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항소심 법원이 1심을 뒤집고 ‘오류’를 인정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 문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 지역을 표시한 뒤 지문 4개(㉠~㉣) 중 옳은 것만 모아놓은 보기를 고르는 문제다. 평가원은 보기 ②번(㉠, ㉢)이 정답이라고 채점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2012년 기준으로 나프타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을 추월했기 때문에 ㉢지문은 틀린 설명이라고 판단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작년 수능 출제 오류 인정 판결 파장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시작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법원이 16일 ‘수능 문항 출제 오류’를 인정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상고를 포기하거나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되면, 잘못 출제된 세계지리 8번 문항 탓에 201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한 수험생들의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 문제 오류 탓에 수능 등급·대학 당락이 갈렸다 이번 소송의 원고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아무개씨는 “틀린 문제를 틀렸다고 골랐다가 대학입시에서 떨어졌다”는 말로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7일 치러진 수능 사회탐구영역에서 세계지리 과목을 선택했고, 8번 문제를 빼곤 모두 정답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씨의 탓도 아닌 그 한 문제, 50점 중 3점인 ‘8번 문항’ 탓에 사회탐구 등급이 2등급으로 내려앉았다. 만점자가 많아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지는 ‘쉬운 수능’의 영향이다.
수도권의 한 교대에 지원한 김씨는 결국 ‘예비합격자 순위 4번’으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세계지리 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합격했을 ‘간발의 차’였다. 김씨는 교대 불합격 이후 한 전문대에 일단 등록했으나, 2학기를 휴학한 채 다시 교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평가원이 1심에서 교육예산 6600만원을 들여 대형 로펌의 전관예우 변호사를 선임해 잘못을 덮으려 한 게 너무 화가 났다. 이번에 교대에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지난번 불합격의 취소 소송을 낼 것이고, 평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내겠다”고 말했다.
3점짜리 오답처리로 한 등급 손해
변호사 “수능 점수로만 뽑은 대학
대학 상대 불합격 취소소송 가능”
평가원 상대 손배 청구 소송도 ■ 불합격 취소·손해배상 줄소송 전망 김씨처럼 세계지리 8번 문항을 틀려 불이익을 당한 학생은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 학생들은 틀린 개수에 따라 적게는 1등급에서 많게는 2등급까지 손해를 봤다. 이 때문에 대학에 불합격하거나, 점수를 낮춰 입학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거나,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면 줄소송이 예상되는 이유다. 원고 쪽 항소심 변호인단인 임윤태 변호사는 “수능 점수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이라면, 승소가 확정될 경우 대학을 상대로 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어 구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면접 등 다른 전형 요소를 반영한다면 ‘세계지리 3점 때문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지만, 수능만 반영한다면 이 3점이 당락에 끼친 영향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합격 취소 소송이 여의치 않거나, 이미 다른 대학에 진학해 불합격 취소 소송을 포기한 상당수 학생들은 평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액수는 아직 예측할 수 없으나, 예전 사법시험 출제 오류로 1차에서 떨어진 응시생들은 1~2심에서 1000만원을 인정받은 바 있다. 수능 이외의 각종 시험 출제 오류로 인한 손해배상 액수로 적게는 40만원 정도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고 임 변호사는 전했다. 하지만 최선은 이미 교육당국의 실수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한테 추가 소송의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구제해주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학생들을 도운 박대훈 전 이비에스(EBS) 강사는 “정부 차원에서 불합격 취소 소송 없이도 추가 입학이 가능하도록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손배소 없이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도 특별법 제정 등이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이번 소송에 참여한 변호인단이 학생들의 집단소송을 도울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 반복되는 수능 문제 오류…방지 대책은 소송까지 간 끝에 출제 오류 판결을 받은 적은 없지만, 수능 문항이 잘못 출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4학년도 언어영역, 2008학년도 물리2, 2010학년도 지구과학1에서도 오류가 발견돼, 평가원 스스로 복수 정답을 인정한 바 있다. 평가원 관계자는 “올해 3월에 수능 시행 계획을 발표할 때 언급했듯이, 수능 문항 이의신청 절차를 보강하고 전문가 검토 절차를 보완해서 논란을 최소화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변호사 “수능 점수로만 뽑은 대학
대학 상대 불합격 취소소송 가능”
평가원 상대 손배 청구 소송도 ■ 불합격 취소·손해배상 줄소송 전망 김씨처럼 세계지리 8번 문항을 틀려 불이익을 당한 학생은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 학생들은 틀린 개수에 따라 적게는 1등급에서 많게는 2등급까지 손해를 봤다. 이 때문에 대학에 불합격하거나, 점수를 낮춰 입학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거나,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면 줄소송이 예상되는 이유다. 원고 쪽 항소심 변호인단인 임윤태 변호사는 “수능 점수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이라면, 승소가 확정될 경우 대학을 상대로 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어 구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면접 등 다른 전형 요소를 반영한다면 ‘세계지리 3점 때문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지만, 수능만 반영한다면 이 3점이 당락에 끼친 영향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합격 취소 소송이 여의치 않거나, 이미 다른 대학에 진학해 불합격 취소 소송을 포기한 상당수 학생들은 평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액수는 아직 예측할 수 없으나, 예전 사법시험 출제 오류로 1차에서 떨어진 응시생들은 1~2심에서 1000만원을 인정받은 바 있다. 수능 이외의 각종 시험 출제 오류로 인한 손해배상 액수로 적게는 40만원 정도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고 임 변호사는 전했다. 하지만 최선은 이미 교육당국의 실수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한테 추가 소송의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구제해주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학생들을 도운 박대훈 전 이비에스(EBS) 강사는 “정부 차원에서 불합격 취소 소송 없이도 추가 입학이 가능하도록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손배소 없이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도 특별법 제정 등이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이번 소송에 참여한 변호인단이 학생들의 집단소송을 도울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 반복되는 수능 문제 오류…방지 대책은 소송까지 간 끝에 출제 오류 판결을 받은 적은 없지만, 수능 문항이 잘못 출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4학년도 언어영역, 2008학년도 물리2, 2010학년도 지구과학1에서도 오류가 발견돼, 평가원 스스로 복수 정답을 인정한 바 있다. 평가원 관계자는 “올해 3월에 수능 시행 계획을 발표할 때 언급했듯이, 수능 문항 이의신청 절차를 보강하고 전문가 검토 절차를 보완해서 논란을 최소화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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