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 강북구 청소년축제 ‘추락’에서 동네형들과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청소년들이 기획한 전시 퍼포먼스 ‘소통의 벽’. 부모와 자녀들이 하고 싶은 말을 상자에 써서 쌓은 것이다. 동네형들 제공
[함께하는 교육] 공동체 주도의 대안적 교육현장
‘반달마을학교’, ‘무지개디딤돌학교’, ‘청년인생설계학교’ 그리고 ‘동네형들’까지. 모두 배움을 주는 ‘학교’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서는 도통 뭘 배우는지 알 수 없는 학교다.
흔히 교육은 각 가정이나 학교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최근에는 마을이나 시민단체 차원의 프로젝트 학교 등 공동체가 주도해 만든 교육 현장이 늘고 있다. 이런 학교들은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넘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 소통창구 구실도 한다.
교육은 가정·학교 몫만은 아냐
마을주민·시민단체 등이 나서
주체적으로 꾸린 교육 공동체 늘어
인문학·예술체험·인생설계까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공부하며
세상 보는 시야 넓힐 기회도 생겨
주민들 ‘사랑방’ 역할 뛰어넘은 마을학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서부간선도로 방향으로 도림천로를 걷다보면 아파트촌이 쭉 이어진다. 그 뒤쪽으로 주택과 작은 공장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신도림로 11길을 따라 자리 잡은 이곳을 사람들은 ‘안골 마을’, ‘안골’이라 부른다.
“신도림동은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아파트촌이고 구로구 15개동 중에 가장 번화한 거리다. 하지만 여기 ‘안골’은 허물어지는 집도 많고, 기초생활수급자도 많다. 길 하나를 두고 안골과 아파트촌의 빈부격차가 심하다.”
구로구 신도림동에 위치한 ‘반달마을학교’ 김동옥 교장의 말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 학교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고 살던 주민들을 한 가족처럼 만들어준 공간이다. 학교에는 안골 아이들은 물론 아파트촌 아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찾은 이유는 각기 달랐다. 안골 아이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 아파트촌 아이들은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학교를 찾았다. 김 교장은 “아파트촌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초·중·고교를 다니면서도 ‘안골’이라는 곳을 몰랐다고 했다”며 “그 아이들에게 자원봉사하면서 수업을 한두 시간씩 반드시 듣게 했다. 안골 아이들과 아파트촌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촌에 사는 한 주민은 “이곳이 우범지역이라고 생각해서 아이한테 횡단보도 길 건너편 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저녁때 반달마을학교에 오면서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고 했다.
반달마을학교 강사는 지역주민이다. 김 교장은 경력이 단절된 고급인력들을 끌어모았다. 덕분에 프로그램은 자존감 형성을 돕고 감정 조절법 등을 가르쳐주는 미술치료나 인성교육부터 성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까지 다양해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커피를 마시며 수다 떨러 학교에 왔던 부모들이 이제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러 이곳에 온다. 자원봉사하러 온 아파트촌 고교생들은 취약계층 초등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체육활동도 함께 한다. 마을학교는 ‘동네사랑방’ 구실을 하는 것은 물론 아이와 부모들의 공동체의식도 끌어냈다.
구로구에 위치한 ‘무지개디딤돌학교’의 오지연 교장은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이 지역에 결혼이주여성이 늘자 이들을 돕기 위해 주민 대여섯 명이 모임을 꾸린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상담도 해주고 취업에 필요한 이력서 쓰는 것도 도왔다. 지금은 이들과 한국 아이들에게 세계문화수업을 진행한다. 결혼이주여성의 모국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해보는 식이다.
정승(구일초 3)군은 “타이에서 온 선생님이 직접 파타야랑 쌀국수를 만들어줘서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었다”며 “타이가 무에타이 무술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고 현지 인사말도 배웠다”고 말했다. “교과서나 책에서 본 적 없는 나라들에 대해 알게 돼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 언어 빼고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들이 한국을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도록 도와주고 싶다.”
