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규연군, 권태정군, 박수빈양, 김경태군, 김유진양, 홍수미양.
인터뷰 l 서울 수송초 솔루션팀
학생들 많이 오는데 도시락 먹을 공간 없어
중앙박물관에 편지 쓰고, 대안정책도 내놔
학생들 많이 오는데 도시락 먹을 공간 없어
중앙박물관에 편지 쓰고, 대안정책도 내놔
지난 12월21일 서울 강북구 번1동에 위치한 수송초등학교 6학년 8반. 방학식이 끝나고 6명의 학생들이 남았다. 8반의 동아리 가운데 하나인 솔루션(Solution)팀 팀원들이었다. 이들은 방학을 이용해 함께 책을 쓸 예정이다. 픽션은 아니다. 솔루션이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이뤄낸 일들을 바탕으로 쓰는 책이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에 도시락 먹을 공간이 없다는 문제제기를 해왔다. 박물관에 민원을 넣었고,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공립박물관 편의시설에 대한 대안정책을 생각해냈다. 이 안은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게 편지로 써 전달해둔 상태다. 학생들은 이 활동으로 10월20일 제4회 청소년사회참여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솔루션의 활동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됐다. 사회시간. 담임 배성호 교사의 한마디가 단초를 제공했다. 배 교사는 “민주주의란, 자신의 주변, 생활 속 작은 것부터 해결해나가는 것”이라며 “한 예로, 여러분이 많이 가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면 도시락을 먹을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박수빈양의 머릿속엔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구요. 도시락을 준비해 갔는데 먹을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그 상황에서 비까지 오면 어떻게 하나 싶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친구들한테 “관심 있으면 모여보자”고 제안했다. ‘해답’이라는 뜻을 가진 솔루션을 결성한 사연이다.
팀 결성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장답사였다. 7월13일. 일부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박물관을 찾았다. 비 오는 날 점심시간, 국립중앙박물관 정문 앞 계단에서는 처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초등학생들과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박물관에서 나와 정문 앞 야외 돌계단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돌계단은 비에 젖고 있었다. 박물관 안에 도시락 먹을 장소가 있는지 찾아봤다. 카페나 음식점에는 ‘외부 음식 반입금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2층 카페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는 학생들이 보였다. 하지만 곧 직원이 주의를 줬다. 학생들은 서둘러 도시락을 가방 안에 넣고 나왔다.
현장답사를 한 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적이 더 뚜렷해졌다. 쉬는 시간,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 회의를 시작했다.
솔루션처럼 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다. 마침 다른 학교 친구들도 이와 관련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박물관 누리집에 게시된 민원도 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 단체 관람 때 우천시에 도시락 먹을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전자민원을 올렸다. 박물관쪽에서는 “쾌적한 전시 환경과 유물의 보존 때문”이라는 말을 답변으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사이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학 전에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6학년 친구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하는 거였다. 서명을 받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김유진양은 “6학년 전체가 300명인데 100명 정도밖에 안 해줬다”고 했다. 홍수미양은 “우리한테는 무척 중요한 일이었는데 다른 아이들한테는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박물관 상황은 어떤지도 살펴봤다.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서울과학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등은 실내에 도시락 먹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놓고 있었다. 다른 박물관들을 살펴보면서 박물관 안에 유물이 전시된 공간이 아닌 지하를 활용하거나 지상에 비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체공간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넓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대안도 생각해봤다.
9월, 박물관 쪽에 전자민원을 넣었다. 1차 답변에서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불가하므로 박물관 실내에서는 도시락을 먹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다음엔 ‘실내에 도시락 먹을 공간이 있는 다른 박물관들과 비교해 중앙박물관에도 대체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써서 보냈다. 여름방학에는 박물관 관장한테 직접 편지를 썼다. 마침 박물관 관장한테 보낸 편지가 한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이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9월14일 박물관장 이름으로 편지가 왔다.
“우선 교육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체험교실 중 한 교실을 박물관 개관일(화요일~일요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도시락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답니다.”
학생들은 “박물관장님께서 도시락을 먹을 실내공간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읽고 박물관을 설계할 때 처음부터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대안정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앞으로 국공립박물관에서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는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주로 학생들이니 박물관에서는 ‘박물관 관람객위원회’를 구성해 학생들을 비롯해 교사, 관람객 등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국회의원과 문화부 장관한테 전달했다.
