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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들 공부에도 ‘힐링’이 필요하다

등록 2013-01-21 15:02

학습효과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기숙학원.  <한겨레> 자료사진
학습효과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기숙학원. <한겨레> 자료사진
박재원의 공감학습
자녀의 공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기피증 치유가 먼저
강제로 몰아넣은 ′윈터 스쿨′학습 효과 거두기 힘들어
예비군(?)들이 추운 겨울에 집을 떠나 고생하고 있다. ‘예비’ 중1, ‘예비’ 고1, ‘예비’ 고3들이 지금 ‘윈터스쿨’에서 공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격리된 상태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올인하겠다는 의지와 각오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과연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윈터스쿨’은 학생과 함께 학습효과도 감금

겨울방학만 되면 유독 특수를 누리는 사교육이 있으니 ‘윈터스쿨’이 그것이다. 굳이 학습효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매력적이다. 기숙사에 들어가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대로만 움직이면, 집에서 빈둥거리는 경우에 비해 정말 엄청난 학습량을 소화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게임,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윈터스쿨의 인기 요인은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예비군’들의 윈터스쿨을 향한 행렬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예비군들의 얘기지만 진짜 군인들 얘기와 헛갈리기까지 한다. 때가 되면 군대에 가는 것처럼 겨울방학이 되면 윈터스쿨에 가야 한다는(사실은 보내야 한다는) 생각마저 감지된다.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처럼 윈터스쿨도 예비군들에게 정말 특효가 있는 것일까?

우선 과거에 윈터스쿨을 거쳐 간 ‘선배 예비군’들의 오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윈터스쿨에서 쌓은 전투력을 바탕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사례는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보무도 당당히 윈터스쿨에 입교해 소정의 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굳어진 표정 말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로 복귀하는 것 같다. 분명 부모가 그토록 간절히 원한 대로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했고, 부모 복장 터지게 만드는 게임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은 게 분명한데 왜 달라진 것이 없단 말인가?

두뇌과학과 실험심리학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확인된 사실이 있다. 사람의 얼굴표정과 감정상태 그리고 사고방식과 학습효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발적으로 윈터스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얼굴표정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격리된 상태에서 감옥살이처럼 느껴지는 생활을 하면서 유쾌한 감정을 갖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공부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얼굴표정도, 감정상태도, 사고방식도 모두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공부가 진행되고 있는 윈터스쿨에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에서 바로 곶감을 따려는 욕심과 다르지 않다.

스파르타는 옛날, 지금은 힐링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죄로, 부모의 명령에 따라 윈터스쿨에 끌려간 아이가 간절히 애원한다. 앞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테니까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 부모들은 대부분 말한다. “그 정도 의지도 없으면서 도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성적이 이 모양이면 제대로 대학 가겠어, 그 정도는 이겨내야 희망이 있지!” 윈터스쿨의 학습효과는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비싸다는 생각에 잠시 주저하지만 결국 자녀를 윈터스쿨에 보내는 학부모들을 비롯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스파르타’라는 말은 매력적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스파르타식 학생 관리가 될 텐데 학생이 들어가면 학원 문을 밖에서 잠근다는 자물쇠 반부터 사실 역사가 깊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힐링은 스파르타와 정반대에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힐링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상황에서 아직도 스파르타를 쫓는 게 우습게 보이지만 유행이냐 아니냐의 차원을 떠나 절박한 심정으로 선택한 스파르타에서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군대 갔다 와서 사람 됐다고 하더니 여전히 그 모양이냐!”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는 지적에 가슴이 아프다. 윈터스쿨을 나서면서 하는 말도 절망적이다. “고생은 한 거 같은데 뭘 배웠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물론 윈터스쿨이 성적 역전,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대부분 윈터스쿨 자체의 효과라기보다는 남들은 다 회피하는 윈터스쿨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태도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우연적인 기회나 계기를 통해 공부에 대한 힐링이 된 개인적인 사연이 역전 드라마의 주제이지 윈터스쿨이라는 배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부하기 싫다는 상태’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 없는 상태’가 힐링되어 공부에 대한 의욕을 가진 상태에서 윈터스쿨에 들어간 경우와 윈터스쿨에 들어가 더욱 상태가 악화된 경우로 구분된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재범을 계획하고 누구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정말 서로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방학, ‘공부 힐링’ 위한 적기

성적 역전은 보통 윈터스쿨이 아니라 ‘공부 힐링’에서 비롯된다. 공부 힐링이란 자신도 모르게 굳어진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다시 말해 정서적인 거부감이나 기피증이 치유돼 한번 해볼 만하다는 태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그런 힐링이, 그러니까 공부에 대한 태도와 정서의 변화가 우연적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우연히 발생하는 조건을 면밀히 분석하면 필연에 가깝게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보통 힐링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 학기보다는 방학 중에 우연히 힐링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관심이 가는 내용을 공부하다가, 또 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하다가 문득 깨달은 공부의 묘미에서 비롯된다. 공부에서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그동안 공부본능을 억압하고 있었던 사슬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힐링에 꼭 필요하다. 학교 진도에 끌려다녔던 자신을,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자신의 공부에 정작 자신이 주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제부터는 진정한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공부가 힐링되는 순간이다. 가족여행을 통해, 아빠와 아들처럼 특히 평소 사이가 멀어졌던 가족끼리만 떠나는 여행도 힐링에 도움이 된다. 방학에 필요한 것은 그래서 윈터스쿨이 될 수 없다.

학기 중의 부진을 방학을 통해 만회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부진의 원인을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기 십상이다. 학기 중에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방학 동안에는 힐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힐링이 된 상태에서 스파르타식 관리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윈터스쿨의 효과를 칭송하는 목소리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부정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따름이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충분한 의견 교환과 합의가 없으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공부에 부족한 점이 있음을 깨닫고 그걸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결과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혹시라도 열심히 해주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솔직한 부모의 심정이지만 부질없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가둬놓고 공부시키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깨끗이 버려야 한다. 행동을 교정하고 습관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 당장 부족한 공부라는 행동을 대신 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돈만 내면 되는 편리함, 긴 겨울방학 동안 아이와 갈등 없이 집에서 홀가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파르타식 관리가 아니라 공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힐링이다.

실력과 성적 차이가 결국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서 나옴을 직시하고, 아이가 하기 싫은 과목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 바란다. 부진한 과목의 실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할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천천히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자. 학원이나 과외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목적이 성적 역전이 아니라 공부 힐링이 되어야 한다. 겨울방학을 통한 역전은 분명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공부 힐링을 통해 재충전하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그 결과 새 학기 때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다. 아이의 진정한 바람이기도 하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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