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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동네에 자사고 생긴뒤…일반고 갈 중학생들까지 열패감

등록 2014-07-09 20:11수정 2014-07-09 22:45

[자사고가 불러온 ‘일반고 슬럼화’]
자사고 생긴 지역 교사들 만나보니
2010년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평판이 좋던 ㄴ사립고가 ‘자사고’로 바뀌었다. 내신성적 50% 이내, 등록금 세배를 지불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자사고로 몰렸다. 같은 구에 있는 ㄱ일반고 교사는 “옛날 종고(인문 과정과 실업 과정을 함께 설치한 종합고교) 형태로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몇년새 학교 상황이 심각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일반고 슬럼화’라고 부른다. ㄴ자사고와 같은 재단인 ㄷ중학교 교사는 “특목고·자사고에 못 가는 아이들은 중3 때부터 이미 ‘마음의 슬럼화’가 시작된다”고 짚었다.

성적 상위권·3배 넘는 학비
감당되는 학생들만 자사고로
특목고 포함 한 학교 30% 선

남은 학생들 성적·가정형편 한계
중학교 교실내 계층화·패배의식

일반고 ‘하향 다양화’ 심화
학생수 많아져 지도 어렵고
상위권 줄고 전체 학력 수준 낮아져
대입 포기 많아 취업반 학생만 늘어

■ 우리 동네 아이들 저버린 자사고 지금은 대학교 3학년인 임아무개씨의 부모는 삼형제를 ㄷ중과 ㄴ고에 입학시키려고 이사까지 왔다. 임씨 자신은 계획대로 ㄷ중을 거쳐 ㄴ고에 다녔지만, 동생들은 그럴 수 없었다. ㄴ고가 자사고로 바뀌어 학비가 비싸졌는데, 이를 감당할 형편이 안 돼서다. 임씨의 큰 동생은 결국 다른 지역에 있는 일반고에 입학했고, 현재 ㄷ중에 다니는 막내 동생도 비슷한 처지다. 임씨는 “동생이 갑자기 처음 들어보는 고교를 가게 됐다. 집 앞에 있는 ㄴ자사고를 놔두고 버스로 25분이나 걸리는 학교를 다니려니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ㄴ자사고는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하며 자매학교인 ㄷ중학교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ㄷ중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은 임씨처럼 ㄴ고로 진학하는 걸 당연히 여겨왔다. 그러나 공시된 ㄷ중 정보를 <한겨레>가 확인해 보니, 2013년 ㄷ중 졸업생 239명 가운데 112명이 다른 일반고와 자율형공립고에 입학했다.

ㄷ중 이아무개 교사는 “ㄴ고는 이 지역 아이들이 다녀야 하는 지역 학교인데, 등록금과 성적이라는 진입 장벽에 막혀 지역 학생들이 들어가질 못한다. 그 동네에 있다고 해서 지역 명문이 아니라, 지역 학생을 가르치고 지역 사회에 이바지해야 지역 명문 학교다. ㄴ자사고는 지역사회에 대한 책무, 이 지역 아이들에 대한 돌봄 기능을 저버렸다”고 말했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마음의 슬럼화’는 중3 때부터 서울 시내 300개 고교 중 자사고가 25곳으로 는 뒤 중학교 교실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작용은 ‘교실 내 계층화’의 심화다. 서울에 특목고만 10개 있었을 때, ㄷ중에서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은 한반 34~35명 가운데 5명 미만이었다. 이들이 다소 특별한 경우에 해당했을 뿐, 특목고 준비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ㄷ중에서 특목고 7명, 자율형사립고 75명 등 30%가 넘는 학생이 특목고와 자사고로 입학하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거기에 끼지 못한 학생들이 성적이나 가정형편에 따른 ‘자기 한계’를 좀 더 분명하게 자각하게 됐다. 친구들끼리 자사고를 갈 수 있는지 아닌지 성적이나 가정형편으로 ‘구별짓기’를 하기도 한다.

