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방안 따라 초등부터 교과서 바뀌어
부모들, 벌써부터 학원가 기웃거리며 준비
초등1,2 교과서는 단 두 단원 적용했을 뿐
부모들, 벌써부터 학원가 기웃거리며 준비
초등1,2 교과서는 단 두 단원 적용했을 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지난 1월24일. 대전광역시 서구 목원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밴드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노래 ‘가시나무’가 울려 퍼진다. 노래가 끝나자 마이크를 들고 있던 고양외고 박성은 수석교사가 청중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이 노래가 나오는 동영상을 놓고 무슨 수업을 하실 건가요?”
박 교사의 질문에 강연장에 있던 교사들이 하나둘 손을 들어 대답한다.
“함수요!”
“집합이요!”
박 교사가 미소를 지으며 다음 설명을 이어간다.
“네. 좋습니다. 그렇게 사용하세요. 저는 ‘부등식의 영역’에 대해 수업할 때 이 동영상을 활용합니다. 원래는 마음이 한 개였는데 원을 그리면 영역이 2개 생깁니다. 원을 그리다 보면 ‘경계’가 생깁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기준’, ‘가치관’이 생기는 겁니다. 이번엔 지금 제가 화면에 보여드리는 두 개의 신문 헤드라인을 보세요. 연평도 포격 사건을 두고, 한 신문은 ‘연평도가 공격당했다’고 썼고, 한 신문은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고 썼습니다. 저는 두 신문을 아이들한테 보여준 다음에 ‘네가 기자라면?’ 이렇게 묻고 다녔습니다. 답은 바로 듣지 않았습니다. 스토리텔링 수업에서는 질문이 아닌 발문을 하는데 발문에서는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하는 게 발문이거든요.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부등식을 이해하고, 표현해보도록 시간을 주는 겁니다.”
이 강의는 사단법인 전국수학교사모임이 주최한 ‘제15회 매스 페스티벌’(이하 페스티벌)의 많은 강의 중 ‘스토리텔링 교수학습방법과 서술형 평가문항을 통한 교실수업 개선’이라는 강의였다. 페스티벌은 전국 중·고교 수학교사 400여명이 참여하는 행사로, 3박4일 동안 분과별 강의와 체험형 워크숍 및 토론, 생활 속에서 수학을 찾아보고 배우는 매스투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대규모 행사는 교사들에게는 다양한 수업 혁신 사례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다.
박 교사가 이런 스토리텔링 수학 수업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수학 이거 어디에 써먹어요?’라고 묻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아 나만의 스토리텔링 수학 수업을 만들어보게 됐다”며 “기존의 수학적인 언어, 실생활 속의 언어로 수학을 표현하는 삶의 언어, 여기서 나아가 수학으로 한 편의 에세이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심미적 언어 세 가지를 모두 담은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사의 강의는 많은 교사들에게 자극제 가 된 듯했다. 대전 대신고 홍성일 교사는 “대부분의 수학교사들이 입시평가 문제에 찌들어 지식 전달 수준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한서대 수학과 이광연 교수의 ‘스토리텔링 기반 수학 수업 전략에 관하여’라는 주제의 강의가 한창이었다. 이 교수는 수학적 개념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나 단서를 제시하는 방법, 실제 생활에서 유용한 수학적 개념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 학습 내용에 게임 요소를 제시해 팀별로 흥미를 높이는 수업 방법 등 몇 가지 스토리텔링의 실제 사례를 들어 스토리텔링이 구현된 수업 현장을 상상해보게 했다. 이 강의는 자리가 부족해 서서 듣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스토리텔링 수학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2012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수학이 입시 대비 변별력 확보를 위한 수학이 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수학교육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변화의 축은 교과서와 수업 개선이다. 교과부 쪽은 “요약된 설명과 공식, 문제 위주로 구성돼 있는 기존 교과서에 수학적 의미, 역사적 맥락 및 실생활 사례 등을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해 수학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높인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경우 올해부터, 고등학교의 경우 내년부터 2009 개정교육과정에 맞춘 교과서로 이런 방식의 수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한 개념 규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교사는 물론이고 학부모, 학생들도 막연한 두려움을 품거나 오해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교과부 수학과학교육팀 정용호 연구관은 “스토리텔링은 교수학습 방법 가운데 하나로 단순 문제풀이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적 개념에 대해 그것을 왜 배우는지 배경부터 알게 해주는 등의 수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수학교과가 개념 정의→예시 문제→연습문제 등 문제풀이 위주로 이뤄졌다면 스토리텔링 수학에서는 어떤 수학적 개념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 개념이 나온 배경이 무엇인지, 특정 수학자는 그 개념을 왜 만들게 됐는지부터 먼저 이해하고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빠른 정책 현실화되는 때 우려의 목소리도
스토리텔링을 수학 수업 현장에서 적용해왔던 교사들은 “쉽게 말해서 이걸 왜 배우는지 ‘납득이 가는 수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학원가에서 이 틈을 타 ‘수학 글쓰기를 돕는 사고력 프로그램’ 등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며 스토리텔링 수학이 마치 그럴싸한 옛이야기라도 지어내야 하는 글쓰기 분야인 것처럼 혼란을 주고 있다.
