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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모여서 하기에 의미 두 배, 엄마표 품앗이공부

등록 2013-02-25 09:54

서울시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소속 가족품앗이 책사랑이 독서 수업을 하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김혜륜양, 채수민양, 이효림씨, 채수린양, 오한겸양.
서울시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소속 가족품앗이 책사랑이 독서 수업을 하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김혜륜양, 채수민양, 이효림씨, 채수린양, 오한겸양.
방과후와 방학, 모둠 이뤄 배움 나누는 가족공동체
독서부터 교과, 체험학습까지 함께하는 즐거움 커
“근데 저기 법원마크에 들어가는 꽃은 뭘까?”

지난 2월15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의 1호 법정. 초등학생 11명과 학부모 7명이 모인 가운데 한 학부모가 판사 좌석 뒤에 붙은 법원마크를 가리키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학부모의 말에 몇몇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진다.

“그냥 꽃!”

“무궁화!”

아이들의 대답에 그 학부모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 집에 가서 어떤 꽃이고, 뭘 의미하는지 알아보자.”

질문을 던진 사람은 가족품앗이 커뮤니티 ‘엄마샘아뜰리에’와 엄마샘아뜰리에의 한 팀인 ‘아뜰리에’의 회장 윤미경(34)씨. 윤씨는 이날 학생들의 법원 체험을 도운 선생님 가운데 한 명이면서 체험단에 있던 김성희(9)양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족품앗이 활동을 하는 날 김양을 비롯한 학생들은 엄마와 다른 친구의 엄마를 ‘엄마’나 ‘이모’가 아닌 ‘선생님’으로 부른다.

엄마샘아뜰리에는 의정부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가족품앗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서로 노동력을 교환해 돕는 것을 두고 품앗이라고 했다. 가족품앗이란, 돌봄과 교육 등에 관한 노동력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정 이상이 모여 그룹을 이루고, 부모들이 서로의 돌봄이나 교육에 관한 콘텐츠를 맞교환하는 식이다.

이렇게 가족품앗이가 이뤄진 건 2006년이다. 의정부 지역 학부모들의 친목모임인 ‘아기사랑’ 카페를 통해 만났다. 또래인 자녀들을 데리고 지역 문화센터 등에 함께 다녔다. 어느 날, “우리도 수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 10여명이 모여 모임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지는 가정이 나오면서 지금은 네 가정이 남았다. 1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지금 ‘아뜰리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엄마샘아뜰리에’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커뮤니티 안에는 유아팀, 초등팀 등 7개의 품앗이 그룹이 있다. 선배 격인 아뜰리에는 정기적으로 운영진 회의 등을 열어 각 그룹의 활동을 독려하고 서로 도움말을 나누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학부모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전체 회원수 150여명이다.

이날 수업을 주관한 사람은 김승선(35)씨였다. 김씨는 “법원에서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해 오게 됐다”고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법원 쪽의 안내를 받으며 실제 형사재판 참관부터 판사를 만나 직업 이야기를 듣는 경험까지 했다.

아뜰리에의 품앗이 교육 프로그램이 이런 방식의 직업체험만 있는 건 아니다. 독서, 체험, 프로젝트 학습 등 분야는 다양하다. 김씨는 “단, 학기중에는 주로 가정에서 하는 수업을, 방학중에는 밖으로 나가 체험할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고 했다. 네 가정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겹치기식 방학과제를 안 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일주일에 한번. 아뜰리에의 엄마 또는 이모는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네 가정은 로테이션 방식으로 서로의 가정을 방문해 수업에 참여한다. 공간을 내준 가정의 엄마가 선생님이 된다. 모임을 연 지 햇수로 8년째. 오랜 시간이 쌓이면서 나름의 품앗이 교육 노하우도 쌓였다. 윤씨는 “과목을 정해두고 두 사람씩 팀을 이뤄 수업하는 것도 해봤고, 특정 과목을 한 사람이 맡아 하는 수업도 해봤다”고 했다. 현재는 과목에 관계없이 네 엄마가 매주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독서, 체험, 수학, 요리, 과학 등을 한번씩 맡아서 가르쳐볼 수 있다. 윤씨는 “이렇게 하면 엄마도 성장이 빠른 것 같다. 한 과목이나 한 분야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두루 경험해보기 때문에 엄마한테 맞는 분야가 뭔지도 자연스럽게 찾게 되더라”고 했다.

