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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행령 앞세워 4대강 예비조사 피하고 무상보육 지원 줄이고

등록 2013-11-03 19:59수정 2013-11-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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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권한남용 시행령 사례
행정부가 ‘법 위의 시행령’을 만들어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행정부가 국회의 눈길을 피해 손쉽게 시행령을 바꿈으로써 정권 입맛대로 정책을 좌지우지하면, 그만큼 국민의 목소리가 국회를 통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강력한 로비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시민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셈이다.

■ 노조 탄압의 도구로
법을 넘어선 시행령은 종종 정치적으로 활용된다. 전교조의 법외노조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4일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근거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노조 설립 뒤 신고서 반려사유가 생기면 30일 동안 시정요구를 하고 기간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법인 노조법에서는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찾을 수 없다. 지난 2월 이재갑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이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에 “시행령에 대한 법률 검토 결과 위헌 소지가 크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위헌 소지가 큰 시행령 때문에 결국 전교조 조합원 6만여명이 노조를 잃었다.

앞서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말 대통령령인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한 것도 전교조 압박용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노조비처럼 월급에서 원천징수하는 공제의 경우 1년마다 한번씩 본인의 동의서를 받아 제출하도록 한 게 개정안의 뼈대였다. 7만명 수준이던 전교조의 조합원 수는 이 조처 뒤 조금씩 줄어 현재는 6만여명으로 감소했다.

■ 예산 낭비 정책 밀어붙이기 용도
‘대운하’라는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밀어붙인 과정에서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이 한몫을 했다. 당시 4대강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용역을 맡은 국토연구원 소속 연구진은 정부에 “비용편익(B/C) 분석 결과를 제시할 경우 그 수치의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일 것”이라며 경제성 분석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건의했다. 결국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항을 규정한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 2항에 ‘재해예방’ 사업을 추가했다. 이로써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보 설치와 준설사업 등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면제됐다.

이에 대해 부산고법은 지난해 2월 내린 판결에서 “(모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이라고 지적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4대강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벌였다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와 시작하지도 못했을 사업”이라고 말했다.

시행령 한개 조항을 수정한 결과는 국가 재정의 커다란 생채기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서민을 위한 각종 복지정책이 후퇴하게 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로 4대강 사업에 22조원 넘는 예산을 쏟아부은 점을 꼽는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전교조 탄압분쇄 전국 교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면서 들이민 것은 법에도 관련 근거가 없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이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전교조 탄압분쇄 전국 교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면서 들이민 것은 법에도 관련 근거가 없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이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MB, 16개 보 건설 밀어붙이자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서 빼
예산낭비로 복지정책 위축 불러

노동부 ‘전교조, 노조아님 통보’
법엔 근거없자 시행령 들이대

영유아 국고보조 20%p 올리는
보육법 개정안에 제동 걸고
유해물 누출업체 처벌 완화 등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이어져

■ 시행령에 불어닥치는 재계의 입김
이처럼 정부가 행정입법으로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만들 경우 힘 있는 이해관계자에게만 이득이 되는 편향된 정책을 양산할 우려도 있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은기 교수는 “국회의 법률 제정 과정과 달리 시행령은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업계 로비 등에 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3일부터 시행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도 시행령 앞에 무릎을 꿇을 태세다. 이 법 9조는 해킹 등 전자금융 사기에 대해 원칙적으로 금융회사가 책임을 지도록 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현재 입법예고 중인 시행령(8조 3·4호)은 이 법의 취지와 반대로 금융회사의 면책 범위를 애매하고 넓게 규정했다.

법무법인 민후의 김경환 변호사는 “시행령대로라면 금융회사가 각종 보안 절차를 만들어놓은 뒤 피해자가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피해자들이 금융회사로부터 보상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의 취지는 금융회사의 피해자 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시행령은 완전히 금융회사의 면책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시행령 때문에 힘들여 만든 법의 취지가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 여당도 공모자?
본질적으로 ‘법 위의 시행령’은 행정부에 의한 국회 흔들기의 성격을 갖지만, 국회의 일원인 집권 여당이 공모자로 등장하는 일도 잦다. 당정협의를 통해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나 불산가스 누출 사고 등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5~6월 제정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24일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이 법의 시행령을 보면 과연 법 제정을 통해 얻고자 한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화관법은 유해물질 누출 사고 발생시 해당 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는데, 정부·여당이 밝힌 시행령 안은 이 최대 과징금 부과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고의·상습 기업에만 적용되도록 했다. 환경법률센터 정남순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모법도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감경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시행령으로 또 다시 완화해줬다. 유통기한 위반은 1회만 적발돼도 15일 영업정지 처분이 떨어지는 것과 달리 지나치게 약한 규제여서 입법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리병원 허용 과정도 당정협의에서 결정됐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을 공포하면서 영리병원을 위한 실질적 제도가 모두 구비됐다. 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안임에도 국회의 입법 절차를 피해 제도를 바꾼 셈이다.

■ 교육계에도 ‘법 위의 시행령’
지난해 교육부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잘못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적도록 한 것도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상위 법률인 초중등교육법 25조에서 열거하는 학교생활기록 대상 자료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모법은 학생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훈령은 학생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데서 사실상 입법 목적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2011년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15년 이상 가르친 경력이 있는 교사는 교장직에 응모할 수 있게 한 내부형 교장 공모제가 ‘초중등교육법 및 교육공무원법’에 담겼는데, 교육부가 만든 시행령은 이 제도를 실시하는 학교 수가 전체의 15%를 넘지 않도록 했다. 법률에는 이런 권한을 행정부에 위임한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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