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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청소년’, 내 이야기 담은 방송 만들어봤죠

등록 2013-04-29 14:08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청소년핫앤쿨’의 제작과 진행 전반을 맡았던 김건우, 윤현섭, 강동엽, 장동요군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청소년핫앤쿨’의 제작과 진행 전반을 맡았던 김건우, 윤현섭, 강동엽, 장동요군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포에프엠 ‘청소년핫앤쿨’ 6개월 동안 진행한 학생들
대본쓰기, 전화연결, 출연자 섭외, 진행 모두 직접 해
정말 우연히 좋은 노래를 만날 수 있다. 갖가지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연도 받아준다. 신청곡도 틀어준다. 특별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때론 위로가 된다. 친구도 된다.

이렇게 적고 보면 라디오만큼 낭만적이고 순수한 매체가 또 없다. 그래서일까. 라디오 청취자 중에는 청소년이 많다.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늦은 밤,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새벽. 라디오는 외롭고 고단한 청소년들이 기대기 좋은 벗이다. 하지만 청소년은 청취자일 뿐이다. 어른들 방송처럼 청소년이 듣는 방송은 모두 어른들이 만든다. 진행도 어른들이 한다.

“오늘 주제는 청소년의 이성교제입니다. 보통 청소년의 이성교제라고 하면, ‘애들이 공부는 안 하고 뭔 연애야?’ 그러시죠. 요즘은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막상 연애한다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좀 그렇습니다. 아마 부모님께 애인을 소개하는 아이들은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포에프엠(FM)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청소년핫앤쿨’의 지난해 10월27일 방송분 첫 멘트다. 대본에 적힌 말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장동요(숭문고 3년)군이다.

첫 멘트와 함께 첫 곡이 나간 뒤 정숙했던 스튜디오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 장군이 “연애해본 사람?”이라고 묻자 강동엽(한세사이버보안고 3년)군이 “나!”라고 대답하자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나가!” 김건우(숭문고 3년)군과 장동요군이 동시에 던진 한 마디다. 방송은 어느새 청소년들의 왁자한 수다방으로 변신한다.

이날 방송은 청소년은 왜 연애를 하면 안 되는 건지, 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진행자들끼리 수다 떨기 바빴던 것만은 아니다. 전화 연결을 통해 다른 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봤다. 모두 2013년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생각이다. “그래. 청소년도 사람이다. 누군들 연애를 안 하고 싶겠나.” 듣다보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

장동요, 김건우, 강동엽군 그리고 이날 방송에는 직접 출연하지 못해 전화 연결로 자기 생각을 밝힌 윤현섭(숭문고 3년)군까지 네 청소년.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마포에프엠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방송했던 ‘청소년핫앤쿨’을 직접 만들었다.

신문방송 분야 진출을 꿈꾸는 장동요군은 어느 날 교사를 찾아가 진로체험을 해볼 만한 활동을 물어봤다. 마침 교사한테서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의 추천을 받아 방송에 참여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녹음파일을 저장하고, 마이크 연결하는 정도만 알려주셨어요.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가 다 해야 하는 일이었죠. 힘들었습니다.”

당시 멤버는 지금 멤버와 달랐다. 당시에는 마포에프엠 쪽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네 명의 학생이 모였다. 정치, 여성, 청소년 윤리의식, 셧다운제 등 꽤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 문화에서 그게 다는 아니었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는 청소년의 이야기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멤버들도 프로그램 제작이 힘들었는지 어느새 연락이 두절됐다. 포기하는 건 싫었다. 다른 친구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5월, 아름다운재단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지원하게 됐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당당한 사회 일원,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겠다. 나로부터 내가 사는 동네, 나아가 사회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참여를 유도하겠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 이슈를 우리 언어로 이야기하겠다.” 이런 기획 의도로 지원사업 배분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6개월 동안 사업비 2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 과정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건우군한테 “방송 같이 해 보자”고 제안했다. 글도 쓰고 음악도 하는 김군은 ‘음악시간’이라는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군이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는 친구 윤현섭군을 데려왔다. 비슷한 시기에 이웃 학교인 한세사이버보안고 강동엽군도 합류했다. 8월, 네 남자는 어깨에 힘을 빼고 다시 ‘청소년핫앤쿨’의 닻을 올렸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녹음을 하기 위해 마포에프엠에 모였다.