가족품앗이를 하면서 엄마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공부할 이유가 생겼다. 김승선씨는 “독서를 가르치려다 보니 공부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격증 준비도 하게 됐다”며 “계속해서 성장할 거리들이 생긴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파트타임으로 독서지도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맘이기도 하다.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이나 자녀교육 등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방점을 찍고 봐야 할 대목은 이들이 공부하는 이유가 ‘우리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회원들은 “‘우리 품앗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집 아이한테 뭔가를 가르쳐준다? 가족품앗이는 이기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손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로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와 너 모두가 공통적으로 얻어가는 게 많다.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내 양육, 교육방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한지희(35)씨는 “내 생각에 이렇게 가르치는 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면서 교육이나 양육 방법에 대한 생각도 공유한다”고 했다. 윤씨는 “보통 엄마 눈에는 딸의 단점이 많이 보인다. 내 딸을 보면서도 대충 후다닥 끝내고 놀려는 태도가 불만이었는데 다른 엄마들은 ‘손이 빠르다’고 칭찬을 하더라. 내 시각으로만 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 품’만 고집하던 아이가 달라지는 변화도 볼 수 있다. 품앗이 수업에선 내 엄마가 나만의 엄마가 아니라 모두의 ‘선생님’이 된다. 그런 탓에 수업을 주관하는 가정의 아이는 칭얼댈 일이 많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지희씨는 “딸 수민이가 ‘엄마 껌딱지’로 불리던 아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달라졌다”고 했다.

“항상 제 옆에만 있고 떨어질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근데 품앗이 활동을 하면서는 제가 없어도 알아서 잘합니다.”

가족품앗이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네 엄마는 이런 품앗이 활동을 하는 엄마들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저 엄마는 특별할 거다”라는 시선이다.

김승선씨는 가족품앗이를 해보려는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 엄마들이 특별한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력하는 평범한 엄마들’이지 ‘특별한 엄마’는 정말 아닙니다.”

지난 2월14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한 아파트. 채수린(8)양의 집에 세 여자 어린이가 모였다.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 채수민양, 오한겸양, 김혜륜양이다.

“자. 오늘은 ‘겸손’에 대한 고전을 함께 읽어볼 겁니다.”

채수린양의 엄마 이효림(35)씨가 책을 펼치면서 겸손과 관련한 책 내용을 15분 정도 읽어내려갔다.

“이번에는 실생활에서 겸손했던 행동이나 말을 떠올려볼까요? ‘너 머리가 너무 좋은 거 같아.’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을 때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요?”

이씨의 질문에 채수린양이 답했다.

“고마워. 근데 나는 아직도 부족해서 배울 게 많이 있어.”

네 어린이는 돌아가며 실생활에서 잘난 척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한 뒤 겸손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책사랑’이라는 가족품앗이의 독서 수업이다. 독서와 함께 도덕, 미술 등도 더해져 있다.

아이들 넷과 이효림씨까지 다섯 명이 책사랑이라는 품앗이를 꾸리게 된 건 1년 전이다. 이씨가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실시한 가족품앗이 발표 행사에 참여했던 게 계기가 됐다. 이씨는 이 행사를 통해 품앗이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파트 단지에서 서로 알고 지낸 ‘언니들’(이웃 엄마들)을 모았다. 딸들은 일곱 살 동갑내기였다.

책사랑의 가족품앗이 수업은 조금 독특하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른은 이씨 혼자다. 나머지는 아이들이다. 다섯 사람은 돌아가면서 수업을 준비한다. 어렵지 않다. 각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갖고 와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처음에는 이씨가 적극적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다섯 명이 돌아가며 책을 읽는 방식이 정착되면서부터 아이들은 알아서 책을 준비해 오고 독서 이후의 활동까지 마무리한다. 이씨는 “함께 읽을 책을 고를 때 기준이나 조건 등이 없다”고 했다.

“5주에 한 번은 제가 교훈이 있는 고전이나 성서 등을 읽어줍니다. 근데 아이들이 골라 오는 책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이들마다 관심을 기울이는 책이 있더라구요. 그게 그 아이가 지금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입니다. 저희 딸은 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그림책을 갖고 있지 않은데 혜륜이는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그림책을 자주 갖고 옵니다. 아이들이 정말 재밌어합니다. ‘아! 아이들 눈은 여기 있구나.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그러면서 저도 배우는 게 많습니다. 우리 집엔 없지만 다른 집에는 있는 책도 볼 수 있구요. 같은 <백설공주>라도 책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가족품앗이가 자연스럽게 정착되면서 아이들의 변화도 실감한다. 평소 남 앞에서 쑥스러움을 타던 아이는 두려움 없이 생각을 말할 기회를 얻는다.

김혜륜양의 엄마 배은주(38)씨는 “혜륜이가 품앗이 수업을 할 때 잘하고 싶으니까 신경써서 책을 고른다. 이젠 재미있게 목소리도 변조해보더라”며 “학원에서는 이렇게 말을 많이 시키지 않는다. 학습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식으로 진행하곤 하는데 품앗이에선 아이가 말할 기회가 많아 좋다”고 했다.

이씨는 “공유를 하면서 느낀 게 남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나한테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들이 학습에 대한 부분은 공유를 안 하려고 한다”며 “독서에서도 우리 아이만 잘 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품앗이는 그런 마음으로 하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내 아이는 완벽해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도 생기잖아요. 근데 품앗이를 하면서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 속에 있을 때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생기더군요.”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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