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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인디언식 ‘이야기막대’ 들고 갈등 함께 풀어요

등록 2015-01-19 19:49수정 2015-01-20 10:58

지난 7일 경기도 부천 경기예고에서 열린 회복적 정의 콘퍼런스에서 로레인 스터츠먼 암스터츠가 한국평화교육훈련원 관계자, 현직 교사들과 함께 ‘회복적 정의와 생활교육’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제공
지난 7일 경기도 부천 경기예고에서 열린 회복적 정의 콘퍼런스에서 로레인 스터츠먼 암스터츠가 한국평화교육훈련원 관계자, 현직 교사들과 함께 ‘회복적 정의와 생활교육’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제공
[함께하는 교육] 교육 현장 새 바람 ‘회복적 생활교육’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앞에 놓인 돌(문제)은 걸림돌일까요, 디딤돌일까요?”

지난 7일 경기도 부천 경기예고에서 회복적 정의 콘퍼런스(경기도 부천교육지원청, 한국평화교육훈련원,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주최)가 열렸다. 이 콘퍼런스에서 강사로 참여한 로레인 스터츠먼 암스터츠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에서 피해자-가해자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문가로 <학교현장을 위한 회복적 학생생활지도>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로레인은 “대부분 앞에 놓인 문제를 걸림돌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문제를 디딤돌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으면 앞으로 쉽게 나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강압과 처벌에 의한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문제 상황에서 나온 가해자와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겪거나 공동체 안에서 낙인찍히지 않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회복적 생활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학교는 물론 지역이나 도시 차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146개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남양주에서는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학교폭력예방 및 갈등조정센터’를 만들었으며, 부천시와 부천교육지원청, 부천법원도 업무협약(MOU)을 맺고 회복적 정의에 기반을 둔 평화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폭력 등 갈등상황 많아진 학교
가해학생 처벌에 그치지 않고
아이 행동의 원인 찬찬히 들여다보는
‘회복적 생활지도’ 주목받고 있어
구성원 모두 참여해 공동의 약속 만들며
갈등서 비롯된 공동체 상처 극복 등
부모-자녀 가족구성원 소통에도 좋아

‘서클’로 문제해결방법 찾는 부천동여중

부천동여중 2학년 학생들은 지난해 체육대회에서 에어로빅 공연을 하기로 했다. 연습 도중 한 반에서 리더로 뽑힌 아이와 나머지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리더는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고, 아이들은 리더로 뽑힌 학생이 너무 ‘빡세게’ 훈련을 시켜서 불만이었다.

금선남 교사는 양쪽이 힘들어하는 걸 알고 아이들과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아이들은 에어로빅을 하면서 본인이 왜 힘든지, 어떤 점이 서로에게 고맙거나 서운한지 돌아가면서 털어놨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연습량이나 내용을 조정하며 갈등을 풀어낼 실마리를 찾았다. 학생들은 이렇게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쓰이는 프로그램인 ‘서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말 그대로 회복적 정의의 가치와 신념에 기초한 생활지도를 뜻한다. 회복적 생활지도는 학생이 잘못한 일에 대해 반성하고 문제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또 ‘문제상황으로 누군가와의 관계를 훼손하고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한다. 단순히 문제의 잘잘못을 따지고 벌로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성을 살리게 하는 게 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이뤄지는 모든 대화의 기본은 ‘서클’ 형태로 이뤄진다. 서클은 구성원들이 토킹스틱(북미의 인디언들이 회의를 할 때 활용한 이야기도구로 공동체를 상징하거나 구성원들이 정한 물건)을 들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야 하며 토킹스틱을 손에 든 사람이 말할 때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또 서클에서 나온 이야기를 서클이 끝난 다음 다른 자리에서는 말하면 안 된다.

금 교사는 “서클은 꼭 문제가 일어날 때만 하는 건 아니다. 평소에는 ‘신뢰 서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중학생은 진지하거나 지루한 걸 싫어하고 친한 친구가 아닌 여러 친구들 앞에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걸 어려워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서클을 진행하되 ‘가장 맛있는 급식 메뉴’나 ‘내가 좋아하는 학교 안 장소’ 등 가벼운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면 좋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신뢰 서클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서클을 해도 학생들이 어색해하거나 쭈뼛거리지 않는 효과가 있다.

부천동여중은 지난해부터 학교 차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해오고 있다. 2학년 주은혜양은 “예전에는 학급회의 때 몇몇 나서는 아이들의 의견만 반영해서 결론을 내렸다. 소심한 애들은 생각이 있어도 얘기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학급 장기자랑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반 파티 때 뭘 먹을지부터 염색이나 치마 길이 등 교칙을 정할 때도 모두의 의견을 듣고 다 같이 정한다”고 말했다.

주양은 “서클로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더 나은 결론을 찾고, 잘 몰랐던 친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교사 입장에서는 서클이 학생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평소 친구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수업시간에 자지 말자’ 학급 규칙 함께 만들어

원래 회복적 정의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나 호주의 토착 원주민들, 캐나다의 초기 원주민들이 분쟁을 해결할 때 쓰던 정의 원리였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사법시스템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을 회복하는 프로그램으로 활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시스템 안에서 처음 도입한 뒤 2011년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학교 현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의 학교 생활지도에서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가해자를 처벌하는 응보적 지도가 많았다. 반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갈등 상황의 원인과 내용을 들여다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목한다.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워드 제어 미국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교 갈등전환학대학원장은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를 구분지어 설명했다. 가령,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응보적 정의는 ‘누가 범인인가’ ‘어떤 법을 위반했나’ ‘어떤 처벌이 합당한가’부터 따진다. 이에 반해 회복적 정의는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피해자의 요구는 무엇인가’부터 묻는다.