마이크가 제대로 켜져 있는지도 모르고 진행했던 게 불안했던 차였다. 아름다운재단에서 받은 지원금으로는 전문적인 제작 교육부터 받았다. 라디오 작가, 프로듀서 등을 통해 라디오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밖에도 지원금은 ‘보이는 라디오’ 진행비, 간식비로도 잘 사용했다.

남들이 볼 때는 똑같은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지만 네 청소년한테는 각자 톡톡 튀는 개성과 재능이 있었다.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선에서 포지션이 정해졌다. 신문방송 분야 진출을 꿈꾸는 장군은 편집, 대본, 엔지니어링 등을, 영화 분야 진출을 꿈꾸는 강군은 유시시(UCC) 제작 및 홍보 등을 맡았다. 글을 쓰고 음악도 하는 김군과 음악을 하는 윤군은 진행 등을 맡았다. 대본을 써놓긴 했지만 현장 애드리브도 많았다. 혹 없는 사실을 말하게 될 까봐 노트북,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보검색도 하면서 진행했다.

인맥 넓은 김군은 발군의 섭외력을 보여줬다. 마포구에서 활동하는 댄스동아리 ‘후시딘’, 대중음악평론 사이트인 ‘이즘’에서 활동하는 음악평론가 등도 출연했다. 서울여고에 다니는 여학생이 잠깐 여자진행자로 참여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반대로 계속 출연하지 못했다. 자유토크도 했지만 전화 연결 등으로 다른 청취자들의 생각도 들어봤다. 김군은 “스피드퀴즈, 각 학교에 사서함을 비치해 전화 연결 등도 하고, 지역사회 인사 등을 초청해 이야기도 나눴다”고 설명했다. 청소년핫앤쿨이 방송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청소년이 바라는 것, 꿈꾸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거였다.

“패딩 문화, 집단폭력배 문제가 모든 청소년을 대표하는 건 아니잖아요. 꿈을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뭘 바라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김반야 선생님 등이 출연하셨을 때가 좋았어요. 확실히 전문 방송작가가 나오니까 방송의 질이 높아지더라구요. 그때 주제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음악’이었거든요. 저희가 어른과 청소년의 경계선에 있잖아요. 그래서 더 와닿는 게 많았죠.”

청취자 반응을 다 집계하긴 어렵지만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정말 이 방송을 듣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실감하는 때도 있었다.

청소년핫앤쿨은 네 청소년이 고3인 관계로 현재는 방송을 하지 않고 있다. 6개월 넘게 매주 모여 방송을 준비하면서 네 사람은 서로를 통해 배운 게 많다. 장군은 “집안 상황 등 어려움이 있어서 비관적인 면이 있었는데 프로그램 같이 하는 이 친구들 만나면서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김군은 “방송하면서 말주변도 늘었고, 음악에 대해 더 깊은 지식을 쌓게 됐고 다른 분야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진 것 같다”고 했다. 강군은 실질적으로 얻은 게 있었다. ‘음악시간’에서 활동하는 두 친구의 음악을 영화에 쓸 수 있게 됐다.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서 하는 동아시아 고교생 국제공모전에 영화를 만들어 내게 됐거든요. 고맙게도 그 영화에 이 친구들 음악을 쓰게 됐어요.(웃음)”

“근데 이런 활동을 하면 스펙 관리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지 않나요?” 네 청소년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군이 먼저 대답했다. “누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고2 때, 그것도 평일에 9개월을 반납하겠어요. 한두 달은 할 수 있더라도 이렇게 오래 하긴 어려울 겁니다. 더군다나 청취자가 많지 않은 지역 공동체 방송이잖아요.” 윤군도 이어 대답했다. “그렇게 치면 더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좋아서 했어요.”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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