지난 10월, 청소년사회참여대회에 참가했을 때 사람들은 “너희가 한 게 맞느냐?”고 같은 질문을 해댔다. 이 대회에서 초등학생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솔루션 여섯명은 “이 활동이 초등학교 6년 동안 처음 해본 동아리 활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순탄치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김규연군은 “다른 친구들이 한다면 ‘각오하고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여섯명이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견을 조율하기도 힘들었다.
이 활동에서 배 교사는 활동을 독려하고 조언하는 구실을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홍수미양은 “저희가 더 고민해봐야 할 일이 뭔가를 잘 설명해주셨다”며 “<학교에서 정치를 해요!> <놀이터를 만들어주세요>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등 우리와 같은 학생들 이야기를 담은 책도 소개해주셨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게 많은 눈치였다. 권태정군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뭔가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 했다. 김경태군은 “어떤 걸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박수빈양은 “일상에서 조금 불편한 것들을 보고도 별생각 안 하고 지냈는데 이젠 그냥 불편한 데서 멈추지 않게 된다”며 “위대한 사람들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학생들도 주변 일부터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민주주의는 명사 아니라 ‘살아 있는 동사’ 인터뷰 l 배성호 교사 수송초 솔루션 곁에는 이 활동을 독려한 교사가 있었다. 담임 배성호 교사는 2006년, 당시 제자였던 당산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통학로에 자전거 도로 만들기 운동을 할 때 이 정책이 실현되도록 곁에서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배 교사를 만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 사회참여교육의 의미를 물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활동이 단순한 대회 참여에 끝나지 않고 꽤 큰 활동이 됐다. 이런 활동을 독려한 이유가 있나? “학교에선 수많은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교과서에는 자전거 타기 생활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선 자전거 통학 금지 가정통신문을 나눠준다.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큰 외형을 자랑하지만 관람객의 다수를 이루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는 주제가 정해진 학급회의 등으로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시민교육에 참여한다. 이런 진부한 방식으로는 아이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현실 문제에서 출발해야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하나?
“교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선 아이들 혼자 하기 어렵다. ‘얘들아. 이런 방향도 있다. 이렇게 실천한 아이들도 있는데 어떤 거 같냐?’ 자료를 나눠주고 이렇게 질문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도왔다. 아이들끼리 논의가 무르익으면 빠진다. 한 발짝 떨어져서 유심히 봤다. 가장 중요한 건 결과로서 ‘어떻게 된다’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뭘 생각할까’에 초점을 뒀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명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동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책도 준비한다고 들었다.
“지금 각자 쓸 부분을 나눠보고 있다. 이런 사례를 외국 사례로만 접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사회참여 사례(<길을 찾는 아이들>)도 함께 읽어보자고 추천해줬다. 책 속 친구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솔루션 활동을 보면서 느낀 점은 뭔가?
“아이들 활동을 보면서 문득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이 떠올랐다. ‘건축가는 ‘내가 그린 대로 살아라!’라고 주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불확정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주민들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재조직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브라질의 생태도시 쿠리치바가 칭찬받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공공건축가들이 이를 반영해 작업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한다면 공공도서관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에 아이들이 도시락 먹을 장소도 없는 건축 현실과 정답만 채우라고 강요하는 교육 현실은 묘하게 닮았다. 이미 정해진 건축과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에 아이들을 강제로 끼어 맞출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며 새롭게 의미를 형성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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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명사 아니라 ‘살아 있는 동사’ 인터뷰 l 배성호 교사 수송초 솔루션 곁에는 이 활동을 독려한 교사가 있었다. 담임 배성호 교사는 2006년, 당시 제자였던 당산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통학로에 자전거 도로 만들기 운동을 할 때 이 정책이 실현되도록 곁에서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배 교사를 만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 사회참여교육의 의미를 물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활동이 단순한 대회 참여에 끝나지 않고 꽤 큰 활동이 됐다. 이런 활동을 독려한 이유가 있나? “학교에선 수많은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교과서에는 자전거 타기 생활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선 자전거 통학 금지 가정통신문을 나눠준다.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큰 외형을 자랑하지만 관람객의 다수를 이루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는 주제가 정해진 학급회의 등으로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시민교육에 참여한다. 이런 진부한 방식으로는 아이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현실 문제에서 출발해야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성호 수송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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