문제를 당사자들에 국한하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학교 생활지도와는 다르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센터 정용진 소장은 “두 사람이 개인적 일로 다퉜다고 하더라도 그 둘의 관계가 깨지면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도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선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문제가 발생한 이후 상황을 바로잡는 데 주로 활용했다면, 지금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식의 접근이 많아졌다. 이때 쓰이는 것이 ‘존중의 약속’이다. ‘존중의 약속’은 구성원들이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공동체 내에서 신뢰를 쌓고 갈등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급 규칙을 정할 때 학생은 ‘교사가 학생을 어떻게 존중해줬으면 하는지’ ‘내가 교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학생들끼리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공동체 시설이나 환경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의 내용을 적는다. 교사는 같은 내용에 대한 답을 교사 입장에서 적는다. 이후 모두의 의견을 취합하고 합의 과정을 거쳐 학급 규칙을 만들고 각자 사인을 한다.

‘왜 그랬어’가 아니라 ‘무슨 일 있었니’부터 물어야

만일,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지 말자’는 존중의 약속을 했는데 한 학생이 이를 어겼다 치자. 그건 모두의 합의로 만든 ‘서로의 존중’이 깨진 것이다. 그때 교사는 바로 벌점을 주지 않고 학생에게 약속 내용을 상기시킨다. 이후에도 학생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강압적으로 다그치는 대신 ‘회복적 질문’부터 한다.

정 소장은 “‘회복적 질문’은 행동의 맥락을 파악한 뒤 아이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한 질문 방식”이라며 “무조건 ‘네가 잘못했지?’ ‘왜 그랬어?’라고 몰아세우면 아이는 반성보다는 반항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원인도 모르고 억지로 잘못을 뉘우치라고 하면 대들거나 삐뚤어진 행동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질문 내용은 먼저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그 일로 인해 누가 큰 영향이나 피해를 입었나?’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다음은 이유가 있을지언정 잘못이 분명하다는 걸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아이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스스로 정하게 한다. 그리고 교사나 친구들 등 공동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지 묻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질문을 건네는 까닭은 학생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엎드려 잤던 학생은 앞 시간에 친구에게 맞았거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유를 묻기보다 교실 뒤로 나가 있으라거나 반성문을 쓰게 한다면 아이는 왜 잘못했는지 모른 채 분노만 키우게 된다.

4년째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해오고 있는 성남 수내중 박숙영 교사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통제 중심에서 벗어나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책임감을 이끌어내는 교육 방식”이라며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갈등을 평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에서도 회복적 생활교육의 일환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 많다. ‘서클’을 통해 가족회의를 진행하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 지키면 좋을 가족 규칙을 ‘존중의 약속’으로 정할 수 있다. 이후 약속을 어기거나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회복적 질문’을 통해 서로의 상황을 살피고 화해를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정 소장은 “부모가 권위를 내려놓고 아이와 상호 존중하면 민주적 가정이 될 수 있다”며 회복적 자녀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엄마는 ‘누굴 닮아서 그러냐’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며 혼자만의 기준으로 아이를 비난하고 야단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부모가 권한을 갖고 일방적으로 훈육하는 ‘파워 오버’가 아니라 아이와 권한을 나눠 서로 만든 약속을 같이 지켜나가자는 ‘파워 위드’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교육효과도 있고, 가족 분위기도 평화롭게 바뀔 수 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분노털고 용서·화해 거쳐 평화찾는 법

회복적 정의 관련 도서

회복적 정의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학교나 가정에서 직접 회복적 정의를 실천할 때 참고할 만한 책 몇 권을 소개한다. 회복적 정의의 이론을 정리한 책부터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교육한 사례,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프로그램과 관련된 소설 등을 현직 교사와 전문가들이 추천했다.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하워드 제어 지음
KAP

미국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의 갈등전환학 대학원장으로 회복적 정의를 가르치고 있는 하워드 제어 교수의 책. 이 책은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짓기, 가해자에 대한 응징,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보상의 사법적 정의, 응보적 정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법적 처벌로 표면적인 분쟁은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억울하고 피해자는 분노에 차 있다. 이 책은 “회복적 정의란, 마음으로부터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
박숙영 지음
좋은교사

지난 4년간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해온 박숙영 교사(성남 수내중)가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내용을 총망라해놓은 책. 박 교사는 이 책에서 억압이나 강제, 협박과 수치심에 기반한 생활지도가 어째서 학생들을 더 청개구리로 만드는지, 그런 체제가 왜 소용이 없는지를 낱낱이 해부하고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단절과 대결’, ‘수치심’이 아니라 ‘연결’과 ‘공감’에 초점을 둔 회복적 생활교육 사례를 펼쳐놓는다.

스피릿 베어
벤 마이켈슨 지음
양철북

‘스피릿 베어’는 힘, 용기, 사랑, 조화의 덕목을 상징하는 동물로 예로부터 인디언들이 숭배와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이 소설은 삶의 극단으로 치닫던 한 소년이 스피릿 베어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책에 나오는 ‘원형 평결 심사’는 수세기 동안 인디언 사회에서 행하던 재판방식이다. 죄인을 돕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죄인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해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 개념은 근대 미합중국의 사법제도에 도입되기도 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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