하다
한쪽이 결정 내린 다음에는
다른 쪽이 따라주는 게 좋아
한쪽이 결정 내린 다음에는
다른 쪽이 따라주는 게 좋아
“명훈아, 컴퓨터 끄고 빨리 내려와라.”
“아빠…. 이것 좀 끝내고 일분 내로 갈게요.”
“안 돼, 지금 당장 내려와.”
“에이~~씨.”
“그렇게 말하지 마!”
“아빠 땜에 정말 열 받네.”
“어디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해? 너 1주일간 외출 금지야!!”
억지로 내려온 명훈이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는 너무해… 기다려 주지도 않고, 무조건 외출 금지래! 나 이번 주말에 특별활동도 못 가게 됐어.”
둘의 대화를 모두 들은 명훈이 엄마는, “여보,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물론 명훈이가 당신에게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당신도 좀 기다려 줄 수는 있었잖아요?”
“당신은 좀 빠져! 당신이 그러니까 애가 저렇게 버릇이 없는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애가 사춘기인 거 몰라요!”
“그래, 잘 아는 당신이 잘해봐!” 하며 아빠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아이를 키우면서 흔히 있는 경우다. 두 명의 양육자가 있는 한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의견의 불일치가 갈등을 만들고 부부간의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 아이는 배울 것이 없다.
엄마는 “내가 애 아빠보다 너그러운 건 인정해요. 하지만 남편은 사소한 일에도 너무 엄격해요. 무슨 집이 군대도 아니고… 나라도 애를 좀 봐줘야 할 것 같아요”라고 생각한다.
한편 아빠는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속상하지만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애 엄마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라고 생각하며 부부간의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위와 같은 경우 아이는 “엄마는 항상 내 말을 들어주는데 아빠는 너무 나를 억압해! 아빠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아빠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고 엄마와 아빠는 한마음으로 뭉쳐진 양육자라는 생각이 들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이런 둘 간의 경쟁과 갈등에 처음엔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이를 이용해 한쪽 부모의 의견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앞에서 명훈이가 아빠 말이 듣기 싫을 때 엄마를 이용했듯이….
이런 경우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일단 부모 가운데 한 명이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다른 부모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어렵다면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앞의 예에서, “명훈아, 그건 너랑 아빠 사이에 해결할 일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괜찮은 엄마의 반응이다. 갈등이 시작된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놔두는 것이다.
물론 아빠가 너무 심하다 느껴질 때 엄마의 개입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개입은 아이가 없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방식이 아이에게 더 좋은지를 따져보고 논쟁하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의견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 양육 문제에 대해서 부부는 절대로 완벽한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힘을 실어 주는 통일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유익하다.
한편 명훈이 엄마는 엄격한 아빠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빠를 비난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 좋지 않다. 아마도 가장 적절한 표현은 “명훈아, 아빠가 좀 엄격하긴 하지. 나도 네가 가끔은 힘든 것 알아, 그래도 명훈아, 너도 그럴 때마다 난리 치지 말고 때론 그냥 아빠 말에 따라주는 것이 우리 집 식구들이 더 즐겁게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도다. 이런 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지만 아이의 책임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와 아이의 관계 그리고 부부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아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정윤경/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아이를 크게 키우는 말 vs 아프게 하는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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