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다양한 놀이터. 사진 귄터 벨치히 제공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
“한국의 놀이터는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놀이기구가 온통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요. 디자인도 거의 동일하더군요. 아이들에게 이런 놀이터가 매력적일까요? 놀이터에 왜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는거죠? 왜 부모도, 아파트 경비원도, 시시티브이도 아이들이 노는 것을 감시하는 거죠?”
세계 놀이터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독일의 유명한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73·왼쪽 사진)가 한국의 놀이터를 둘러본 뒤 내놓은 의견이다. 지난달 23일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등이 공동 주최한 특별 강연회에서 그를 만났다. 시종일관 유머 넘치는 강연을 펼친 그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정감 넘치는 할아버지였다.
벨치히는 이날 강연에서 세계의 다양한 놀이터(오른쪽 사진)를 보여주며 좋은 놀이터라면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보여준 좋은 놀이터는 재료부터 디자인과 공간 배치까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를 이용해 만든 놀이성, 나무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아 만든 놀이터, 다양한 색깔의 빛이 비추는 미로처럼 생긴 동굴 놀이터,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지처럼 생긴 놀이터, 과학기술 등을 활용한 놀이터 등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놀이터를 소개했다. 청중은 내내 신기하다는 듯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왜 그가 한국의 놀이터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벨치히는 “놀이터는 서로 비슷해도 디자인이라도 조금씩 달라야 한다. 재료도 나무, 고무, 콘크리트, 돌 등 놀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더 머무르고 싶은 느낌을 주고, 뭔가 아이들이 발견할 가능성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어른들이 ‘로맨틱한 놀이기구’가 있어야만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견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아이들은 놀이기구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잘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작 놀이를 방해하는 사람은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다. “조심해” “그렇게 하지 마” “위험해” “올라가지 마” “이렇게 딛고 내려가” 등 사사건건 어른들의 간섭과 지시가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좋은 놀이터는 어느 정도 위험을 허용해야 해요. 통제와 인식이 가능한, 조정할 수 있는 위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놀이터에서 자신이 결정권을 가져야 하죠.”
지나치게 안전하고, 지나치게 통제된 놀이터는 나쁜 놀이터라고 지적하는 벨치히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어린이의 정서로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이 왜 그보다 역사가 짧은 다른 나라의 엉망진창 놀이터를 모방하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의 뿌리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나는 한국의 자랑스런 일원’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들라”고 권유했다.
양선아 기자, 사진 귄터 벨치히 제공
※좀더 자세한 내용은 ‘베이비트리’ 참조
세계의 다양한 놀이터. 사진 귄터 벨치히 제공
귄터 벨치히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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