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슬기초 학부모회 어머니들과 책사랑 어머니회에서 직접 만든 ‘빅북’을 들고 있는 학생들. 슬기초 제공
전체 의견 모아 학년별로
특색사업 진행…‘이모 문화’ 강조
학부모 재능기부도 활발
자연스레 교육의 선순환 일어
특색사업 진행…‘이모 문화’ 강조
학부모 재능기부도 활발
자연스레 교육의 선순환 일어
“ㄱ고는 혁신학교인데 아이들의 목표가 대학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잠재력을 중요시한다고 해요. 이 점이 참 맘에 드네요.”
“ㄴ고는 특성화고로 기숙사도 있고 취업도 잘되지만 내신 커트라인이 꽤 높네요. 학교가 아무리 좋아도 아이들이 그 전공과 맞는지, 수업을 잘 따라가는지가 중요하죠.”
지난 22일 경기도 시흥의 연성중 세미나실. 15명의 학부모가 모여 앉았다. 3학년 학부모 협의회에서 아이들 진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각 반 대표와 부대표들이 조를 나눠서 일반고, 특성화고, 혁신학교, 자사고, 특목고, 예·체능고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한 내용을 돌아가면서 발표했다. 고교입시를 앞둔 3학년 학부모들이라 그런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였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단순 심의기구라면,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 정책을 모니터링해서 내용을 전달하는 실제적인 기구다. 예전에는 학부모회 하면 ‘치맛바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도 꺼리고 학교 쪽에서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회는 확연히 달라졌다. 회비도 없고, 실속 있는 자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부모에게는 평생학습 공간이자 교류의 장이 되고, 아이나 교사에게는 학습보조교사 겸 멘토의 구실을 한다. 그야말로 건강한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연성중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자료에는 주로 서울·경기, 인천권 학교 위주로 위치, 특색사업, 동아리활동, 내신 커트라인, 기숙사 정보가 꼼꼼하게 정리돼 있었다. 학부모들은 입시설명회에서 홍보자료를 받아오거나 교사와 전화 상담을 하거나 학교 홈페이지를 분석했다. 직접 학교를 방문하거나 교육청에까지 전화해 조사하는 등 다들 열성적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히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길을 제시해주기 위해 모였다. 단순히 입시 정보를 나눌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도 나왔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좋은 학교들이 많다. 근데 엄마들이 혹하면 뭐하나, 애들이 안 따라주는데…(웃음)”, “사실 4년제 대학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고등학교도 대부분 성적에 의해서 간다. 내 꿈을 찾아서 특성화고나 전문계고에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꿈이 없는 게 문제다. 아이들이 꿈을 찾는데 부모가 병행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고민들이 나오면서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대안도 제시됐다.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만드는 진로탐색 워크북을 활용해 좀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게 하자는 것이다. 또 대학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무조건 인문계만 고집하기보다 자신의 수준과 관심사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2시간이 넘게 이어진 토론 끝에 각 팀에서 만들어온 자료 중 핵심 내용만 뽑아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줄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또 다양한 고등학교 자료를 열람해 아이들이 관심 있는 학교를 찾아보도록 할 계획이다. 학교 진로수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니터링도 하고 실제 입시 상담 경험이나 정보가 많은 진로진학 담당 교사와 같이 논의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연성중학교 학부모회는 모든 사업을 직접 계획하고 운영한다. 각 반에서 모임을 갖고 나온 얘기를 대표들끼리 취합해서 반영하는 식이다. 1학년은 봉사교육팀, 2학년은 독서교육팀, 3학년은 진로교육팀으로 특화시켰다. 1학년은 가족봉사단을 꾸려 지역사회와 연계해 도서관이나 양로원에 봉사를 간다. 2학년은 어머니 독서동아리 ‘북적북적’을 만들어 매주 토론하며 책 선정을 해서 아이들과 독서캠프를 간다. 3학년은 학부모들의 인력풀을 총동원해 다양한 분야의 직업인을 섭외해 특강을 하고 학부모 교육기부를 통해 체험활동도 실시한다.
