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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장애를 진단하기보다 아이들의 영감 끌어내야”

등록 2012-12-03 11:42

지난 11월20일 열린 ‘2012 아르떼 해외전문가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이 색색의 실을 가지고 강의실을 바꾸는 아트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지난 11월20일 열린 ‘2012 아르떼 해외전문가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이 색색의 실을 가지고 강의실을 바꾸는 아트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해외 문화예술교육 사례 워크숍
70여명의 참가자, 시연 프로그램마다 적극 참여
창의성 기르는 방법은 아이들 숫자만큼 다양해
“색색의 실 중 마음에 드는 실을 책상 위에 놓고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어 보세요.”

강사의 말에 참가자들은 50㎝ 정도의 실로 각양각색의 흥미로운 모양을 만들어냈다. 동그랗게 겹겹의 원을 그려 세계를 표현하거나 하트, 안경, 나비 등으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다음엔 실뭉치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강의실을 캔버스라고 생각하고 이 공간을 색다르게 변화시켜 봅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은 기둥에 실을 감거나 서로를 묶고 실을 던져서 꼬고 이어서 벽에 붙였다. 어느새 처음의 공간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변신해 있었다. 강사는 이 모습을 보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의 커뮤니티가 된 거 같네요. 얼마나 심플하게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선 하나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 실제 경험해 본 거예요. 아이들은 실뭉치 하나만 주면 2시간이 넘게 알아서 잘 놀죠. 그러면서 던지고 감고 날리는 활동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도 하게 됩니다.”

지난 11월20~21일 이틀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한 해외 전문가 초청 워크숍이 열렸다.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비행청소년·장애학생 미술교육 사례 및 재원조성방안 공유’에 관해서였다.

이날 강사인 엘레나 양커는 독일 뮌헨 최초의 미술교육 독립비영리단체인 ‘리틀 아트’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2006년 12월 생긴 이 단체는 비행청소년 및 장애아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의적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기부금 및 스폰서 유치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문화경영자, 예술가, 예술교육 및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루고 있다. 현재 세계 250개 기관과 협력해 국제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기획·운영 중에 있다.

양커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연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예술활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70여명의 참가자들은 예술 강사뿐만 아니라 디자인 기획자, 교수, 어린이박물관 학예사, 문화예술 기획자 등 다양했다. 그들은 시연되는 프로그램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점자필름에 뭉툭한 볼펜 끝으로 꾹꾹 눌러서 그림을 그린 후 손으로 만지고 느껴보는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직접 해보니 펜으로 힘 있게 누른 부분의 종이가 툭툭 불거져서 눈을 감고도 선이나 형태를 느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창문에 붙여진 시각장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눈을 감고 만지며 감상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노루나 사슴 같은 동물의 다리를 만져보고 느낀 다리의 근육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그림을 본 이들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저렇게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신기해했다.

양커는 “시각장애 아이들 하나하나가 피카소”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자기가 만지는 순서대로 세상을 본다. 얼굴을 그릴 때도 하나씩 만져서 그리기 때문에 눈이 조금 위에 있거나 코가 옆에 있는 그림이 된다. 결국 피카소의 작품처럼 완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각장애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눈으로만 세상을 볼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을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창의성을 끌어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정해진 방법론은 없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수만큼 방법이 있다”며 “아이들 하나하나의 창의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접근방식도 달라야 하고 그래서 우리부터 더욱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요한 점은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도록 이끌되, 자기 자신을 감추고 오롯이 아이들의 잠재력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지켜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역할은 아이의 문제나 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영감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표현하고 그 속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문제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의 판타지 속에 들어가서 관찰해야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판타지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교육이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유원경(41) 강사는 시각장애학교인 강원도의 명진학교에서 예술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학교나 복지관에서 교육을 하다 보면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지칠 때가 많다. 이런 기회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열정도 되살아나고 나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이나 방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 외에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기획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특히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기금을 지원받으면서 변색되거나 독립성을 잃을까 두렵기도 하다.”

“더디지만 변화와 가능성 보며 강의해”

“또 개별적으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다보니 체계화되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예술교육의 경우 아이들의 변화는 미세하다. 어느 날 갑자기 변화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더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 작은 가능성을 보고 강의를 한다”고 덧붙였다.

6년차 연극예술강사인 배정은(35)씨는 일반학교 아이들부터 장애아동, 어른들까지 두루 수업을 했다. 아이들에게 좀더 효과적인 수업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미술치료와 연극치료를 배워서 접목하게 됐다. 평소에도 미술이나 무용 등을 이용해 통합 수업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본인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조각상처럼 몸으로 표현해 보게 한다거나 찰흙을 이용해 자신이 본 장면이나 사진들을 이야기로 푸는 식이다.

그는 “예술강사 초반에 탈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내가 먼저 색안경을 끼고 걱정했던 부분이 많았다”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우리가 의료적으로 분석한 내용으로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다 아는 게 아니었다. 반항심으로 버티고 안 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강사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며 예술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해결된다. 지금 일반학교에도 그런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비행청소년이거나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특출하거나 문제 집단인 건 아니다”고 얘기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05년부터 해외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상별 예술교육 방법론과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및 예술 강사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2 아르떼 해외 전문가 초청 워크숍’은 지난 10월 말부터 한 달간 총 4회에 걸쳐 치매노인, 비행청소년, 장애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의 노하우를 나누고 논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i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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