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방송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 현장 모습. 충북 청주시 제공
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톡’
인기학과가 나중에 비인기학과로 변하는 경우 많아
전세계를 무대로 생각하면 직업 선택의 폭 넓어져
인기학과가 나중에 비인기학과로 변하는 경우 많아
전세계를 무대로 생각하면 직업 선택의 폭 넓어져
흔히 지금을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경쟁에는 국가 간의 경쟁, 기업 간의 경쟁, 개인 간의 경쟁 등이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경쟁은 개인 간의 경쟁일 것이다. 각 개인들은 입시경쟁, 취업경쟁, 승진경쟁 등 각종 경쟁 속에서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택해 나간다. 그렇다면 경쟁의 목적은 무엇일까? 경쟁의 목적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방법에 있어서 서구 사회는 ‘Pass’와 ‘Fail’로 구분을 많이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서열을 매기는 방법을 택한다. 서열을 부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시험이다. 우리는 11월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험 하나를 시행했다. 다른 선진국들이 교육훈련을 강조하는 경쟁방법을 택한 반면, 한국과 일본은 유독 시험을 강조하는 경쟁방법을 택하고 있다.
한국은 시험사회다. 교육이나 훈련 내용보다 시험성적이 중요하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한고비 넘기면 대학 입학시험, 각종 자격시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입사시험 등이 기다린다. 심지어 적성검사도 이름만 적성검사지 사실은 각종 직업기초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다. 회계사가 꿈이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도 사회복지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웬만한 직업들은 다 시험으로 자격증과 면허증이 부여된다.
그렇다면 원하는 직업이나 직장을 잡으면 시험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많은 기업들이 승진에 있어서 시험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설령 본인이 시험에서 해방되었다고 할지라도 자녀의 시험 문제로 간접적인 시험스트레스를 또 겪는다. 어쩌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 ‘시험 스타일’로 유전자 변형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경쟁은 나쁜 것일까? 물론 경쟁을 통하여 동기를 부여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구분하고, 나태해지기 쉬운 인간이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하게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의 불명예 뒤에는 과도한 경쟁 스트레스가 숨어 있다.
지난해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사회를 두고 ‘한 방에 결정되는 사회’(The one-shot society)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서 한 방은 ‘수능시험’을 의미한다. 이 수능시험 하나로 개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은 모두 무시되고 각자의 인생을 10대에 치른 시험 한 방에 결정해 버리는 우리 현실을 비판하였다. 아울러 한국 사회가 기적에 이르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을 터놓지 않고 시험과 경쟁이라는 기존 방법에 의존한다면 ‘기적의 나라’(The Land of Miracles)라는 찬사는 더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과도한 경쟁을 피하면서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사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은 경쟁하지 않고 이기는 지혜이다. 사실 과잉 경쟁의 승리는 높은 비용을 치른 대가이기에 그리 빛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잉경쟁을 피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현재로써 미래를 보지 말라.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인기학과, 인기대학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수능 시험점수도 높아야 한다. 하지만 과거 많은 데이터를 보면, 입학할 땐 인기학과가 졸업 후엔 비인기학과가 되는 사례는 많다. 오히려 입학 당시에는 비인기학과였지만 10년 후 인기학과 및 인기직업이 된 사례는 허다하다. 1960~70년대만 해도 간호학과의 인기가 높았다. 능력 있는 여성들이 의대를 포기하고 간호사의 길을 택한 경우도 많았다. 또다른 예로 1970~80년대에는 화공학과의 인기가 좋았다. 요즘 그 인기를 반도체나 정보통신 관련 학과들이 누리고 있다. 과거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는 사회복지학과나 심리학과도 비인기학과였으며 농대가 인기학과인 시절도 있었다. 이처럼 직업도 학과의 인기도 세월 따라 변한다.
둘째, 넓게 보라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가 부여한 현실만 보지 말고 좀더 넓은 관점에서 진로와 직업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사 등의 ‘사’자 직업을 선호하며, 배관공, 자동차정비원 등의 기능직은 기피한다. 따라서 선호되는 직업과 관련한 전공은 경쟁이 치열한 반면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직업의 경우는 진입장벽이 낮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여러 선진국의 경우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처우가 매우 높다. 따라서 세계라는 무대에서 꿈을 펼치기를 희망한다면 경쟁은 낮고 가치 있는 도전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부화뇌동하지 말라. 현대 사회는 자기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 및 마케팅활동을 벌인다. 유망학과, 유망직업 등 직업·진로와 관련한 오염된 정보가 넘친다. 이러한 정보 가운데 옥석을 가릴 식견이 필요하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경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방영되면 그해에 관련 직업의 인기가 올라간다. <내 이름은 김삼순>,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파티시에 같은 직업이 언론의 관심을 받고 제과·제빵학과 등이 인기를 얻는다. <식객>이나 <대장금> 등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조리학과, 호텔조리학과 등이 인기를 끈다. 올해는 영화 <건축학 개론>이 인기를 끌었으니 건축학과 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경쟁을 피하는 방법은 정확한 정보 아래에서 자신의 소신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경쟁만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없이 그냥 굴러다니는 흔한 정보를 믿고 달려들 경우 과도한 경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경제구조상, 지리학적 위치상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 또한 이런 현실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 필자는 불필요한 경쟁, 즉 과도한 경쟁까지는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런 필자의 조언과 관련된 선인의 가르침 하나를 그 예로 들어보겠다.
대구 달성군에 가면 도동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조선의 성리학자 가운데 소학동자라 불리던 김굉필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김굉필 선생은 이황,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5현으로 불릴 만큼 정통 성리학을 잘 알고 있었으나, 경서 가운데 가장 쉽다는 소학의 중요성을 평생 강조하고 죽기 직전까지 실천한 분이다.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원은 김굉필의 철학과 가르침이 서원 건축에 표현된 곳이다. 먼저 강당에 들어가는 문이 낮기에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그 이유는 배움에 있어서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아울러 중정원에 오르는 길은 차례로 한 사람씩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도록 계단이 좁게 설계되어 있다. 경쟁을 피하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다. 서로 먼저 학문에 이르려고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씩만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좁은 계단의 의미는 진정한 경쟁은 같이 배우는 학우 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가르침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타인과의 경쟁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 속에서 소학동자 김굉필 선생의 가르침은 분명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주말 모두가 하나의 방법으로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길로 산에 오르면, 즐거운 산행이 아니라 끔찍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길로 다양한 산에 오르면 즐거운 산행이 될 것이다. 과도한 경쟁을 피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후,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
<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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