ㄷ중 교사는 “일반고에 진학할 학생들은 패배의식을 느낀다. 일반고 슬럼화라고 하지만, 그걸 이미 중학교 때부터 내재화하는 것이다. 일반고에 간다는 건 일종의 낙오자가 된다는 뜻인데, 왜 일반고가 ‘어린 학생들이 감수하고 각오해야 할 대상’이냐”고 반문했다. 이 교사는 “자사고에 못 가는 아이들은 ‘자사고도 못 가는 처지에 무슨 좋은 대학이냐’는 식으로 자포자기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 일반고 학력 수준 저하 김아무개 교사는 지난해 ㄱ일반고로 돌아왔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다 몇년 만에 복귀했는데, 달라진 학교 풍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줄어든 것은 둘째 치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져 교사가 야단을 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김 교사는 “처음엔 학생들과 대화가 잘 안 돼 화를 낼 때가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때문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사고 학생들의 성적이나 수업 태도 등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는 동안 일반고 학생들은 ‘하향 다양화’됐다. 자사고에 중상위권 학생이 두텁게 포진해 있는 반면, 일반고는 중상위권부터 최하위권까지 학생 분포가 다양해졌다. 2013년 11월 국가수준학업성취도 결과를 비교해 보면, ㄴ자사고는 ‘보통학력 이상’이 국·영·수 모두 95%가 넘었다. 하지만 ㄱ일반고는 ‘보통학력 이상’이 국어 72.5%, 수학 84.1%, 영어 78.5%였다.

ㄱ일반고는 학년당 정원이 평균 460여명이다. 그 가운데 중3 내신성적이 상위 5~10%에 드는 아이들은 채 10명이 안 된다. 한 교사는 “2년 전 입학생 가운데 중3 내신 상위 5%인 학생이 1명뿐이어서 정말 놀랐다. 중학교 때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평가받는 학생들도 내신은 10% 바깥”이라고 설명했다. 고교 입학 성적은 대입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학교는 대학수학능력평가 과목별 1등급이 거의 없다. 반에서 1등을 하는 학생도 3등급 정도에 그친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에 지원한 이 학교 전교 1등이 수능 최저등급을 못 맞춰 낙방한 사례도 있다.

■ 과밀학급서 수업 수준 하향 조정 올해 4월 기준으로 ㄱ일반고의 학급당 학생수는 1학년 36.8명, 2학년 39.4명, 3학년 40.3명이다. 학생수가 많은 반은 44명에 이르고, 교사 1명이 맡는 학생수도 18.4명이다. 반면 ㄴ자사고는 1학년 32.8명, 3학년 33명, 3학년 32.4명에 교사 1인당 학생수 14.5명이다. 학생 지도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자사고 교실보다 좀 더 세심한 지도가 요구되는 일반고에 학생은 더 많고 교사는 더 적은 불합리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ㄱ일반고의 한 교사는 학생수를 제한하는 자사고와 자립형공립고, 특성화고 등에 가지 못한 ‘기타 학생’들이 이도저도 아닌 일반고로 쏠린 탓이라고 짚었다. 게다가 ㄴ자사고 등 인근 자사고에서 적응하지 못한 전학생까지 일반고가 떠안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이 교사는 “일반고에는 성적이 중상위권인 학생부터 최하위권인 학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특히 학습 부진 학생과 학교 부적응 학생이 많다. 못 따라오는 아이들한테 어렵게 수업을 할 수가 없어 수업 수준을 낮추게 된다. 일반고가 공부 잘 하는 학생들한테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일반고인데 직업 과정이 급증 ㄱ일반고는 취업반인 ‘직업 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자사고가 생기기 전에는 직업반 학생수가 2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0명 수준이다. 그마저도 한반에 4~5명씩, 한 학년에 50명이 넘는 희망자들 중에 거르고 걸러서 이 정도다. 성적이 안 돼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에 입학하지 못해 일반고로 입학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일반고 슬럼화의 영향으로 대입을 포기한 학생이 늘어난 탓이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3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직업 과정을 2학년 때부터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는 “올해 직업반을 2개반으로 늘리려다 조정을 했다. 직업반 가겠다는 학생들한테 직업반 가지 말고 전문대학이라도 가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자사고를 없앤다고 일반고가 바로 정상화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자사고 지정 취소가 일반고 정상화의 필요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정윤 김지훈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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