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용문고 운동장에서 축구부 학생들이 축구 시합을 하고 있다. 왼쪽 뒤편 흰색 건물에 ‘자사고 용문고등학교’라는 글씨가 보인다. 용문고는 2010년 자사고로 지정됐다가 2012년말 다시 일반고로 전환했다. 3학년은 자사고, 1~2학년은 일반고인 지금도 큰 무리 없이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2년전 전환한 학교 가보니
3학년 자사고, 1·2학년 일반고생
교사들 “전환뒤 오히려 수업전념”
학생유치·임금불안 등 부담 벗어
3학년 자사고, 1·2학년 일반고생
교사들 “전환뒤 오히려 수업전념”
학생유치·임금불안 등 부담 벗어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용문고는 2010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지정됐다가 2013학년도부터 일반고로 전환했다. 교장은 “반경 5㎞ 안에 자사고 7개”라는 약육강식의 교육 생태계를 원인으로 짚었다. 2012년 3월 입학한 3학년은 자사고 학생이고, 2013~2014년 입학한 1·2학년 학생들은 일반고생이다. 용문고 3학년 신진규군은 20일 “자사고 때는 한 학년이 100명 정도였다가 일반고 후배들이 학년당 500명씩 들어오니 운동장 같은 시설 이용이 좀 불편한 점은 있다”면서도 ‘일반고 전환’ 이후 큰 혼란은 없다고 전했다. 17일 용문고 운동장에서 만난 2학년 박아무개군은 자사고와 일반고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학교에 자사고와 일반고 학년이 섞여 있어도 굳이 차이를 의식할 만한 갈등이 없었다는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주 실시한 자사고 종합평가 결과를 토대로 법률 검토를 거쳐 이르면 주중에 자사고 지정 취소 학교를 발표할 예정이다. 자사고 쪽과 학부모들은 이런 변화에 불만과 불안감이 크다. 그러나 <한겨레>가 2012학년도와 2013학년도 신입생부터 각각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동양고와 용문고를 취재해보니, 우려할 만한 혼란과 피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두 학교 교사들은 경험을 토대로 교육당국에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일반고로 바뀌는 자사고들이 학부모 반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하고, 일반고로 전환하더라도 학급당 학생수를 급격히 늘리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자사고 교사들은 오히려 일반고 전환 이후에 업무 과중, 학생 유치, 임금 불안 같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용문고의 한 교사는 비인기 자사고로서, 수시로 학교 홍보를 나가서 겪은 모멸감을 떠올렸다. “호의적이지 않은 중학교에 가서 우리 학교에 학생 좀 보내달라고 간청할 때 굴욕감이 컸다. 중3 학년부장 선생님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일도 많았다. 요즘은 비인기 대학에서 우리 학교로 홍보를 나오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차라도 한잔 꼭 대접한다.” 용문고 교장은 그 시절을 “교사인지 영업사원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교육청 나서서 정원 미달 자사고 지정 취소해줘야”
“학부모 항의·소송 대책 마련해주고
전학사태 등 대비 재정지원 불가피”
미충원 자사고 지원제도 명분 돼 자사고의 강점으로 수업이나 방과후 활동의 다양성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또한 일반고 전환 이후 오히려 나아졌다. 한 용문고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사고는 등록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학업적인 면에서 스펙을 만들어주고,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줘야 한다. 한 해 입시 성과가 나쁘다고 교장이 바뀐 자사고도 있다. 교육 프로그램이 많긴 하지만 입시 이외에 창의적인 걸 할 수가 없고, 뭘 하더라도 입시랑 연관이 된다.”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동양고의 한 교사는 “자사고에 입학하고 보면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등록금을 세 배 냈는데 선생님도 똑같고 뚜렷하게 나은 게 없다’는 불평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막상 일반고로 전환하려고 하면 ‘내 자식은 자사고에 다닌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저항이 거세다. 특히 용문고는 2010년 말 한차례 물밑으로 서울시교육청에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학부모들이 밤 10~11시까지 학교에 남아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교 쪽은 한달 내내 소그룹 학부모 면담을 진행할 정도로 공을 들여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용문고 교장은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조언했다. “문제가 많은 자사고는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엄정한 평가를 거쳐 지정 취소를 해줘야 한다.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라고 하면 단위학교에서는 엄청난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학부모들이 쫓아오기 시작하면 교육청도 감당을 못하는데, 어느 교장이 그 어려운 샅바싸움을 하려고 들겠나?” 