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9일 충북 청주의 대성여상에서는 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적응 캠프가 열렸다. 대성여상 제공
[함께하는 교육] ‘새학기 증후군’ 극복 돕는 학교들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어쩌지? 친구들끼리 처음 친해질 시기를 놓치면 어쩌지?’
지난해 1월, 고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충북 청주 대성여상 2학년 정선주양은 이런 걱정으로 긴장과 불안을 느꼈다. 대성여상에 같이 합격한 친구들은 스마트폰 메신저를 이용해 ‘단톡’(단체 카카오톡)을 시작했다. 정양도 그 채팅방에 함께 있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대화에 선뜻 끼어들지 못했다. ‘아직 얼굴도 못 봐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말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초등생뿐 아니라 중·고교생까지
낯선 환경에 불안·긴장 스트레스
입학 전, 캠프로 공동체 활동하고
타악기 협주하며 호흡 맞추기도
좁은 교우관계 익숙한 아이들에게
새 관계맺기에 대한 부담 덜어줘
캠프 열어 신입생 ‘워밍업’ 도와
정양처럼 새학기를 눈앞에 둔 학생들 가운데에는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불안과 긴장으로 평소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한 학생들은 등교에 대한 부담이 큰 나머지 학교 가기 전날 밤이나 학교 가는 날 아침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새학기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은 주로 초등학생들에게 나타나지만, 중·고교생은 물론 대학생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례들이 있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새로운 교우관계나 교과목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은 예전보다 학업에 대한 중압감이 심하고, ‘끼리끼리’ 모이는 좁은 교우관계에 익숙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을 과거에 비해 쉽게 느낀다.
정양의 경우, 지난해 1월 중순 학교에서 진행한 신입생 적응 캠프를 통해 새학기에 대한 막연한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캠프 당일 아침에도 너무 긴장한 탓에 정신이 없었어요. 학교에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요. 하지만 적응 캠프에서 했던 활동 덕분에 입학 이후의 학교생활은 한결 수월했어요. ‘워밍업’을 한 셈이죠. 여전히 새학기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얼굴이나 성격을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 건물도 처음 가는 곳이 아니라서 부담이 훨씬 덜했어요.”
매년 예비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신입생 학교 적응 캠프’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총 6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 캠프는 학교 교칙이나 입학 시 준비물 등을 설명하는 다른 학교의 신입생 예비소집일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짝꿍과의 인터뷰’, ‘디스크(DISC)성격검사’, ‘협동 사포화 그리기’, ‘나의 인생 표지판 이야기’ 등 학생 개인이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려진다.
캠프에서는 디스크성격검사도 실시한다. 이 검사로 학생들의 성격을 주도형(D)·사교형(I)·안정형(S)·신중형(C) 등으로 나눈 뒤, 그 결과에 따라 비슷한 성향을 가진 학생들끼리 모둠을 꾸린다. 이렇게 모인 각 모둠은 자신들의 성격이 가진 장단점을 함께 생각해보고 이를 공동으로 발표한다. 서먹함을 벗고 함께 모여 재미있는 활동을 할 기회도 있다. 각 조가 그린 사포그림을 이어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협동 사포화 그리기’의 경우, 학생들은 서로 다른 개성이 묻어나는 그림들을 모아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다. 고교 재학 중 자신의 삶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의 인생표지판 이야기’는 교통표지판을 보며 각 그림의 의미를 생각하고, 표지판이 나타내는 ‘길’을 ‘인생여정’에 비유해 각자 표지판을 활용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개인 활동이다.
2학년 박예라양은 “내가 졸업한 중학교에선 나를 포함해 3명이 대성여상에 왔다”며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걱정을 했었는데, 캠프를 하면서 친구들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해봤다는 것을 알게 돼 반가웠다. 지금 학교는 특성화고인데 다들 학교 선택을 할 시점에 ‘인문계냐 특성화고냐’를 고민한 경험이 있었다”며 웃었다.
같은 학년 이유빈양도 신입생 적응 캠프가 학교생활을 함께 할 친구들을 미리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저는 낯을 가리거나 소극적인 성격이 아닌데도 입학 후에는 친구들끼리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캠프 덕분에 서로 ‘잘 지냈어?’ 하는 인사도 했어요.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거죠.”
프로그램을 진행한 청주의 청소년 상담기관 ‘이팝나무’의 유영순 공동대표는 “신입생 캠프는 학생들이 친구들 사이의 이해심과 협동정신, 신뢰감의 중요성을 느끼고 나아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게 구성했다. 학기 초 학교 적응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대성여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같은 프로그램의 적응 캠프를 실시했다. 대성여상 박재규 교사는 “신입생 적응 캠프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와 학급 친구들을 미리 경험하면 교사들 입장에서도 학기 초 학생지도에 도움을 받는다”며 “사전 적응 활동 없이 새학기를 맞으면 학생들이 학교에 익숙해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악기 다루며 소통할 기회 주고, 긴장 풀어줘
음악치료를 활용해 새학기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는 학교도 있다. 특히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2학년들을 대상으로 학년 초 적응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효과가 좋다. 지난해 경기 성남중학교에서 실시한 ‘드럼서클’ 프로그램이 좋은 사례다.
드럼서클은 다양한 종류의 타악기 40~60개를 놓고 단체로 모여 소리를 내보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아고고벨(삼바 타악기의 일종), 젬베 등 다양한 타악기를 하나씩 갖고 자유롭게 두들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음악치료사는 ‘아고고벨만 제외하고는 모두 작게 쳐볼까요?’, ‘베이스드럼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등 학생들이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드럼서클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이 되면 신기하게도 각자가 내는 타악기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화합하게 된다.
성남중 3학년 박서영양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박자와 리듬을 만들어내는 활동에 다들 신났었다. 있는 힘껏 세게 북을 치면 스트레스도 풀렸다”고 했다.
“무작위로 섞여 앉아 북을 치다 보면 얼굴이나 이름을 잘 모르던 아이들도 눈에 띄었어요. 전에는 그 친구들을 그렇게 오래 주의 깊게 살핀 적이 없었는데 악기 연주 덕분에 친구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성남중학교에서 드럼서클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단법인 전국음악치료사협회 소속 곽은미 명지대 교수는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타악기들의 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려면 자신이나 다른 친구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극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새로운 학교 환경 적응에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활동이 좋습니다.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긴장을 풀고 자신감도 기를 수 있어요.”
성남중 김선희 2학년 부장교사는 “학기 초에 실시한 드럼서클 프로그램 덕분인지 지난 1년간 2학년 학생들 지도가 아주 편했다.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현 2학년 아이들은 학교에서 ‘천사들’로 통한다”며 웃었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낯선 환경에 불안·긴장 스트레스
입학 전, 캠프로 공동체 활동하고
타악기 협주하며 호흡 맞추기도
좁은 교우관계 익숙한 아이들에게
새 관계맺기에 대한 부담 덜어줘
신입생 적응 캠프 프로그램 가운데 ‘협동 사포화 그리기’는 서로 다른 조가 그린 그림을 이어붙여 큰 그림 하나를 완성하게 하는 활동이다. 사진은 참가 학생들이 큰 그림 가운데 자신들의 그림을 찾아 발표하는 장면. 이팝나무 제공
지난해 학교 적응 캠프에 참가했던 2학년 박예라양이 캠프 때 작성한 활동지. 박양은 현재 대성여상의 전교 부회장이다. 박예라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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