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협력
<초협력자>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토머스 홉스가 가정한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그는 전쟁을 야기하는 세 가지 배경을 든다. 첫째는 자원의 희소성이다.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자니 불가피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의 공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경쟁 상태에서 언제라도 상대에게 공격받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런 불신과 공포는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명예욕이다. 자신 혹은 가족이나 동료의 명예를 더럽히는 비웃음이나 경멸의 몸짓 등에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홉스는 이런 본성의 일면 때문에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고립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본성의 어두운 면만을 보지 않았다. 자연 상태의 절망을 극복할 본성의 또 다른 측면인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 또한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평화에의 열망은 비참한 자연 상태를 끝내고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홉스는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라면 타인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극단의 불신 및 경쟁의 결과를 예측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을 강구하는 존재로 봤다. 즉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상대의 것을 빼앗고 배신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협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협력을 통해 생존의 기반을 다져온 것일까?
<초협력자>의 저자인 마틴 노왁은 ‘생물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힘은 협력이며 사회는 인간 협력의 결과’라는 말로 이 질문에 답한다. 그는 생물학자의 이력을 살려 전(前)생명체에서부터 세포, 세포의 결합으로 탄생한 복잡한 다세포 생물에 이르기까지 협력은 어떻게 생명체의 탄생을 이끌고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했는지 설명한다. 또 수학자로서의 통찰을 발휘해 게임이론에서 비롯한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협력 기제를 수학적으로 규명하고, 다섯 가지 이론으로 정련한다.
경제 교과서에서 한번쯤 죄수의 딜레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보자. 죄수의 딜레마는 상호 협력일 때 가장 큰 보수가 주어지지만, 상대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손익이 달라지므로, 상대방의 협력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결국 서로 배반하게 되고 최선의 보수를 놓치는 상황이다.
마틴 노왁은 죄수의 딜레마가 상호 협력으로 마무리되는 다섯 가지 기제로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공간 구조, 집단 선택, 혈연 선택’을 든다. 직접 상호성은 상대방의 협력이나 배반에 대한 맞대응이다. 처음 협력으로 시작해서 그다음부터 상대방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가는 팃 포 탯(TFT) 전략은 직접 상호성의 원칙에서 비롯한다. 팃 포 탯은 공동체 전체와 대면 접촉이 가능한 작은 사회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사회 규모가 커지면 그 이상의 전략이 필요하다.
간접 상호성은 상대방과 직접 교류해 보지 않고서도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평판’에 의해 주도된다. 평판은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만의 정보 공유 방식이다. 평판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더불어 정보를 해석, 판단, 수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한데, 저자는 인간의 복잡한 뇌 기능은 이런 능력의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보자면 늘 협력하는 자와 늘 배반하는 자가 함께 있다면 협력자는 배반자에게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협력하는 인간이 꾸준히 생존할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인가? 공간 구조와 집단 선택 이론은 협력하는 자들이 무리를 이룸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혈연 선택은 유전적 거리에 따라 희생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는 혈연 선택을 수학적으로 정돈한 개념으로, 협력은 내가 치러야 하는 비용과 상대의 이득, 그리고 나와 상대 간 근친도의 함수로 나타내진다. 마틴 노왁은 포괄 적합도 적용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이를 협력의 기제로 포함시킨다.
<초협력자>에서 소개하고 정련한 여러 이론은 <이타적 인간의 출현>과 많은 부분 겹친다. 앞의 책은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그다음 해 한국에서 번역됐는데,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초판이 2004년에, 그 5년 후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그러므로 <초협력자>를 읽은 다음<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읽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서는 ‘공공재 게임’ 실험의 결과를 완전하게 설명하기 위한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마틴 노왁은 <초협력자>에서 공공재에 한 장(章)을 할애하여 간접 상호성으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에서는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 ‘공공재’ 등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개념과 관련된 사례, 선택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보수 행렬 등을 예시하여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 보니 게임이론에 관한 책을 처음 읽는 사람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게임이론의 세계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연결할 수 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가끔 삽화도 끼어들고, 주요 개념을 따로 잡아 보충설명하고 있으며, 초보자에게 낯선 이론이나 실험의 이해를 돕는 그림도 빼놓지 않았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초협력자>와 <이타적 인간의 출현>의 핵심은 비슷하다. 인간은 서로 돕고 사는 존재이며, 협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틴 노왁은 ‘희망을 가지고 자비롭게 대하고 용서하라’는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엄정한 수학적 탐구를 통해 도달한 제언이 철학이나 종교의 경구와 유사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김수연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토머스 홉스가 가정한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그는 전쟁을 야기하는 세 가지 배경을 든다. 첫째는 자원의 희소성이다.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자니 불가피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의 공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경쟁 상태에서 언제라도 상대에게 공격받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런 불신과 공포는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명예욕이다. 자신 혹은 가족이나 동료의 명예를 더럽히는 비웃음이나 경멸의 몸짓 등에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홉스는 이런 본성의 일면 때문에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고립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본성의 어두운 면만을 보지 않았다. 자연 상태의 절망을 극복할 본성의 또 다른 측면인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 또한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평화에의 열망은 비참한 자연 상태를 끝내고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홉스는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라면 타인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극단의 불신 및 경쟁의 결과를 예측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을 강구하는 존재로 봤다. 즉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상대의 것을 빼앗고 배신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협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협력을 통해 생존의 기반을 다져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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