동양고 이아무개 교사는 “자사고를 취소하면 학부모들이 ‘학교, 교장, 교감 책임지라’고 항의할 텐데, (교육청이)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미충원 자사고의 상당수 교사가 내심 일반고 전환을 바라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용문고 안팎에서는 당시 미충원 자사고 해법으로 제시된 ‘학교운영 정상화 지원 대상 학교 제도’가 학교 쪽에 명분을 줬다고 평가한다. 자사고의 신입생 충원율이 60% 미만이면 1년간 정부가 등록금 차액을 지원하고, 이듬해 다시 충원율이 60% 미만이고 학교가 원하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는 제도다. 애초 용문고 학부모 사이에선 소송을 해서라도 일반고 전환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 쪽에서 정상화 제도를 거쳤는데도 충원이 불가능한 현실을 내세워 학부모들을 설득했고, 최악의 충돌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대한 재정지원은 특혜 논란에도 ‘불가피한 현실’로 거론됐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려면, 자사고에도 피해와 불만을 최소화할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문고 교사는 “자사고는 정부 지원 대신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이 한명만 전학을 가도 큰 고민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 충원이 안 돼 정원 초과로 몰린 교사가 20명이 넘는 바람에 무급 휴직년제까지 논의하다가 재단과 교육청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자사고 지정 취소로 대규모 전학이나 미충원 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교사 월급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 일반고로 전환하더라도 그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문고와 동양고는 ‘자사고 실패’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최상의 교육 여건을 경험했다. 용문고는 자사고 시절 신입생 충원율이 첫해 37%, 이듬해 24%로 저조한데다 전학을 간 학생도 많아 학급당 학생수가 적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소수 정예 교육’을 가능하게 해줬다. 용문고 교장은 “자사고 2년간 충원에 실패해서 학교는 힘들었지만, 애들한테는 학생수가 적은 것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이 없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되는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고가 학급당 학생수를 25~30명 정도로는 줄여야 제대로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용문고는 자사고 첫해인 2011년 4월 당시 8개 학급 학생수가 159명에 불과했다. 2학년 때 이 중 40명이 전학을 가 119명이 남았고, 3학년 때는 116명으로 줄었다. 2012년에는 131명이 입학해 2학년 때 102명이 됐고, 3학년 때는 97명이 남았다. 현재 3학년 학급당 학생수는 12.1명으로, 일반고로 모집한 2학년의 학급당 학생수 37.7명(13개 학급 490명)에 비해 3분의 1이 채 안 된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는 “교사와 학생 관계만 좋은 게 아니다. 하다못해 축구라도 한 게임 하려면 반 아이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니까, 학교폭력이나 왕따도 없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3학년 신진규군은 “학생수가 적어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아 전학을 안 갔다. 선생님들이 학생들한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말했다. 동양고도 상황이 비슷하다. 2011년 자사고 모집 첫해, 280명 정원에 101명이 지원했다. 2012학년도엔 접수 이틀째 36명만 지원하자 자사고 지정을 반납하고 일반고로 전환했다. 자사고로 입학한 학생 상당수가 전학을 가고, 남은 43명이 올해 졸업했다. 이제형 동양고 교장은 “자사고 때 4학급에서 학급당 10~11명으로 소수 밀착 수업을 했다. 남은 학생들은 대입 성과도 좋았다”고 말했다. 자사고 효과라기보다는 작은 교실의 힘이라는 얘기다. 전정윤 이수범 기자 ggum@hani.co.kr
전학사태 등 대비 재정지원 불가피”
미충원 자사고 지원제도 명분 돼 자사고의 강점으로 수업이나 방과후 활동의 다양성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또한 일반고 전환 이후 오히려 나아졌다. 한 용문고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사고는 등록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학업적인 면에서 스펙을 만들어주고,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줘야 한다. 한 해 입시 성과가 나쁘다고 교장이 바뀐 자사고도 있다. 교육 프로그램이 많긴 하지만 입시 이외에 창의적인 걸 할 수가 없고, 뭘 하더라도 입시랑 연관이 된다.”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동양고의 한 교사는 “자사고에 입학하고 보면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등록금을 세 배 냈는데 선생님도 똑같고 뚜렷하게 나은 게 없다’는 불평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막상 일반고로 전환하려고 하면 ‘내 자식은 자사고에 다닌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저항이 거세다. 