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전환 당시보다 16%p 늘어
학부모 요구 많고 아이들 의존적
내신 성적 떨어져 학업 의욕 역효과
학부모 요구 많고 아이들 의존적
내신 성적 떨어져 학업 의욕 역효과
“자사고 전환 때 80%이던 교사 반대 비율이 지난해 96%로 늘었다.”
서울 ㄴ자사고의 한 교사가 9일 <한겨레>에 전한 자사고 관련 교사 찬반투표 결과다. 지난해 1학기에 정교사 49명을 대상으로 자사고 유지 여부를 물었더니 2명을 빼고는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애초 자사고 전환에 반대했던 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이유를 댔다. 우선 “우수한 아이들만 모아서 가르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버리라는 말이냐”는 교육철학적 반대가 거셌다. “신입생 모집이 안 되면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현실적인 불안도 컸다.
특히 자사고 전환 초기, 일반고의 세배나 되는 학비를 낸 학부모의 요구와 기대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다. 교사 월급은 그대로인데, 학부모들은 ‘세 배 이상’의 업무를 당당하게 요구했다. 전에는 없던 각종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나 예체능 교과목 축소 요구는 약과다. ㄴ자사고의 또다른 교사는 “선생님들한테 매일 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해달라는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자녀한테 관심이 많아서 사소한 일에도 간섭이 심했다. “‘애가 아프면 지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지각 체크를 지워달라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이의 제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자사고의 실제 목표는 ‘입시 명문고’지만, 대학 입학 결과물이 ‘명문대 입학’이라는 학부모의 목표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ㄴ자사고 교사는 “중학교 내신 기준으로 평균 26%대 애들이 온다. 서울권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아이들이 일반고 한반에 3~5명이라면 자사고엔 15명 정도로 많다. 하지만 최상위권 대학에 갈 애들은 어차피 특목고로 간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몰려 있어 중학교 때보다 내신 성적이 떨어지면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멘탈이 약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지만, 내신에서 밀리니까 학업 의욕이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는 2013년 11월 실시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고교 진학 뒤 학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보여주는 ‘향상도’가 인근 ㄱ일반고보다 낮았다. ㄴ자사고의 향상도는 국어 1.5%, 수학 1.4%, 영어 0.6%였는데, ㄹ일반고는 국어 2.6%, 수학 1.7%, 영어 1.7%로 나타났다. 애초 우수한 학생을 뽑아 놓은 ‘선발 효과’ 이외에 ‘학교 효과’가 일반고보다 낮다는 뜻이다.
ㄴ자사고 교사들은 몇년간 자사고 경험을 한 학부모 사이에서 최근 달라진 기대 수준을 전하기도 했다. 한 교사는 “학부모들도 초기에는 과도한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담배를 피우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적고 환경이 엇비슷한 아이들끼리 교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정도에 만족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ㄴ자사고의 현재 상황을 ‘분위기가 괜찮은 예전 일반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수업 분위기가 괜찮고 학생 관리가 수월해지긴 했어도 교육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학비는 세배씩 받으면서 도대체 뭐하러 자사고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ㄴ자사고 교사는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다. 자사고는 특별할 게 없는데 일반고가 받는 피해는 막대하다. 주변에 있는 일반고 교사 친구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라고 괴로운 심정을 전했다.
또다른 교사는 “이명박 정부 때 고교 다양화를 명분으로 자사고를 만들었는데, 자사고 아이들의 다양성은 오히려 파괴됐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을 해소하려면 서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데, 비슷한 아이들끼리만 소통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가 형성됐다”고 우려했다. ‘남의 인생 증후군’에 대한 조심스런 우려도 내놨다. “예전에 일반고 때는 아이들이 창피해서라도 엄마한테 관리받는다는 얘길 대놓고 못했다. 하지만 자사고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관리를 받으니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학교에서도 보살핌을 받으려 하고 책임감도 부족하다. 자기 인생을 마치 부모를 위해 살아주는 것처럼 여기는 현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 학교 교사들도 다른 자사고보다 먼저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엔 선뜻 나서지 못하리라고 예상했다. 한 교사는 “교육청에서 한꺼번에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해야지, 한두개 또는 서너개씩 퇴출하는 식으로 하면 저마다 눈치를 보며 버티고 볼 것이다. 졸업생과 학부모들도 그렇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몇몇 정원 미달 자사고 정도만 탈락하고 살아남은 학교들은 경쟁력이 생겨 일반고 전환이 더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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