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시업체가 ‘수능개선위원회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2015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 12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5학년도 수능처럼 쉬운 수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수능 응시생 10명 가운데 8명이 ‘물수능’에 반대했다고 한다. 특히 중위권 수험생들의 물수능 반대가 두드러졌다. 설문조사 결과의 타당성에 대해 고3 담임교사들에게 물으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쉬운 수능에 민감한 학력층은 최상위권 학생인데, 중위권 학생이 반대를 해요? 쉬운 수능의 수혜자는 우리 반에서도 중위권 학생들이었는데….”
쉬운 수능에 대한 반대에 이어, 2018학년도 수능 영어 절대평가 실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쉬운 수능을 더욱 부채질해 수능 변별력만 약화될 것이다”, “영어가 쉬워져도 국어·수학 영역으로 사교육이 옮겨가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 애초 도입 취지인 ‘사교육비 경감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등 부정적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 입시업체는 마치 학부모들은 정해진 사교육비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것처럼, 영어 6조3000억 시장이 국어·수학·탐구 영역으로 이동하는 ‘사교육비 총량 불변의 법칙’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차기 정부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를 승계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교육업계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로 정책을 비웃는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과연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단점만 있을까? 현재의 영어 교육은 주로 ‘읽기’ 위주의 문제풀이에 치중되어 있다. 마치 국어처럼 지문을 읽고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평가한다. 그래서 <이비에스>(EBS) 교재를 미리 공부하지 않는 영어권 외국인도 수능 영어를 어려워한다. 그러나 어학 교육의 본질은 ‘듣기·말하기·쓰기’에 있다. 문제풀이 식 공부가 아닌 의사소통을 지향하는 교육에서 상대평가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실용영어에서는 절대평가가 더 효과적인 공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용영어 중심의 영어 교육을 하려면 학교 현장에 원어민 강사 배치, 영어 수업 시간에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등의 교육과정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실시되면 대학이 영어 본고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섣부른 주장이다. 대입 전형에 대한 교육부와 대교협의 제재 노력 그리고 본고사 실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대학에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왕 쉬운 영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수능 수학도 2015학년도처럼 쉬웠으면 좋겠다. 어려운 수학 공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수포자’(수능 수학영역 공부를 포기한 사람)가 된 학생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2015학년도 수능에서 자연계열 수험생이라 할 수 있는 과탐 응시자는 23만377명이었다. 이 가운데 수학B형 응시자는 15만4297명이었다. 자연계열 수험생의 3분의 1인 7만6080명이 수학B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수학 공부가 필요한 자연계열 학생도 이럴진대 인문계열은 더 심할 것이다.
일반고에서 3학년 수학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인문계열 학생은 약 3분의 1 정도로 추산된다. 나머지 3분의 2가 수포자인 것이다. 수능 수학이 2015학년도처럼 쉽게 출제된다면 수포자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남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풀이를 시도하는 공부를 하면서 창의력과 논리력이 신장될 것이다.
2015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입시 기관들은 물수능 때문에 정시모집 지원시 대혼란이 있을 거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마감된 지금 되돌아보면 어떤가. 다른 해처럼 마지막날 접수가 몰리는 눈치 지원은 있었지만, 우려했던 만큼의 혼란은 없었다. 쉬운 수능도 변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8학년도 대입에서도 수능 성적표에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 없이, 등급만 표기됐지만 정시모집 지원 때 큰 혼란이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의 영역별 점수를 조합한 총점을 공개해 진학 상담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시업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능이 어려워야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연근 잠실여고 교사,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