특히 용문고는 2010년 말 한차례 물밑으로 서울시교육청에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학부모들이 밤 10~11시까지 학교에 남아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교 쪽은 한달 내내 소그룹 학부모 면담을 진행할 정도로 공을 들여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용문고 교장은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조언했다. “문제가 많은 자사고는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엄정한 평가를 거쳐 지정 취소를 해줘야 한다.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라고 하면 단위학교에서는 엄청난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학부모들이 쫓아오기 시작하면 교육청도 감당을 못하는데, 어느 교장이 그 어려운 샅바싸움을 하려고 들겠나?” 동양고 이아무개 교사는 “자사고를 취소하면 학부모들이 ‘학교, 교장, 교감 책임지라’고 항의할 텐데, (교육청이)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미충원 자사고의 상당수 교사가 내심 일반고 전환을 바라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용문고 안팎에서는 당시 미충원 자사고 해법으로 제시된 ‘학교운영 정상화 지원 대상 학교 제도’가 학교 쪽에 명분을 줬다고 평가한다. 자사고의 신입생 충원율이 60% 미만이면 1년간 정부가 등록금 차액을 지원하고, 이듬해 다시 충원율이 60% 미만이고 학교가 원하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는 제도다. 애초 용문고 학부모 사이에선 소송을 해서라도 일반고 전환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 쪽에서 정상화 제도를 거쳤는데도 충원이 불가능한 현실을 내세워 학부모들을 설득했고, 최악의 충돌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대한 재정지원은 특혜 논란에도 ‘불가피한 현실’로 거론됐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려면, 자사고에도 피해와 불만을 최소화할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문고 교사는 “자사고는 정부 지원 대신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이 한명만 전학을 가도 큰 고민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 충원이 안 돼 정원 초과로 몰린 교사가 20명이 넘는 바람에 무급 휴직년제까지 논의하다가 재단과 교육청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자사고 지정 취소로 대규모 전학이나 미충원 사태가 벌어지면 당장 교사 월급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 일반고로 전환하더라도 그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문고와 동양고는 ‘자사고 실패’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최상의 교육 여건을 경험했다. 용문고는 자사고 시절 신입생 충원율이 첫해 37%, 이듬해 24%로 저조한데다 전학을 간 학생도 많아 학급당 학생수가 적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소수 정예 교육’을 가능하게 해줬다. 용문고 교장은 “자사고 2년간 충원에 실패해서 학교는 힘들었지만, 애들한테는 학생수가 적은 것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이 없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되는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고가 학급당 학생수를 25~30명 정도로는 줄여야 제대로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용문고는 자사고 첫해인 2011년 4월 당시 8개 학급 학생수가 159명에 불과했다. 2학년 때 이 중 40명이 전학을 가 119명이 남았고, 3학년 때는 116명으로 줄었다. 2012년에는 131명이 입학해 2학년 때 102명이 됐고, 3학년 때는 97명이 남았다. 현재 3학년 학급당 학생수는 12.1명으로, 일반고로 모집한 2학년의 학급당 학생수 37.7명(13개 학급 490명)에 비해 3분의 1이 채 안 된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는 “교사와 학생 관계만 좋은 게 아니다. 하다못해 축구라도 한 게임 하려면 반 아이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니까, 학교폭력이나 왕따도 없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3학년 신진규군은 “학생수가 적어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아 전학을 안 갔다. 선생님들이 학생들한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말했다. 동양고도 상황이 비슷하다. 2011년 자사고 모집 첫해, 280명 정원에 101명이 지원했다. 2012학년도엔 접수 이틀째 36명만 지원하자 자사고 지정을 반납하고 일반고로 전환했다. 자사고로 입학한 학생 상당수가 전학을 가고, 남은 43명이 올해 졸업했다. 이제형 동양고 교장은 “자사고 때 4학급에서 학급당 10~11명으로 소수 밀착 수업을 했다. 남은 학생들은 대입 성과도 좋았다”고 말했다. 자사고 효과라기보다는 작은 교실의 힘이라는 얘기다. 전정윤 이수범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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