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황후 시해할 수밖에 없었나”
뉴라이트 교과서, 탐구과제 실어
‘친일·독재 미화’ 잇따라 드러나
주요 연표선 ‘임시정부 수립’ 빠져
뉴라이트 교과서, 탐구과제 실어
‘친일·독재 미화’ 잇따라 드러나
주요 연표선 ‘임시정부 수립’ 빠져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빚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사 교과서(교학사)가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일본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서술을 하는 등 역사를 보는 시각과 사실에서 일반적인 학계 의견과 다른 부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최종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190쪽을 보면,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에 대한 ‘사료탐구’ 부분에서 ‘한성신보의 편집장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을미사변 회고록’의 일부를 인용했다. 인용된 회고록에는 “러시아와 조선이 손을 잡는 것에 대처할 길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중략) 한편의 손을 절단하여 양자가 손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중략) 당시 시행하는 정책은 전부 민비(명성황후)의 계책이었으며 (중략) 이 점에 착안하여 근본적으로 화근을 제거코자 도모한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회고록 바로 밑에는 “생각해보기: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글을 넣어 학생들이 당시 일제의 입장에서 한반도 병탄을 강화하기 위한 해결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범죄자의 속내를 설명해주면서 이해해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남의 나라 왕비를 무참히 살해할 정도의 제국주의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하는데,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해 가담범의 글을 제시한 이유는 일제의 극악한 흉계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그런 의도가 있다 해도 읽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교생들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해 이런 글을 보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는 예술계의 대표적 친일 인사로 꼽히는 유치진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 없이 대표작 ‘토막’(268쪽)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내용 중에는 “1941년에는 총독부의 압력으로 극단 ‘현대극장’을 조직하였다”고 했는데, 박 실장은 “친일에 따른 특혜로 극장을 지었던 것이다. 이 극장에서 공연한 대표 작품이 친일의 선봉에 선 이용구를 찬양한 ‘북진대’”라고 비판했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선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백남운 등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 사이에 대표적 친일 역사학자로 손꼽히는 이병도를 끼워넣기도 했다.
또한 학생들이 일제 강점기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보는 주요 연표(231쪽)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이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도 거론될 정도로 중요한데, 연표를 만들 때 뺀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를 떠나 황당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이 교과서에서 항일 인사로 묘사된 인촌 김성수(<한겨레> 2일치 1면)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사료 2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연구소가 공개한 1943년 4월2일치 <경성일보>와 같은 날짜 <매일신보>는 김성수가 자택의 철문 3개를 뜯어내고 거기에 마차 1대, 놋쇠와 구리로 만든 식기류까지 보태 “격멸의 탄환에 보태어 달라”며 일제의 해군무관부를 찾아가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연구소는 “김성수의 친일이 결코 강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웅변한다”고 밝혔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이승만 영웅전·친일 미화’, 역사왜곡 교과서 심층해부 [한겨레케스트#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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