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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선생님은 해준 게 없다”는 말이 제일 좋았다

등록 2012-11-26 13:50

경희고 최인영 문학교사가 학생들한테 ‘나만의 책 만들기’와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학생 모둠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최 교사다.
경희고 최인영 문학교사가 학생들한테 ‘나만의 책 만들기’와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학생 모둠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최 교사다.
인터뷰 l 경희고 최인영 문학교사
이야기 펼칠 자리 마련해두니
아이들이 알아서 술술 풀어내
경희고에서 이렇게 ‘나만의 책 만들기’를 하는 학생은 총 250명. 책이 나오려면 250명이 고생해서 써낸 원고를 읽고 코멘트를 해줘야 한다. 최인영 문학교사는 학생들이 낸 30쪽 넘는 분량의 원고를 다 읽는다. 직업으로 치면 저자가 책을 잘 낼 수 있도록 돕는 ‘출판편집자’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최 교사를 만나 이런 수업을 구상한 이유를 물었다.

­­ -2010년부터 이런 수업을 시작했다. 계기가 있나?

“2009년에 1학년 담임과 수업을 맡았다. 거의 10년 만에 맡은 1학년 아이들이었는데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꿈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충격이 컸다.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뭔가 거듭 고민했다. 꿈이 있어야 아이들 삶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꿈을 심어줄까도 고민했다. 꿈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목표가 생겼고, 그걸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이야기가 완결이 돼야 제대로 된 꿈으로 자란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 수업을 구상했다.”

­­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놓고 대답을 글로 정리해보게 하는 등 아이들이 각자의 사소한 사연부터 끌어내 보자고 했다. 이유가 있나?

“이야기 속에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많이 우울해한다. 지쳐 있다. 입시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뿐 아니라 앞에 서 있는 아이들도 늘 쫓기는 심정이다. 그런 아이들한테 우리 교육은 지식을 암기시킨다. 그런 아이들한테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자기 삶을 스스로 엮어나갈 때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친구들은 어지간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낼 힘이 있다.”

-학생들이 자서전이나 시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환경에 처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빨리 변한다. 나는 시를 잘 써야 모의고사도 잘 푼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시로부터 동떨어지고, 시가 내 삶이 아니고, 문제로서 대하기 때문에 읽으려고, 쓰려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이 많은 걸 다 쓸 수 있으려나 걱정도 했는데 기대한 것보다 잘 쓰더라. 나도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읽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멍들어 있고 지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걸 보면서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걸 쏟아놓을 자리가 없었구나 싶었다. 그나마 글을 씀으로써 아이들이 풀어버릴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해준 건 이렇게 해보라고 시범을 보여준 것밖에 없다. 아이들이 했던 말 중에서 ‘인터뷰 섭외도 그렇고 선생님은 해준 게 없다’는 말이 제일 기분 좋았다. 사실이다. 아이들이 다 했다.”

-이런 수업을 통해 교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했을 거다. 교사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훌륭한 수업은 선생님들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놔주는 거라고 본다. 아이들이 스스로 수업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게 훌륭한 수업이다. 나는 큰 틀에서 계획을 세워주고 주춧돌을 놔준 다음, 빠져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 일을 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다.”

­­ -학생들이 쓴 자서전 가운데 인상 깊은 글이 있다면?

“교사 입장에서 보기엔 다 훌륭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아이들 삶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면 다 예쁘다. 글들을 읽기 전까진 몰랐던 것들인데 글을 읽고 나면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더라. 근데 아이들이 스스로 그 멋진 삶을 응시할 여유가 없다.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그 힘이 있어야 나를 넘어서 남도 함께 볼 힘이 생기는데 이 작업을 통해 그런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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