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논술 ‘숨은 해법’
[차별화의 정석]
논제에서 벗어나면 불합격
논술을 중심으로 하는 수시 모집 일반전형의 경쟁률은 보통 30 대 1을 넘는다. 100 대 1에 이르기도 한다. 이 경우, 논술 점수가 상위 1~3.3%에 들어야 수시에 합격할 수 있다. 상위 4%까지 부여되는 수능 1등급을 받기보다 더 어렵다. 이렇듯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답안, 창의적인 답안을 써야 한다. 평범하거나 무난한 답안을 쓰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차별화된 답안을 쓰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험생들은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최근 출제되는 논술 문제들은 답안의 방향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출제의도가 명확한 문제를 접할 때 답안 전개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논제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논제 파악을 철저하게 해야 하며 답안의 논리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 이후 오랜 사고 훈련과 글쓰기 노력을 통해서 창의력을 획득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창의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창의력(창의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진다.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술가로서의 영감과 창의력이 부족해 죽을 때까지 평범한 예술품만을 양산한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력은 예술의 창의력과 다르기 때문이다.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력이란 발상의 전환과 사례 구성능력이며 이 능력은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추후에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이번에는 창의적인 답안을 쓰는 데 기본이 되는 사항을 알아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출제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차별화된 답안을 쓸 수 있다. 논제의 요구사항을 무시한 답안이나 출제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답안은 아무리 창의적이라 하더라도 합격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창의력은 철저하게 출제의도라는 범주 안에서 발휘해야 한다.
출제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시문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의 구체적인 대립 양상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갈등의 대립항보다 상위에 있는 전체 주제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전체 주제가 궁극적인 출제의도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제시문들이 ‘평등’을 주장하는 측과 ‘차별’을 중시하는 측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두 주장의 대립은 ‘정의(justice)’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답할 때 평등이 중요한가, 차별이 중요한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의’라는 주제를 일반화하여 추출해야 하고 이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창의적인 답안을 쓸 수 있다. 심층적 접근은 학생 나름대로 문제의 본질을 깊이 있게 서술할 때 가능해진다. 배경지식을 나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차별화의 실전]
인공과 자연, 어떤 게 더 아름다운가?
2013수시기출문제(연세대 인문계열) 두 문항 중 문제 2번만 다룸
<문제 2> 제시문 (라)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시문 (가)의 논지를 평가하시오.(1,000자 안팎)
제시문 (가)
강녕의 용반, 소주의 등위, 항주의 서계는 모두 매화 산지이다.
어떤 이는 “매화는 휘어져야 아름답고 곧으면 맵시가 없으며, 틀어져야 아름답고 똑바르면 볼품이 없으며, 성기어야 아름답고 빽빽하면 자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하지만 문인화가들은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기준으로 천하의 매화를 평가한다고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곧은 것을 베고 빽빽한 것을 쳐내고 똑바른 것을 잘라 매화를 병들게 하고 매화를 빨리 죽게 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돈을 벌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화를 틀어지게 하고 성기게 하고 휘어지게 하는 것은 돈 벌기에 급급한 우둔한 사람들이 그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문인화가들은 자신의 괴벽한 취미를 매화 파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알려서, 똑바른 것을 베어 곁가지를 키우고 빽빽한 것을 쳐내 어린 가지를 죽이고 곧은 것을 잘라 생기를 막음으로써 높은 값을 구하게 하니, 강(江: 장쑤성)과 절(浙: 저장성) 지방의 매화는 모두 병이 들었다. 문인화가들이 끼친 폐해가 이 정도로 심할 줄이야!
나는 300개의 매화 분재를 샀는데 모두 병들었고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3일 동안 울고 나서 그것들을 치료해주고 풀어주고 순리대로 살게 해주겠다고 맹세한 뒤, 화분을 깨뜨려 모두 땅에 묻어주고 동여맨 끈을 풀어주었다. 5년을 기약으로 반드시 그것들을 회복시키고 온전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제시문 (라)
[정석의 적용]
상위 주제인 ‘아름다움’을 찾아내야
제시문 (라)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시문 (가)의 논지를 평가하시오.(1,000자 안팎, 50점)
2013년 입시부터 수시 논술의 난이도가 하향 조정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는 제시문의 난이도가 낮아진 데서 비롯된 착시효과의 영향이다.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안의 수준은 여전히 높다. 특히 연세대학교는 전통적으로 창의적 사고를 측정하는 문제를 출제하였고 이 경향은 2013년 입시에서도 유지되었다. 무난한 답안을 써서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하기 어렵다.
그림도 하나의 사례문으로 간주할 수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의 논지를 먼저 규정해야 한다(도표 분석을 다룬 4월11일치 연재물 참고). (가)는 인위적 조작이 자연을 훼손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이 논지를 지지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을 (라)에서 찾아내야 한다.
