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학교만들기 청소년모임’ 소속 친구들이 각 지역 교육청과 정부서울청사, 경찰청, 도의회 앞에서 각자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좋은학교만들기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좋은학교만들기 청소년모임 제공
온라인에서 서로의 고민 들어주고 해결 위해 힘써
학교 변화 위해 1인시위, 서명운동에도 적극 나서
학교 변화 위해 1인시위, 서명운동에도 적극 나서
‘올해 고3 되는 여학생인데, 9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렸어요. 지금은 아닌데 친구 없는 왕따예요. 왕따보다 소외감이 많이 들어요. 자살 생각도 나고요.’
‘하… 또 글을 올리네요. 1주일 후면 개학인데, 너무 두려워요 ㅠㅠ 학교 가면 맨날 혼자 지내야 돼요. 제가 어디가 못나서 학폭(학교폭력)도 당해야 되고 친구 없이 지내야 되는지… 힘들고 진짜 고통스럽네요. 하루하루가 참 지옥 같고 지치네요.’
‘좋은학교’ 왕따 해결 게시판에 올라온 한 학생의 고민이다. 그 아래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라’, ‘117에 신고해라’, ‘너무 소중한 사람이니 힘내라, 사랑한다’,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라’ 등등. 각자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남긴 격려와 위로의 말들이었다.
‘좋은학교’는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이 원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2008년 고등학생 몇몇이 만든 카페가 현재 오프라인 모임으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말 서울을 포함한 전국 15개 지역에서 1500여명의 학생, 학부모, 교육 관련 관계자들이 모여 ‘좋은학교만들기 청소년모임’(대표 송누리)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왕따나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진로나 성적, 이성·친구관계 등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준다. 또 ‘7분 좋은 습관’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고 존중하기, 주변 친구에게 공감과 응원의 말 해주기, 꿈 찾고 목표관리하기 등의 멘토링도 해주고 있다. 대학생 멘토와 의사, 마술사, 피디, 변호사 등 전문가 멘토단이 함께 활동중이다. 이밖에 좋은 학교 사례도 모으고, 오프라인에서 서명 운동과 1인시위도 벌인다. 각 지역 교육감에게 모임의 취지와 더불어 격려와 지원을 부탁하는 편지도 보냈다.
모임에서 활동중인 대구 경북여고 1학년 박하늘양의 꿈은 심리치료사다. “요즘 자살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찾다가 우연히 ‘좋은학교’에 들어왔다”고 말한 그는 게시판에 힘들어하는 글을 보면 같은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나 격려를 해준다. 박양은 “요새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당한 친구들이 자기가 왜 당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 학생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얘기해주면 제가 제3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고 얘기해줘요. 물론 위로를 가장 많이 해주죠”라고 말했다.
김희윤양은 충북 청주에 사는 예비 고1이다. 그는 “처음엔 가입만 하고 활동을 거의 안하다가 친구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움도 받고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 ‘좋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양은 단짝이 전학을 간 뒤 다른 친구들이랑 틀어지면서 혼자 지내고 학교도 가기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 옆 건물에 있는 다른 반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서 학교생활이 다시 좋아졌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소수만 깊게 사귀자는 평소 생각이 바뀌었다. 나와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꼭 같은 반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주변을 넓게 돌아보며 여러 친구들과 다양하게 어울리라고 덧붙인다”고 했다. 김양은 ‘좋은학교’에 들어와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길거리에서 ‘좋은학교 만들기 100만 서명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 “사실 친구들은 ‘네가 그런 걸 왜 하냐’며 아직까지 이상한 눈으로 보고 부모님도 신기해해요. 하지만 이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도 걸게 됐어요.”
심리학을 공부하다 우연히 아이들을 만나게 된 송누리(25) 대표는 “비행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이들의 방황과 고민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뭔가 도움이 돼 줄 수 있지 않을까 찾다가 활동하게 됐다”며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 중 학교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학생들이 많다. 아이들끼리 서로 공감하고 상담해주는 걸 보면 가슴이 찡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문제가 생기면 모른 척하거나 욕하기보다 먼저 나서서 같이 얘기해봤으면 한다. 어른들도 ‘요즘 애들 문제야’라고만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모임의 충남 대표인 청양의 청양고 예비 고1인 양성훈군은 몇 년 전만 해도 애들을 때리는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뉴스에서 괴롭힘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학생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았다”는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지금은 오히려 싸움을 막고 왕따를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는, 친구들끼리 서로 돕고 학생 고민을 잘 들어줘서 모든 애들이 항상 웃으며 다닐 수 있는 학교예요. 그런 학교를 위해 친구들한테도 같이 활동하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해요.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힘 있는 어른들도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해주겠죠?”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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