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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어 단어 ‘대문’ 열면 다양한 세계가 펼쳐져요”

등록 2014-06-09 19:30수정 2014-06-09 21:41

2014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성준군.
2014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성준군.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스크립스 스펠링비 대회’ 현장
“May I have the language of origin?”(그 단어의 어원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5월28일 오전 10시부터 미국 워싱턴디시 인근 게이로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영어 철자 말하기 대회 ‘2014 스크립스 내셔날 스펠링비 대회’(스펠링비) 구두 테스트에 참가한 학생들이 출제자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었다. 스펠링비는 ‘받아 말하기’ 대회이다. 한글을 배울 때 ‘받아쓰기’로 단어를 익힌다면 영어권 문화의 아이들은 스펠링비로 놀이하듯 단어를 익힌다. ‘스펠링비’ 대회가 생긴 지는 101년, 현재의 주최사인 스크립스(Scripps)사가 대회를 운영한 지도 73년이나 됐다.

스펠링비 자체는 참으로 단순하다. 출제자 가운데 대표가 마이크 앞에서 선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를 알려주고, 참가 학생들은 그 단어의 철자를 하나씩 말한다. 철자를 틀리게 말하면 탈락이다. 다른 장치는 없다. 출제되는 단어는 매리엄-웹스터사의 사전에 기재된 단어 가운데 나온다. 준결승 전 1~3라운드가 치러지는데, 출제되는 단어의 난이도는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미국 각 주와 비영어권 국가에서 치러지는 지역 예선의 난이도도 만만치 않다. 2013년 치러진 한국 지역 예선 대회의 결승 단어는 ‘physiognomy’(얼굴생김새)로, 이성준군(13·인천 진산중2)이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단순한 방식의 대회지만, 그 안에 담긴 교육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 단순 암기 대회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참가자들이 대회에 참가해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그들이 영어 단어를 1차원적으로 외우기보다는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출제자가 문제로 던지는 단어를 듣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질문을 한다. 단어의 어원을 묻는 질문 외에도 ‘그 단어의 정의가 뭐죠?’, ‘단어의 품사는 무엇입니까?’,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듣고 싶어요.’, ‘다른 발음이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단어가 쓰이는 맥락과 역사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중요한 힌트가 된다.

세계 최대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
출제자가 문제 단어 말로 알려주면
어원 등 따져 묻고 철자 유추해내
재미있는 예문 곁들여 흥미 유발

5월29일 저녁 10시부터 3시간에 걸쳐 진행된 결승전에서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깊고 침착했다. 이날 결승전에서는 인도계 미국인 스리람 하드와(14)·안순 수조(13)가 공동 우승자가 됐다. 이 대회에서 공동 우승자가 나온 것은 1962년 이후 52년 만에 처음이었다. 스리람과 안순은 각각 ‘stichomythia’(고대그리스 극에서 두 사람이 한 행씩 시를 교환하며 대화하는 형식)와 ‘feuilleton’(문예란)을 마지막 순간 맞췄다. 스리람 하드와는 대회가 끝난 뒤 공동 챔피언이 된 소감을 묻자 “우리는 서로 싸운 것이 아니라, 사전과 싸워 이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챔피언 역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단어의 어원’이었다. 영어의 80%는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서 비롯됐다. 어원에 따른 철자와 발음의 형성 규칙을 알면 모르는 단어라도 철자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스펠링비 대회에 나오는 아주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쉬운 단어에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때문에 ‘스펠링비’는 그 자체로 즐거운 영어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영어를 쓰는 환경이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영어 단어의 정의와 어원, 예시문을 놓고 게임하듯 단어 공부를 진행하면 덜 지루하고, 어쩌면 흥미로운 공부 시간이 될 수 있다. 유럽 지도를 함께 펼쳐 놓고 짚어가며 단어의 고향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를 더할 것이다.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 대회 역사상 52년 만에 나온 공동 우승자 안순 수조(왼쪽)와 스리람 하스와.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 대회 역사상 52년 만에 나온 공동 우승자 안순 수조(왼쪽)와 스리람 하스와.

‘배움’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조금 노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스펠링비 대회 총감독인 페이지 킴블은 “학습과 재미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며 “스펠링비 홈페이지에만 가도 ‘워드 클럽’이 있다. 아이들이 게임하듯이 단어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실력도 측정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이번 대회 12명이 든 결승전에 출전한 알리아 아비아드(14)는 “어렸을 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임인 ‘스퀴즐렛’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스펠링비 대회에도 ‘재미’를 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대회 간간이 청중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스크립스사는 2009년 대회부터 코미디 작가를 고용했다. 이들은 재치 넘치는 예문을 작성해 출제자에게 넘긴다. 예문은 참가자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고려해 작성한다. 평가자를 대표해 단어를 발음하는 자크 베일리(미국 버몬트 대학교 고전학 교수)는 “재미있는 예문을 들려주면 참가자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성준군을 비롯해 참가자들 가운데 몇몇은 “예문이 재미있나요?”라고 먼저 묻기도 했다.

베일리 박사는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보탰다. “영어 단어는 일종의 ‘대문’과도 같아요. 그 대문을 열면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접할 수 있죠. 생물학, 식물학, 우주, 의학 어느 것이든지요” 그는 이렇게 영어 단어 놀이의 세계로 한국 학생들을 초대했다.

메릴랜드(미국)/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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