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변호사의 제대로 공부법
<개그콘서트> ‘어르신’ 코너에는 왕할아버지가 “~하면뭐하겠노, 조오타고 소고기 사묵겠지~”를 반복해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코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으로 등장하는 왕어르신의 이 말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전형적인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면 머하겠노(A), 소고기 사묵겠지(B)”의 유머에는 객관적인 구조가 있다. (A)부분에서는 항상 미래를 대비하는 수단으로 무언가를 쌓는 활동이 나온다. 대기업 취직, 학위 취득, 돈을 많이 버는 것 등등이다. 반면에 후렴구로 반복되는 소고기를 먹는 것은 그 자체가 즐거운 목적인 활동이다. 이 개그에서 (A)부분에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넣으면 개그가 성립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머하겠노, 조오타고 소고기 사묵겠지”나 “친구하고 재밌게 얘기하면 머하겠노, 조오타고 소고기 사묵겠지”는 개그 요소가 거의 없다.
간단하게 (A)활동을 스톡(stock), (B)활동을 플로(flow)라고 칭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는 스톡과 플로의 중요성에 관해 통찰을 주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플로 진영부터 보자.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 ‘파홈’은 최대한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하루 만에 엄청나게 먼 거리를 다 돌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하다가 진짜 죽어 버렸고, 그 결과 그가 차지한 땅은 고작 그가 묻히는 크기만큼의 땅에 불과하게 되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평생 고집스럽게 돈을 쌓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던 스크루지는 깨달음을 얻고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돈을 잘 쓰는 일의 가치를 알게 된다. 스톡 진영도 만만찮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일하지 않고 놀다가 겨울이 되어서 굶어죽게 된다. 반면 제대로 스톡 활동을 한 개미는 살아남는다. 또한 실제로 고된 노력 끝에 빛나는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동기를 심어준다.
“스톡과 플로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플로 활동이 끝없는 스톡 사이사이에 잠깐 주어지는 보상으로만 인식되어, ‘소고기 먹기’와 같이 빈약한 일회성 소비 활동으로 붕괴하였다는 사실이다. 수준 높은 플로 활동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정력 투자를 해야 한다. 춤을 잘 추거나, 멋진 그림을 그리거나, 즐거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 활동에 몰입해서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해결로서의 공부는 스톡과 플로의 대립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조금씩 더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면서 성취다. 물론 공부를 하는 모든 시간이 쾌락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단순히 먹고 구경하는 것보다는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능동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수준 높은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복합적이고 도전적인 플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준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도 스스로 그런 기회를 누리는 것이다. 왜곡된 교육제도는 공부의 이 독특한 성격을 지워버린다. 학생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대학생들은 강의가 휴강하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 플로의 성격이 박탈된 공부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은 공부하는 개인으로서나 사회 구성원으로서나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한 <이것이 공부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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