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연근 교사의 대입 나침반
지난 13일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후폭풍이 거세다. 올해 수능은 최악의 ‘물수능’이라서 변별력이 떨어져 정시모집 지원 때 대혼란이 있을 거란다. 심지어 수시모집 대학별 고사 응시율이 높아진 것까지 쉬운 수능 탓을 한다. 정시모집 지원의 혼란을 피하려고 대학별 고사로 몰렸다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 대학별 고사 응시율이 작년보다 높아진 것은 쉬운 수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능 우선선발제가 폐지되고, 논술시험을 고교 교육과정 중심으로 쉽게 출제하게 된 것 등이 응시율 상승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 대학별 고사 응시율이 작년보다 높아진 것은 결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논술 일반전형’은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충족으로 인한 결시자가 많았다. ‘논술 우선선발 전형’은 높은 수능 성적 충족이 관건이어서 경쟁률이 훨씬 저조하지만, 논술 실력보다는 사실상 수능 실력이 중요한 ‘수능 전형’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쉬운 수능은 과연 변별력이 없을까? 수험생들이 문제의 난이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능이라면 ‘물수능’이든 ‘불수능’이든 상대평가제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상대평가제는 점수가 아니라 경쟁자 중에서의 석차, 즉 ‘등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등수는 시험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존재한다. 수능이 쉬워서 변별력이 상실됐다는 주장은 총점에서 만점자(공동 1등의 수)가 너무 많아 누구를 선발해야 할지 모를 때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2015학년도 정시모집 합격선 예측을 보면 수능 4개 영역에서 만점(원점수 400점)을 제시한 입시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쉬운 수능에서도 나름대로 변별력이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쉬우면 점수대별 동점자는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 가산점 등을 더하면 점수의 서열화는 형성된다. 또 ‘동점자 우선처리 기준’이나 ‘학생부 반영비율’ 등에 따라 수험생을 변별할 수 있다.
대입설명회를 가보면 항상 금년도 대입은 힘들다고 한다. 쉽다고, 수월하다고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 정시모집 선발 비율은 작년보다 늘었다. 동일한 모집단위에서는 분할모집도 하지 않는다. 입학 정원이 200명 이상인 모집단위만 분할모집이 가능하다. 특히 수학 B형이 너무 쉬워 혼란에 빠졌다는 자연계는 의학계열 모집인원이 상당히 늘었다. 비의학계열은 의외로 합격선이 낮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수들을 고려하면 정시모집 지원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입시기관들이 “수능이 쉬워 정시모집 지원 시 대혼란이 온다”고 부추기는 데는 ‘점수 인플레’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해 진학 컨설팅을 조장하려는 상업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닌지 봐야 한다.
끝으로 현재의 가채점 점수로 정시모집 진학상담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는 출제 오류 이의 제기로 정답도 확실하지 않다. 대입에서 원점수를 활용하는 대학은 단 한 곳도 없다.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를 활용하는데, 이 점수는 수능 성적표가 나와야 알 수 있다. 대학의 선발 방법은 제각각 다르다.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수능+학생부),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국어+수학+영어+탐구), 수능 영역 가산점(국어B, 수학B, 과탐, 제2외국어 등), 수능 성적 반영지표(백분위, 표준점수) 등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총점이라도 대학별 환산점수는 다르기 마련이다. 원점수를 단순 합산한 총점으로 진학상담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12월3일에 성적표가 나오면 12월19일 원서접수 때까지 보름 이상이 상담 기간이다. 이때 진학 상담을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때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내 적성과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대학은 어느 곳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자. 그래서 점수라는 가격표로 대학을 흥정하는 식의 진학은 지양하자.
안연근 잠실여고 교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서울교육청 대학진학지도지원단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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