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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끔찍한 학교폭력, 실제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등록 2013-01-28 14:19

박광일씨와 양진현씨가 고등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학교폭력 예방 손수제작물(UCC) ‘우린 친구였잖아’ 화면.(왼쪽)   박광일·양진현씨 제공,
박광일씨와 양진현씨가 고등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학교폭력 예방 손수제작물(UCC) ‘우린 친구였잖아’ 화면.(왼쪽) 박광일·양진현씨 제공,
학교폭력의 당사자들, 각각 소설 출간해 화제
아이들의 장난이 한 가정을 파탄 낼 수 있어
피해 학생들, 주변과 소통하며 상처 달래길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소설도 못 썼을 거예요. 우리가 마지막 피해자였나 보다 했는데, 주변에서 가까운 아이들이 죽고, 작은아이도 친구 장례식에 다녀오고… 계속 일이 일어나니까 힘들지만 우리 얘기를 꺼내서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다 싶었어요.”(김혜진)

최근 학교폭력의 실제 피해자들이 각각 소설을 냈다. <돌멩이>(왼쪽 표지)는 학교폭력으로 희생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저자 김혜진씨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끔찍한 학교폭력 경험담을 풀어냈다. 그는 “소설의 구성상 변형이 가해지긴 했지만, 대부분 우리 가족이 직접 겪은 일이다.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예쁨을 많이 받고 잘 자란 아이였다. 어느 날부터 안 하던 행동을 하고 반항을 하기에 사춘기를 별나게 겪는다고만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그의 첫째 아들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중학교 때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김씨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중학교 때 아이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무릎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하고 입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이가 택시를 타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치료가 한참 남았는데 오면 어떡하냐고 나무라자, 아이는 죽으면 죽었지 못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나중에 병원에 갔는데,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아이가 굉장히 힘들게 지냈다는 걸 알게 됐다. “매일같이 찾아와서 아들을 챙기고 돌봐주며 저더러 걱정 말라고 했던 친구들이 알고 보니 가해자들이었어요. 그 애들은 아이를 침대 구석에 몰아넣고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며 자기들 아지트로 삼아 놀았더라고요.”

그는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들과 떨어지니까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학교를 찾아갔던 그는 아들의 또 다른 모습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집에서 일찍 나간 아이가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시간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담배까지 피우고 온다는 말을 처음엔 믿지 못했다. 내가 알던 아이와 선생님이 말한 아이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아이를 붙들고 얘기하다 아이가 또 다른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는 그 일대 학교를 통틀어 가장 힘이 센 학생을 일컫는 ‘연합찐’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각종 협박과 폭력을 견뎌내고 있었다.

연합찐은 수시로 아이에게 문자로 명령을 내리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보복이 두려웠던 아이는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몸에 난 상처를 감추기 급급했다. 그 뒤에도 보호해 줄 테니까 자기 ‘여자친구’를 하라던 또 다른 친구에게 거부했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맞았다. 결국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아이를 자퇴시키고, 아이는 가출을 했다. 학교를 벗어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지만, 그 악몽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형편상 이사를 못 갔던 아이가 가출 뒤 집에 돌아오는 날 가해 학생들에게 걸려 또다시 맞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괴롭히던 ‘놀잇감’이 없어지자 밖으로 불러내고 안 나가면 집으로 쳐들어왔다. 엄마가 있는데도 집 앞에 쳐들어와서 각목과 발로 문을 두드려댔다. 그는 “아이들은 그냥 장난이라고 얘기하고, 정말 유희처럼 생각하고 하지만, 한 가정을 끝장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부모나 선생님의 모습이 소설 속에서는 가끔 나약하고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에 일어났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거나, 이미 불량학생으로 찍힌 아들에게 전학이나 자퇴를 강요했다. 엄마였던 그 또한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선생님이나 가해자 부모들을 만나서 부딪혀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내 얘기에 상대도 하지 않았다. 아이 몸에 난 상처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짐작은 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는지 둔했는지 그냥 넘긴 적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주도 학교폭력 피해자 현민(가명)이의 어머니가 2008년 5월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뒷문에서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오른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제주도 학교폭력 피해자 현민(가명)이의 어머니가 2008년 5월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뒷문에서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오른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는 사람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랐다. “학교폭력은 그 아이에게도 치명적이지만 그의 가족 모두 피해자예요. 부부의 미래이고 꿈이었던 아이가 그렇게 당하고 오면 집안의 미래와 꿈이 사라지는 거죠. 내가 애써서 노력하면서 자식 잘 키우자고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 일하고 살 의지를 상실하게 돼요. 저도 남편이 죽고 나서 애들 잘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지내다 망가지는 아이를 어떻게 해줄 수가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져 여러번 죽음을 생각했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학교폭력은 가해자가 일단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요즘 부모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집에 가면 쉬느라 아이들 관찰을 잘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잘 모르지만 아이는 엄마가 보려고 하면 보인다.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일단 학교를 안 가려고 하고 평소와 표정부터 다르다. 옷이나 신발에 쓸린 자국이 나서 먼지가 깊게 들어가 있다. 내가 못 볼 뿐 아이는 입을 닫든 반항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호소를 한다. 우리 애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 말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잊고 싶은 기억과의 동행>(오른쪽 표지)이란 소설을 출간한 이학준(17)군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한 뒤 현재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

유치원을 안 다녀서 친구들과 어울린 경험이 없었던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다 게임 같은 것도 즐기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그 당시 즐겁진 않았던 것 같은데, 부모님이랑 대화도 많이 하고 선생님도 인지를 해서 아이들을 자제시키고 어울릴 수 있게끔 노력을 해줬다”고 얘기했다.

그는 학교라는 곳이 자신과 잘 맞지 않고, 학교 밖에서 다른 가치들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그만뒀다. 이후 학교를 다니며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 무렵 대구 학교폭력 피해학생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것들이 동기가 돼서 소설을 써보자 맘먹었다. 3일 만에 A4 8장 정도의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고, 이후 연락이 와서 생애 첫 소설을 발표하게 됐다.

그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입장을 잘 모르는데, 학생들의 시각과 입장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자 글을 썼다”며 “소설 속 이야기는 내 경험이라기보다 주변에서 직접 본 것들, 현실에서 있을 만한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학생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소설 속 주인공은 29살이 돼서 그 당시 가해자였던 ‘놈’을 만나게 된다.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 맞아서 정신을 잃게 되는데, 눈을 뜨자 10년 전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타임슬립, 즉 시간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고등학생인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고, 그를 도와준다고 대신 벌인 싸움이 아이를 가해자로 변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그는 점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어가는 예전의 ‘나’를 보며 당혹해한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건은 일어나고 그는 다시 예전의 ‘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주인공은 가해자가 된 과거의 자신에게 “피해자를 위해 해야 하는 건 도망가지 말고 사과하고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거”라고 얘기한다.

이군은 이런 설정으로 소설을 전개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과거의 자신을 대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며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 소재를 찾기 위해 종종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학교폭력의 원인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자신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으면서 흥미의 대상으로 생각하다 보니 갈등이 일어나고 주변 아이들까지 방관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학교에는 침략국, 속국, 중립국의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하며, 이 중 침략국과 중립국은 연합국”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중립국은 자신들마저 속국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저자인 이군도 “학교폭력이라는 게 피해자 아니면 가해자다. 그 둘의 경계는 없고 영원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다지 해결을 잘한 편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학교폭력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역할도 커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해결은 힘들다고 봅니다. 그렇더라도 피해자가 포기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자기 상처만이라도 달랬으면 좋겠어요.”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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