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아이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멋진 새 집을 짓느라 성장통을 겪는 시기다. 부모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통증을 감싸줘야 한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부모와 사춘기 자녀가 몸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사춘기 파티’에 참여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과거와 달라진 사춘기 대처법
“짜증나. 말 시키지 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 말 잘 듣고, 늘 밝은 표정만 짓던 아이가 어느날부턴가 이런 소리를 한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다는 걸 직감한다. ‘우리도 다 겪었던 거잖아.’ 한데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아이들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자체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탓이다.
문화적 환경 변화 따라
사춘기 성장통 예전보다 심화
부모에게 과격한 말·행동 예사
온라인 세상서만 소통하기도
몸·마음 크고 있다는 증거
따뜻한 말로 가슴에 품어줘야 “내가 널 왜 낳았나 싶다”…엄마의 아픈 말 “나 오빠 만나서 같이 살 거야.”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싱글맘 최아무개(46)씨는 얼마 전 중학교 1학년 딸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5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최씨 혼자 아이를 키워왔다. 참 살가운 딸이었다. 한데 딸은 올해 중반부터 반항적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 왔다”는 소리에 “왔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의 절친한테서 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우연히 만난 고교생과 교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딸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오빠와 스마트폰으로 종일 대화를 나누고, 수십 장의 사진을 주고받고 있었다. 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내가 정말 널 왜 낳았나 싶다.” 게임·SNS로 외로움 달래는 아이들 많아져 “성질이 고약해진다. 고기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한다. 외모, 이성에게 집착한다. 불만이 많다. 대들 때 맹수처럼 돌변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다.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춘기 아이들을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인 존재”라고 했다. 사춘기는 흔히 ‘뇌가 리모델링을 하는 시기’로 일컬어진다. 이성적인 사고와 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사춘기 때 확장공사를 한다. 새로 집을 짓는 과정을 겪는 아이들 머릿속은 공사판처럼 복잡하다. 요즘엔 전통적인 사춘기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 환경적 요소들도 많아졌다. 정윤경 교수는 “어른들은 ‘요즘 애들 진짜 왜 이렇게 고약해?’라고 한다. 한데 아이들이 변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견뎌내야 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나 ‘발달에 대한 요구’가 바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사춘기 때는 에너지도 잘 방출해야 한다. 한데 많은 부모들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에너지 발산할 기회를 빼앗아놓고 ‘너 왜 이러냐?’며 아이 탓만 하는 셈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한다. 한데 이런 마음을 보듬어줄 어른이 곁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상담전문가인 이창욱 한국마인드케어연구소 대표는 “많은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방과후에 소통할 대상이 없다. 외롭다 보니 이성친구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집착하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했다.
“누군가가 정말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외로우니까, 강박적으로 아무 친구나 지속적으로 사귀는 아이들이 있다. 사귈 때 ‘넌 나만 봐야 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여학생들은 이 시기에 성적 매력을 드러내려는 성향이 강하다. 최근에는 에스엔에스 부계정을 만들어 얼굴 모르는 사람에게 노출 사진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이렇게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과 직접 만남을 갖는 사춘기 아이들도 있다.”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가 카카오톡 등의 대화 창구와 잘못 만나면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아주 사소한 오해로 이른바 ‘저격글’(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단점 따위를 노린 직간접적인 공격성 글)을 주고받고 결국 학교폭력위원회가 소집되는 일도 많다.
돌발 행동은 “내 말 들어주세요”라는 뜻
과거와는 다른 사춘기 징후에 부모들은 당황한다. “너 내 자식 맞냐?” 등 상처 주는 말도 던진다.
이창욱 대표는 “아이가 혼자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며 “골목 한쪽에 순찰차 한 대가 불을 켜고 서서 아이가 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다면 그 길을 지나는 게 그나마 수월할 거다. 그게 바로 부모 역할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등에서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김민자씨는 딸 장아무개(27)씨의 10대 시절 사춘기 부모 몫을 잘 해낸 사례다. 장씨는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한 기업체에 다닌다. 김씨는 딸을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더없이 고맙고 예쁜 딸”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런 딸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 5년 동안은 엄마 속을 퍽이나 썩였다.
