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이중나선>제임스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궁리
1962년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는 디엔에이(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공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연구 과정에서 세 과학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기여를 했지만, 이들 중 가장 젊었던 왓슨은 훗날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셋 중 가장 유명해졌다. 분자생물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까지 이 책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중나선>이라는 제목과 달리 왓슨 및 그와 교류했던 과학자들의 성장과정, 성격, 관심사 등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주로 다뤘다는 데 있다. 훗날 동료인 크릭은 왓슨이 그 점에서 대중의 성향을 잘 파악한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젊은 과학자 왓슨이 20세기 분자생물학에 한 획을 그은 발견에 걸맞은 천재였을까 궁금해한다. <이중나선>을 통해 드러낸 그 자신의 모습은 흔히 상상하는 천재의 유별난 모습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일화를 통해 과제에 대한 집착과 몰입이 남달랐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 관람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디엔에이 모형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누이동생 엘리자베스와 훗날 노벨상 공동 수상자가 된 윌킨스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두 사람이 사귀면 디엔에이에 대한 X선 연구를 함께 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상식의 선을 넘어선 성취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유의 낙관적 사고와 상황에 대한 긍정적 해석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과학자의 생활이란 게 지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퍽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57쪽)에서 볼 수 있듯이 왓슨은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즐겁게 상상했다. 과학 연구 과정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증거, 새로운 가설을 세울 때마다 부딪히는 이론상의 모순, 동료 및 선후배 과학자들과의 첨예한 경쟁 등 연구자를 좌절에 빠뜨리고 끝내 포기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저력은 의외로 과학자라는 직업의 미래를 낙관하고, 상황을 즐길 줄 알았던 낙천성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상황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왓슨의 태도에는 그다지 융통성이 없었다. 그의 지나친 솔직함은 자만심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다. 생화학에서 결정학으로 입지를 바꾸기로 작정한 왓슨은 코펜하겐 칼카르의 연구소를 떠나 크릭과 공동연구의 장이 되었던 캐번디시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이 결정이 실현되기 위해서 워싱턴의 특별위원회 승인이 필요했는데, 왓슨은 특별위원회의 신임 위원장에게 ‘생화학에서는 배울 것이 없으니 포기하겠다. X선 결정학이야말로 유전학의 핵심을 여는 열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 오만한 분위기의 편지로 왓슨은 특별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 X선 결정학 분야의 선구자였던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묘사한 대목에서도 왓슨 성격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로절린드가 킹스 대학 여성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에 불만이 있었고, 그런 사소한 일을 못 견뎌했다고 단정짓는데, 이는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로절린드의 불만은 더 나은 휴게실을 제공받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여성 과학자 차별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로절린드의 강연을 들으며 그녀가 안경을 벗고 머리를 조금만 우아하게 손질하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는 대목에서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까지도 드러난다. 이 책이 애초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하기로 했다가 반려된 이유 중에는 이러한 진술에 대한 세간의 거센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이중나선>에 디엔에이 연구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왓슨 개인의 경험과 느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탓에 디엔에이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분자생물학 지식을 쌓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프랜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는 그런 빈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다.
<열광의 탐구>는 <이중나선>이 발간된 지 20년 뒤인 1988년에 출판되었다. 혈기왕성한 20대에 집필을 시작한 <이중나선>에서 드러나는 왓슨의 재기발랄함과 달리, 크릭이 70대에 들어서야 펴낸 <열광의 탐구>에서는 지난날을 조용히 관조하는 노과학자의 어조가 느껴진다. 크릭은 머리말에서 왓슨의 책에서 여러 과학자들의 면모를 중심으로 기술한 만큼 그 부분은 많이 생략하고, 연구 과정의 아이디어에 중점을 두어 저술했다고 밝힌다. 또한 그림 자료 및 부록을 덧붙여 분자생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독자도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했음을 명시한다.
머리말에서 예고된 바와 같이 <열광의 탐구>에서는 자연선택과 진화에 있어 디엔에이 연구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지, 단백질과 디엔에이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X선 회절을 이용한 단백질 결정 구조 연구는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란 무엇인지에 대해 3, 4, 5, 6장에 걸쳐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아이디어 중심으로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크릭의 자서전인 만큼 <열광의 탐구>에도 저자의 경험을 기록한 부분이 많다. 이를 통해 크릭의 삶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경험이다. 크릭이 아동기에 탐독했던 책은 <어린이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예술, 과학, 역사, 신화,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이 책의 모든 주제를 열심히 읽었다. 또 원래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분자생물학으로 전환함으로써 관점의 확장이 가능했다. 9장에서 크릭은 학제간연구(學際間硏究)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었던 배경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경험이 있었음을 짐작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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