반달마을학교와 무지개디딤돌학교는 마을학교를 지원하는 거점학교인 구로마중학교 소속이다. 마을학교란,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며 학습하고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공간을 말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주민참여형 마을학교 생태계 조성사업’으로 9개 자치구에서 107개 마을학교를 운영했다.
학교 밖 선생님들과 예술 활동, 인생설계도 해
강북구 노해로 23길에 위치한 ‘동네형들’ 사무실 문에는 단체 이름 옆에 삼선슬리퍼 한 짝이 붙어 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동네형의 친숙한 이미지를 떠올려 만든 로고다. 문화예술을 전공한 청년 활동가들은 이 공간에서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한다. 아트디렉터 이인혁(35)씨는 “강북구는 서울시에서 재정자립도가 두 번째로 낮고 복지, 문화적 기반이 낙후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공공미술, 건축, 디자인, 인문학,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15~16명의 활동가가 함께한다. 이들의 목표는 지역 주민들과 문화예술작업을 통해 소통하는 것. 주민들은 동네형들 덕에 굳이 전시회에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예술작품을 접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쉽게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예술가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면서 자신이 꿈꿔 왔던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우리 모토는 ‘누구나 쉽게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예술’이다. 예술적 재능이 없어도 누구든지 쉽게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생활 속에 예술을 녹아들게 하는 것이다.”
활동가 청년 박가을(25)씨의 말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동네형들은 지역의 대안학교와 장애인학교 학생, 지역 청년들과 함께 학교에 벽화 그리기 작업을 했다. 아이들은 먼저 짧은 스토리를 만들어 이를 직접 연극으로 표현했다. 이후 각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벽에 서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동작을 취하고, 몸 윤곽선을 따라 그린 뒤 그 위에 색색의 시트지 조각을 오려붙였다. 재료비 부담 없이 손쉽게 벽화를 만들 수 있는 작업이었다.
지난해에는 동네 구석구석에 이런 작업을 했다. 감나무가 있는 집 벽에는 빨간 감과 감을 따먹으려는 새 이미지를 시트지에 인쇄해 붙였다. 수도계량기나 하수구 맨홀 뚜껑 옆에도 물고기나 나뭇잎을 붙이거나 그려넣었다. 골목이라는 공간에 재미난 그림을 붙여 ‘친근하고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우리를 낯설게 바라보거나 ‘뭐하는 건가’ 싶은 눈빛으로 호기심을 드러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공간에 동네 카페 주인이 와서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며 아이들과 함께 김장도 하고, 예술가들은 주민과 아이들을 위해 영화 상영회도 연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예술 활동이라지만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 같이 모여서 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선진국의 교육시스템을 가져와 새로운 교육 모델을 그려보는 공동체도 있다. 교육활동가들로 구성된 ‘21세기교육연구원’은 얼마 전 ‘청년인생설계학교’를 열었다. 윤혁 총괄기획실장은 “학습의 양과 속도, 꿈을 찾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학생이 획일적인 교육과정에 맞춰 생활한다”며 “그러다 보니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청년인생설계학교 기획팀은 이런 상황을 우려해 덴마크, 스웨덴, 미국 등 선진국의 프로그램을 찾았다. 덴마크의 호이스콜레는 전환기교육으로 15살 전후한 나이의 학생들 중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학생들이 1년간 거쳐가는 인생학교다. 정부의 공식 교육과정으로 시험과 경쟁이 없고 학생이 직접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청년인생설계학교는 여기에 착안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전환점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생애주기별 전환기에 찾아오는 위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프로그램 내용은 주로 자존감을 높이고 관계 맺기를 통해 사회성을 길러주는 내용으로 꾸려져 있다. 올해 초 시범운영했던 1, 2기 인생설계학교에는 박성준(길담서원 대표), 윤구병(농부철학자), 김진혁(전 <교육방송> 피디), 양준철(온오프믹스 시이오(아이티 분야)), 최경실(무용가)씨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가 참여했다.
윤 실장은 “우리 학교의 수업은 인생의 선배들이 나와 몸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고, 인문학적인 시각이나 매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등을 고민하게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며 “또한 본인만의 길을 개척해 새로운 삶을 사는 이야기 등도 들려준다”고 말했다.