“어머님, 따님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초등 5학년 때 담임교사의 호출을 받고 학교로 달려갔다. “선생님, 이거 틀렸잖아요. 이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딸은 선생님의 잘못을 콕 집어 말하는 아이였다. 교사는 아이의 이런 반응에 수업을 힘들어했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딸이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걸 알았다. 방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짜증 나” 이런 말도 많이 했다. 우연히 방 청소를 하다가 딸이 책상 위에 조그만 그림을 테이프로 붙여 놓은 걸 봤다. 며칠 전 잔소리했던 게 떠올랐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상황에서 책상 위에 뭔가를 썼고, 지울 수 없게 되자 그림으로 가려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을 적은 게 아닐까?’ 혼을 내줄까 하다 ‘아이가 자기 감정을 저렇게 표출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뭐라고 썼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 보고 그냥 넘겼다. 그 뒤 엄마는 ‘우리 딸이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송파구로 이사를 오면서 아이 환경이 바뀌었다. 아마 반 아이들은 우리 집 아파트 평수보다는 넓은 평수에 살았을 것이다. 새로 산 집이 단지에서 가장 작은 평수였다. 다른 친구들과의 환경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비롯해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거침없는 표현을 하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이와 소통하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말로 뭔가를 내뱉으면 아이를 비난하게 되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엄마의 감정만 쏟아 놓으면서 관계가 더 나빠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닫고 안 나오니 엄마도 힘이 드는구나.” “어떤 상황이든 엄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단다.” 이렇게 편지를 쓰니 엄마의 마음이 가다듬어졌다. 아이가 했던 단순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엄마는 새로운 환경에서 딸의 마음을 읽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딸과 단둘이 여행할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고3 때도 많은 시간 수다를 떨었다. “너희 ‘담탱이’ 말이지?” 가끔 딸 또래가 쓰는 은어를 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낸 지 5년. 늘 놀기만 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던 딸은 고2로 올라가면서 갑자기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딸은 엄마가 보낸 편지를 말하며 “그때 엄마가 기다려주고 참아줘서 좋았다”며 고마워했다. 김씨는 “딸이 내가 보낸 편지들을 바로바로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엄마가 정성 들여 쓴 편지를 통해 ‘누군가 내 옆에서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 사춘기는 말 그대로 공사가 한창인 시기다. 아이가 잠시 일탈을 했다가도 다시 부모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가정마다 아이와의 소통 고리를 하나쯤 찾아두면 좋다. 그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부모에게 다시 잘 돌아오는 힘이 있다.”
사춘기, 제때 잘 겪고 넘어가는 것도 중요해
사춘기에는 총량 불변 법칙도 있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없어. 너무 착해.” 엄친아·엄친딸 부모들은 다른 부모들 앞에서 이런 말을 종종 한다. 한데 전문가들은 “사춘기를 안 겪는 아이는 없다. 오히려 제때 안 겪으면 나이 들어서 사춘기가 와서 더 힘들다”고 말한다. 윤다옥 서울 한성여중 상담교사는 “대학 상담실에서 일하면서 ‘엄마가 하자는 대로 행동하고 공부만 한 엄친아’ 중 사춘기 때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못 하고 성인이 되어 뒤늦게 상담받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고 했다.
중요한 건 언젠간 겪고 갈 사춘기를 제때 잘 겪고 가는 것이다. 정윤경 교수는 “부모들이 자녀를 보면서 ‘이 녀석이 마음속 재건축을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방황과 일탈은 아이들이 자기 안에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저 녀석이 왜 저렇게 난리를 칠까?’라며 궁금증을 품어주고 아이 마음속 재건축이 잘되도록 기다려주자.”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사춘기 성장통 예전보다 심화
부모에게 과격한 말·행동 예사
온라인 세상서만 소통하기도
몸·마음 크고 있다는 증거
따뜻한 말로 가슴에 품어줘야 “내가 널 왜 낳았나 싶다”…엄마의 아픈 말 “나 오빠 만나서 같이 살 거야.”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싱글맘 최아무개(46)씨는 얼마 전 중학교 1학년 딸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5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최씨 혼자 아이를 키워왔다. 참 살가운 딸이었다. 한데 딸은 올해 중반부터 반항적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 왔다”는 소리에 “왔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의 절친한테서 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우연히 만난 고교생과 교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딸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오빠와 스마트폰으로 종일 대화를 나누고, 수십 장의 사진을 주고받고 있었다. 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내가 정말 널 왜 낳았나 싶다.” 게임·SNS로 외로움 달래는 아이들 많아져 “성질이 고약해진다. 고기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한다. 외모, 이성에게 집착한다. 불만이 많다. 대들 때 맹수처럼 돌변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다.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춘기 아이들을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인 존재”라고 했다. 사춘기는 흔히 ‘뇌가 리모델링을 하는 시기’로 일컬어진다. 이성적인 사고와 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사춘기 때 확장공사를 한다. 새로 집을 짓는 과정을 겪는 아이들 머릿속은 공사판처럼 복잡하다. 요즘엔 전통적인 사춘기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 환경적 요소들도 많아졌다. 정윤경 교수는 “어른들은 ‘요즘 애들 진짜 왜 이렇게 고약해?’라고 한다. 한데 아이들이 변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견뎌내야 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나 ‘발달에 대한 요구’가 바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사춘기 때는 에너지도 잘 방출해야 한다. 한데 많은 부모들이 이 시기 아이들에게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에너지 발산할 기회를 빼앗아놓고 ‘너 왜 이러냐?’며 아이 탓만 하는 셈이다.”
사춘기 여학생들은 반항의 행동으로 성적 매력을 드러내려는 성향이 강하다. 최근에는 에스엔에스 부계정을 만들어 얼굴 모르는 사람에게 노출 사진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이렇게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과 직접 만남을 갖는 사춘기 아이들도 있다. 한겨레 사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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