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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까운 길부터 떠나면 모든 길은 이어진다

등록 2012-10-22 14:22

류대성 교사의 북 내비게이션
류대성 교사의 북 내비게이션
류대성 교사의 북 내비게이션
8. 지나칠 수 없는 몇 개의 분야-③여행
<희망을 찾아 떠나다>
김이경, 주세운, 소나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푸른숲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한국여행작가협회, 위즈덤하우스

‘노마드’(nomad)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끊임없이 창조적인 삶을 꿈꾸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 개념을 도입해서 자크 아탈리는 인류의 문명사를 유목민(Nomad)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농업을 시작하며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부터 우리는 유목적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21세기형 현대인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한곳에 머물러 사는 삶보다 유목적 삶에 대한 욕망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운명을 거스르는 삶에 대한 위로이며 내면적 상처의 치유 과정이다.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고 전혀 다른 패턴의 생각과 행동이 허락되는 것이 여행이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새로운 열정을 갖기 위한 휴식,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서 여행은 우리에게 삶의 방법과 태도를 근본부터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삶을 꿈꾸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여행의 기술>)는 말은 우리들이 가진 여행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 우리는 왜 떠나는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희망을 찾아 떠나다>를 권한다. 두 대학생이 쓴 공정여행 가이드북인 이 책은 여행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즐기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공정여행(fair travel)에 관한 이야기이다. 장소만 달리했을 뿐 먹고 마시고 자고 쇼핑하는 모습이 일상과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굳이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비가 아니라 관계의 여행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정여행은 단순히 견문을 넓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여행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경과 세윤 그리고 다정은 ‘꿈’을 찾아 떠난다. 빈곤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으로 달려간다.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의지하고 연대하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한다. 네팔의 러그마크, 마하구티, 스리 시스터즈, 안나푸르나의 공정여행자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제이티에스(JTS), 학위 없는 맨발대학, 여성노점상조합(SEWA)을 차례로 돌아보는 동안 세 명의 대학생은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루쉰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희망은 물론 나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희망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 김희경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새로운 여행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히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킬로미터의 안전하고 단순한 길 ‘카미노’(camino)를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 ‘왜’라는 질문으로 가득할 때 걷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평범한 이웃처럼 편안한 문장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지루한 산티아고를 소개하는 김희경은 보들레르의 말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을 외치며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영적 체험을 위한 순례가 아니라 그저 나를 찾기 위해 혹은 나를 이기기 위해 한쪽 방향으로 2천리 길을 걷는 방법도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들의 삶을 여행에 비유한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들 인생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카미노처럼 유명한 도보여행 코스가 우리나라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새로 정비되고 유명해진 길도 있지만 덕수궁 대한문에서 정동스타식스 극장까지 가는 1.1킬로미터의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길도 있다.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시·도별로 걷기 좋은 길 백열한 곳을 가려 뽑아 여행가들이 직접 걷고 소개한 책이다. 각 길 끝에는 정확한 위치와 음식, 숙박, 교통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어 이 책 한 권만 들고 당장 출발해도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부터 마음에 드는 곳을 한 군데씩 직접 걸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멀리 떠난다고 해서 좋은 여행은 아니다. 가까운 길부터 떠나보면 모든 길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여행의 끝은 또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게 된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직접 떠나보는 일이다. 망설이지 말자.

류대성 용인 흥덕고 교사, <국어 원리 교과서>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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