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뺄셈도 모르던 청소년의 변화
복지사의 ‘에듀케어’로 학교적응 시작해
복지사의 ‘에듀케어’로 학교적응 시작해
2010년 12월20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4동에 위치한 청솔지역아동센터(이하 센터)가 개소를 한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한 어머니가 중3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아이한테 나는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울역에 가면 노숙인 냄새 나잖아요. 그 냄새랑 똑같았습니다. 몇 달은 창문을 열어 놓고 가르쳤던 것 같아요.” 김철희 센터장의 설명이다.
당시 박군의 어머니가 센터 쪽에 간곡하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 제발 아들이 집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박군은 흔히 말하는 게임중독에 ‘은둔형 외톨이’였다. 한부모 가정의 자녀인 박군은 방과후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다른 친구들은 방과후 모두 학원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박군 눈에 컴퓨터 게임이 들어왔다. 놀 사람이 없었다. 갈 곳도 없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게임 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5년여 시간이 흘렀다. 박군은 학교에서 ‘엎드려서 자도 지적을 받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간 게 고마울 정도였다. 김 센터장은 “사실 엎드리고 잘 때 포기해버린 교사들 마음을 이해한다”며 “30명 넘는 아이들을 다 돌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늘 무기력하게 자고 있는 아이를 매번 깨워서 공부하게 하는 일이 어디 쉽냐”고 했다.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학교생활을 하던 박군의 당시 성적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고교 2년인 박군은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근면 성실하며 학교생활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한 모범학생입니다. 많이 칭찬해주세요.” 지난 1학년 중간고사 성적표에 담임교사가 적어준 글이다.
처음 센터에 왔을 땐 덧셈, 뺄셈도 제대로 못했던 박군이다. 게임에 빠져 지내는 모습을 보고 서유홍 사회복지사는 집에 찾아가 컴퓨터 본체를 아예 들고 나왔다. 김 센터장은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 이제 어떻게 살아!’라고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며 웃었다.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은 그런 박군을 끼고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수학을 가르쳤던 사회복지사는 주말까지 반납했다. 박군이 오지 않는 날에는 직접 집을 찾아갔다. 박군은 “처음에 복지사님이 오셨을 때는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나 신기했고, 그다음에 영어를 가르쳐주던 자원봉사자 형이 왔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죄송해서 빠지지 않고 다니게 됐다”고 했다.
박군의 꿈은 ㄷ전문대에 진학해 전자기계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다. ‘이 정도 성적이면 4년제를 가도 될 것 같다’는 말에 박군은 “앞으로 성적이 얼마나 더 오르는지도 봐야 하고, 가정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취업도 잘되는 쪽으로 알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간식이라도 사갖고 와야 했는데….” 기자의 말에 김 센터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서 복지사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지역아동센터가 굶는 아이들한테 밥이나 간식을 주는 공간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돌봄과 함께 학습 자립을 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1등 하는 아이들이 배출돼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일단, 학교에 제대로 등교를 하고, 등교한 뒤에 엎드려 있지 않고 수업을 듣는 아이가 되도록 지원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생활 정상화를 해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해요. 요즘 엎드려 자는 아이들, 수업 중간에 그냥 나가 버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아이들이 이런 지역아동센터에 정말 많이 옵니다.”
하지만 ‘에듀케어’의 최전선에 있는 센터의 전문인력들은 봉사 수준의 급여를 받거나 급여 자체를 못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시설이 설치된 지 2년이 지나야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2년이 안 된 곳은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급식비 외에 인건비, 관리비, 임대료 등은 개인 돈이나 후원금으로 운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센터의 경우, 설치된 지 2년이 안 됐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한다. 김 센터장은 2년 동안 사비를 털어 센터를 운영했다. 한 해 들어간 돈만 약 1900만원. 2년이 지나 정부보조금을 받아도 보조금 가운데 20%는 프로그램비로 내야 한다. 김 센터장은 “보조금 400여만원이 나와도 임대로 80여만원과 관리비, 그리고 프로그램비 20%를 뺀 돈으로 사회복지사와 센터장이 월급을 나눠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로 와 봐. 와 봐. 학교 갔어, 못 갔어? 괜찮아. 이리 와서 얘기 좀 해 봐라.”
“그냥 짜증나고 다 미워.”
지난 11월1일. 구로구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 학생이라면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인 오전 11시. 한 아이가 센터에 왔다. 송아무개 센터장은 “애가 학교에 안 간 지 열흘이 다 됐다”고 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6학년 남학생은 얼마 전, 학교 교사와 사이가 틀어진 뒤로 등교를 거부했다. 센터장은 아이를 앉혀놓고 설득을 시작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너는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돼. 학교에서 그냥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이가 되는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같이 가 보자. 어색하면 내가 같이 가줄게. 싫어? 그렇다면 심리상담 받으러 병원이라도 같이 가 보자.”
지역아동센터, 민간이 져야 할 부담 커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상처에 약하다. 남들은 상처라고 생각지도 않는 말에도 상처를 받는다. 다른 아이들한테 하듯 똑같이 대답해도 ‘나만 미워한다’는 소리를 해댄다. 그런 탓에 정신과 상담도 많이 받는다. 부모한테 돌봄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 지역 아동센터에는 이런 아이들 30여명이 온다. 센터장 1명, 복지사 2명, 공익요원 2명 등이 아이들을 돌본다. 너도나도 나를 좀 봐달라고 자기 나름의 거친 표현을 하는 아이들을 돌보려면 정신이 쏙 빠진다. 얼마 전 센터장은 학교에 안 간 이 남학생을 찾으려고 동네 피시방을 샅샅이 뒤졌다. 아이가 자라는 환경은 춥고 어둡다.
“아이를 찾으러 다니면서 진짜 화가 났던 건 왜 이 동네에는 피시방, 노래방만 그렇게 많냐는 겁니다.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아버지가 아이를 때리지는 않는데 방임합니다. 학교에 정말 가는지, 다른 곳으로 샌 건 아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죠. 제가 찾아가서 ‘아버님,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면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라고 했는데 안 갔다’고 하면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말로만 가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없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의식이 문제죠. 요샌 급식카드가 있잖아요. 그걸 발급해주면 아이는 끼니를 때우니까 배 채우고, 집에서 잔들 뭐라 하지 않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에 등교를 하는지 돌봐주지 않는 겁니다.”
이 센터는 운영한 지 2년 넘어 정부보조금을 받지만 역시 운영이 어렵다. 현재는 정부보조금 450여만원과 후원금 등으로 센터장을 포함해 3명의 월급, 관리비 등 운영비를 내고 있다. 그나마 한 교회의 도움으로 지금 공간에서 무상임대로 2년을 지냈는데 내년 5월이면 무상임대 계약이 끝난다. 얼마 전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에서는 ‘지역아동센터 현안해결을 위한 정책제안’을 내놨다. 자료를 보면 2012년 6월 기준 지역아동센터 수는 4003개로 2011년 12월 3985개에서 6개월 사이 18개가 늘었다. 협의회 쪽에서는 “지난해까지 매년 300곳 이상 꾸준히 늘어났던 상황에 비춰보면 민간이 져야 할 부담이 커서 신규 센터가 늘어나지 못했거나 기존 시설 가운데 운영난으로 폐쇄할 시설이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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