김수연(숭덕여고 1)양은 “학교를 벗어나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 처음이다. 참가자 나이대가 다양해서 나보다 10살이나 많았던 참가자도 있었는데 서로 잘 챙겨주고 내 얘기에 공감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정호(21)씨는 “학교가 끝난 뒤에도 매달 모임을 연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모임도 갖기로 약속했다. 모임 때는 각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선생님이 조언도 해준다”고 했다.
참가자들 대부분 강의가 끝난 뒤 “내가 속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획단으로 참여했던 대학생 정선호(21)씨도 “청년인생설계학교는 일반학교와 남달랐다”고 말했다.
“이곳은 자기 자신을 자세히 바라보고 성찰할 시간을 준다. 또 가족이나 친구 등 오히려 친밀한 관계에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남과 관계를 맺는 일이 흥미롭고 의미 있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학생 마을살이 길잡이 해주실 분! 서울시 ‘마을과 학교 상생 프로젝트’ 전국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동육아 커뮤니티나 여가를 함께 즐기는 동호회, 공부모임 등 성격도 다양하다. 각 지자체가 마을공동체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는 올해 ‘마을과 학교 상생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학습 외에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방법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세우고 실행하는 3개년 교육계획’으로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해 진행한다. 프로젝트는 학생이 마을살이를 통해 학급과 학년, 학교를 넘나드는 또래 집단과 형, 동생, 언니, 누나, 친구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또 지역 주민들이 학생들의 멘토, 이모, 삼촌 노릇을 하며 아이들이 공동체 내에서 구체적인 제 역할을 찾고 사회성을 기르도록 한다. 이를 위해 마을과 학교에서 실무책임자를 각각 뽑고 사업 추진을 돕는 간사로 구성된 ‘마을-학교’ 상생 프로젝트 실행단을 꾸릴 계획이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는 지난달 16일 사업설명회를 열고 현재 5개 이상의 주민 모임과 학교가 함께하는 지역 프로젝트팀을 공모 중이다. 접수는 전자우편(schoolmaeul@gmail.com)으로 가능하며 마감은 5일 오후 6시까지다. 자세한 문의는 전화(02-354-0761)로 하면 된다. 최화진 기자
마을주민·시민단체 등이 나서
주체적으로 꾸린 교육 공동체 늘어
인문학·예술체험·인생설계까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공부하며
세상 보는 시야 넓힐 기회도 생겨
2012년 동네형들과 강북교육지원센터 청소년들이 만나 벽화작업을 한 센터 건물. 동네형들 제공
올해 초 열린 ‘청년인생설계학교’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춤테라피 시간에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하고 있다. 청년인생설계학교 제공
동네형들이 동네 곳곳에 시트지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서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들. 동네형들 제공
학생 마을살이 길잡이 해주실 분! 서울시 ‘마을과 학교 상생 프로젝트’ 전국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동육아 커뮤니티나 여가를 함께 즐기는 동호회, 공부모임 등 성격도 다양하다. 각 지자체가 마을공동체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는 올해 ‘마을과 학교 상생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학습 외에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방법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세우고 실행하는 3개년 교육계획’으로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해 진행한다. 프로젝트는 학생이 마을살이를 통해 학급과 학년, 학교를 넘나드는 또래 집단과 형, 동생, 언니, 누나, 친구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또 지역 주민들이 학생들의 멘토, 이모, 삼촌 노릇을 하며 아이들이 공동체 내에서 구체적인 제 역할을 찾고 사회성을 기르도록 한다. 이를 위해 마을과 학교에서 실무책임자를 각각 뽑고 사업 추진을 돕는 간사로 구성된 ‘마을-학교’ 상생 프로젝트 실행단을 꾸릴 계획이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는 지난달 16일 사업설명회를 열고 현재 5개 이상의 주민 모임과 학교가 함께하는 지역 프로젝트팀을 공모 중이다. 접수는 전자우편(schoolmaeul@gmail.com)으로 가능하며 마감은 5일 오후 6시까지다. 자세한 문의는 전화(02-354-0761)로 하면 된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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