(라)는 다이아몬드 원석과 그것을 인위적으로 가공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 측의 설명에 따르면 (라)의 의미는 심미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두를 포괄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관점이 포함되어도 무방하다. 다만 그 해석의 내용은 (가)에 대한 평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심미적 관점에서 보면 투박한 다이아몬드 원석은 커팅 과정을 거쳐 세련된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탈바꿈했다. 이는 자연에 인위적 노력을 더해 문화와 문명이 만들어진다는 문화적 관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다이아몬드 세공 과정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가)의 논지를 반박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사회적 관점, 특히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훼손한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비롯한 자연의 가치는 측정하기 어렵다. 거기에 인위적 노력을 더하면 계량화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가치를 인간의 미적·경제적 기준 아래 복속시키고 축소시킨 것이다. 원석은 그 자체로 다양한 존재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정형화하는 순간 그 존재 가치는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가)의 논지를 지지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은 수험생들이 평균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내용만을 정리한다면 차별화된 답안을 쓸 수 없다. 차별화된 답안을 쓰기 위해서는 1번, 2번 논술문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와 궁극적인 출제의도를 심층적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2013 연세대 인문 논술 두 문제의 전체 주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수험생들의 대답은 매우 다양했다. ‘자연스러움’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고 ‘인위’ 혹은 ‘인위적 아름다움’이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출제의도와 무관하게 ‘예술(미)’이라고 답한 수험생도 있었다. 이런 대답들이 나름대로 논리적 타당성을 지니고 끝까지 이어졌다면 채점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들의 대립항인 ‘자연 vs 인위’에만 집착해 그 상위의 주제인 ‘아름다움’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2013 연세대 인문 논술문제의 궁극적인 출제의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묻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수험생은 (라)의 분석과 별도로,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통찰한 결과를 제시해야 창의적 답안을 완성할 수 있다. (가)가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단면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 근거는 ‘인위 vs 자연’의 프레임 안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수험생이 심층적으로 탐색한 것이어야 한다.
[예시답안]
(라)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가공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심미적 관점에서 보면 아름다움의 창조 과정이다. 투박한 돌덩어리에 불과한 원석은 정교한 세공을 거쳐 광휘를 발하는 다이아몬드가 된 것이다. 자연에 인위적 노력을 더해 문화가 생성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물방울 다이아몬드로의 변모 과정은 문화를 구성하는 예술 행위의 구체적 사례이기도 하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도 (라)는 가치 창출과정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원석이라는 자연물은 인위적 가공 과정을 거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보석으로 재탄생한다.
반면 사회적 관점, 특히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원석의 가치를 인간의 관점에서 제한적으로 축소시킨 것이다. 원석은 그 자체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 대상이다. 그러나 이를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무정형의 가치는 보석이라는 가치로 정형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계량화된 경제적 가치의 창출은 자연의 가치를 인간의 미적, 경제적 기준 아래 복속시킨 결과일 뿐이다.
(가)는 인위적 조작이 자연을 훼손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환경적 관점에서 보면 이 논지는 타당하다. 자연에 대한 인위적 조작은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가)는 인위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예술과 문화적 행위를 지나치게 편협하게 이해한 것이다. 또한 자연만이 아름답다는, 인식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을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순간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대상은 이미 인간의 인식과 해석의 산물이 된다. 그러므로 자연미는 자연과 동격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관념에서 파생된다. 요컨대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인간의 인식 지평 내에서만 유의미한 개념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자연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고, 이를 향유한다. 여기에 호모루덴스의 본질이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변형을 가하고 거기에서 미적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행위를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만 비판할 수는 없다.(1,152자)
[한 가지 더] 주제의 심층이해
다음 제시문을 통해 (가)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자.
19세기 말 구석기인들의 동굴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그림이 위작(僞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1만 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미개인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히 묘사해낼 수 있단 말인가. 들소가 죽어 가는 처절한 순간을 보라. 네 다리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고, 머리는 마지막 방어를 위해 숙이고 있다. 사실 예술사에서 이 정도의 표현을 찾아보려면 한참이나 뒤로 내려와야 한다. 그 뒤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도 놀라운 사실성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발견되었다. 덕분에 이 그림들은 위작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예술이 탄생하자마자 이처럼 단번에 생생한 자연주의적 묘사 수준에 도달했다는 건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유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에 따르면,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린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시지각(視知覺) 자체가 벌써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린이의 그림에서 벌써 우리는 시지각에 끼치는 이런 개념적 사유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어린이는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작게 그리거나 과감하게 빼버린다. 그들은 ‘아는 대로’그리는 셈이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까지 발달하진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개념적 사유로 무장하지 못한 이 ‘벌거벗은 눈’이야말로 그들의 놀라운 자연주의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구석기인들의 ‘높은’ 수준의 자연주의가 그들의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설명된다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진중권, 『미학오디세이 1』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이탈리아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현대 사회에서는 마른 여자가 미인이지만 과거에는 풍만한 여성이 미인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자료사진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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