임경희 학부모회장은 “학교 문턱이 없어졌다. 교사들 인식도 바뀌었다. 내 아이만을 위한 건 치맛바람이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모 문화’를 강조했다. 임씨는 “식당 가면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친근감 있게 ‘이모’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아이의 이모가 돼보자는 마음이다. 학부모들 스스로 아이들을 이끌어주고 정보도 제공해주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김경민씨는 “처음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임원을 맡는다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엄마들하고 인생 얘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좋더라”며 “무엇보다 책도 읽고 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슬기초등학교 학부모회도 모든 사업을 직접 꾸린다. 주요 활동은 장애인 봉사활동과 책사랑 어머니회, 아버지와 함께하는 체험 등이다. 특히 책사랑 어머니회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책을 선정해 엄마와 아이들이 그림과 글을 그대로 옮겨서 크게 만드는 ‘빅북 작업’을 한다. 그 책으로 한 달에 한 번 교실에 가서 엄마들이 직접 읽어준다. 학부모부회장인 김경희씨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엄마들이 직접 다 그렸다고 하니까 집중을 더 잘한다”고 말했다.
“서로 나서기보다 칭찬하며 즐겨…활동 자체가 삶의 활력소”
보통 학부모회는 엄마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직장에 다녀서 매번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학부모회 임원 중 아버지는 없지만, 매년 아빠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전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반영해 재작년에는 축구를, 작년에는 궁궐체험을 했다. 올해는 저학년은 요리를 하고 고학년은 박물관 체험을 할 예정이다. 참가 희망자가 많은 프로그램은 제한된 예산 때문에 제비뽑기를 할 정도다.
축구대회와 궁궐체험에 참가했던 홍진석(45)씨는 “사실 바빠서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떤지도 모르고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도 없었는데, 굉장히 좋았다”며 “매번 아내를 통해 한 다리 건너서 듣다가 아이랑 이야기하면서 누구랑 어떻게 지내는지 친한 선생님이 누군지 알게 됐다. 나의 어린 시절을 빗대며 조언도 해줬고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궁궐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홍씨의 아들인 홍정민군은 “아빠랑은 좀처럼 같이 갈 기회가 없었는데, 대화를 많이 하면서 친해진 거 같다”며 “평소 농구를 좋아해서 자주 하는데, 앞으로 아빠랑 농구 시합을 해보고 싶다. 아니면 아빠가 일하는 곳에 가서 일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슬기초에서는 학부모들의 재능기부가 활발히 이뤄진다.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5, 6교시 동아리 시간에는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로 중국어, 오카리나, 성악 수업이 진행된다. 장애인복지관 봉사활동이나 체험학습 등 토요프로그램도 학부모회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박은영씨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 친구 엄마, 옆집 아줌마다 보니 아이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열심히 한다”며 “최대한 많은 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면 한다. 부족한 예산을 쪼개서 알뜰하게 쓰려다 보니 저절로 꼼꼼해진다. 사실 우리 집 가계부도 그렇게 안 쓴다(웃음)”고 했다. 학부모회장인 이혜진씨는 “예전처럼 서로 나서려고 하기보다 칭찬하면서 즐기니까 활동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된다”며 “학부모들이 이것저것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역할도 중요한데, 교장선생님은 예스맨이다. 어떤 사업을 해도 묵묵히 지켜보고 잘했다고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학부모회를 담당하는 전소연 교사는 “예전에는 학부모들이 오니까 교사가 물러서는 악순환이었다면, 지금은 교육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며 “학부모들이 배워서 재능기부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교사가 다 잘할 수는 없다. 학부모들이 직접 지도하면서 교사는 도움을 받고, 부모들은 가르치는 게 힘들다는 걸 직접 체험하며 교사의 고충을 알게 된다”고 얘기했다. 그는 교사와 부모들 간에 친밀감이 형성되면서 학교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나 호감도도 높아지고 부모가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면서 학교생활도 좋아져 서로 윈윈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학부모회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를 보면 학부모란 ‘부모, 후견인 또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 따라 보호·감독자 등의 지위에서 취학하여야 할 아동 또는 학교의 학생에 대하여 실질적인 교육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학부모회는 전체 학부모를 구성원으로 두고 있는 기구다. 현재 경기도 전체 2262개 초·중·고등학교 중 2240개 학교에 학부모회가 조직됐다. 의무사항인 공립학교의 경우 100% 구성된 상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학부모회가 조직된 학교에는 기본 운영비가 50만원씩 지원됐다. 여기에 작년 공모사업을 유지하면서 537개 학교가 추가 활동지원금도 받았다. 작년에 비해 각 학교가 받는 실제 액수는 줄었지만 학부모회 활성화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학교를 지원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회의 안정된 운영을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학부모들이 친목모임 정도로 생각해 아는 사람들끼리 운영하면 되겠다는 생각, 학교에서는 간섭하는 거 아니냐며 불편해하는 인식도 있는데 이걸 깨뜨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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