오해부터 풀고 갈 필요가 있다. 최수일 수학교육연구소장은 “스토리텔링이 앞으로 수학 교과서의 대세가 될 것으로 선전하는 사교육 업체가 많은데 수학 교과서의 변화는 별로 없다”며 “이번에 새로 바뀐 초등학교 1, 2학년 교과서에도 교과서 전체 중 두 단원만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 구성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수학 교육 정책 변화가 대대적으로 예고되면서 앞으로 학교 현장이 어떤 방식으로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 수학처럼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수업이 현장에 잘 적용될 것인지 우려가 크다. 많은 교사들이 초등학교에서는 정착이 가능할 거라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한 대학의 수학과 교수는 “정책적으로는 스토리텔링 수학을 계속 밀고 가는 분위기인데 그나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과 같은 방식의 수능 평가가 있는 한 문제풀이가 계속될 거고, 스토리텔링으로 수업을 하고, 이와 연관된 서술형 평가 등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부모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스토리텔링 수학이 본격 도입됐을 때 평가는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다. 이광연 교수는 “분명한 건 스토리텔링 수학이 동기·흥미 유발은 확실히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점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교사 연수부터 시작해서 각 단원에 대한 모형 스토리텔링, 다양한 시행착오 사례 등도 나와야 한다. 근데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습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안이 나오게 된 건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수학을 써먹을 데가 있냐?’고 묻기 때문입니다. 입시 때문에 아이들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줄 여유가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거죠. 그런 취지라면 예를 들어 미적분 등은 대학으로 넘기는 등 지금의 수학 교육과정을 50% 정도 줄이고, 평가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서울 광신고 김흥규 교사는 현재 학생들과 함께 스토리텔링 수학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 시간 도입 부분에 스토리텔링 요소를 가미하거나 정기고사가 끝난 시점을 활용해 게임요소를 넣은 수업을 해본다. 이런 수업과 연동된 평가는 수행평가를 활용한다. 김 교사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잘하는 친구대로, 성적이 조금 낮은 친구는 낮은 친구대로 뭔가 활동한 결과들을 만들어내는데 각자 나름대로 잘해서 내는 모습에 나도 많이 놀랐다. 이런 방식의 수업과 평가가 교과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한테는 자신감도 갖게 하고, 소통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책이 서두르는 것처럼 본격적인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취지는 참 좋습니다. 다만, 급하게 서두르니까 현장은 당황스러울 겁니다. 우리나라는 핀란드가 아니잖아요. 현실적인 평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수업에 맞춰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 논란이 붙으면 그야말로 시험을 보기 위한 스토리텔링 수업이 될 겁니다. 현장에서 이전부터 이런 방식의 수업을 해왔던 교사들의 수업 혁신 사례가 공유되는 게 더 중요하고,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걸 너무 형식적으로 매뉴얼화해서 제시하면 이해도 잘 안 되고, 현실 적용도 어렵거든요. 매번 하긴 어렵고 가끔씩 이런 방식을 도입해서 여유를 주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edui.com
지난 1월22일부터 25일까지 목원대에서 열린 ‘매스 페스티벌’ 가운데 24일 열린 박성은 고양외고 수석교사의 스토리텔링 강의 현장이다. (사)전국수학교사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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