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학교를 따지는 검찰의 연고주의 문화는 뿌리가 깊다. 서울대 정문. 한겨레 김진수 기자
서울대 교수들이 연평균 4000여건의 연구를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의뢰받는데도 학내 기구가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외이사를 맡은 기업으로부터의 연구 수주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일부는 이를 어기기도 했다. 이 대학 지구환경과학부 김준모(49) 교수가 국가연구개발 과제비 7억65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한겨레> 3월6일치 10면) 일을 계기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교내 연구자들의 연구 수주 현황’(2010년~2014년 10월)을 <한겨레>가 분석해 보니, 서울대 교수·강사·연구원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연구를 의뢰받은 건수는 모두 2만560건이다. 5년간 연구비 총액은 2조8597억원, 건당 평균은 1억3900만원이다. 가장 많은 연구를 수주한 교수는 33건에 55억원을 지급받았다.
단과대별로는 공과대가 4695건으로 가장 많다. 의과대는 3153건, 김 교수가 속해 있던 자연과학대는 2307건이다. 이어 농업생명과학대(1185), 약학대(1069), 사회과학대(679), 사범대(671), 인문대(655), 수의과대(553), 치의학대학원(469), 보건대학원(381), 경영대(334) 등의 차례로 많다.
서울대 교수들은 연구비를 기업이나 정부에서 직접 받지 않고 서울대 산학협력단을 통해 받는다. 한꺼번에 지급받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 연구비는 분할해 받기도 한다.
연구비 부정 사용은 현실적으로 산학협력단 감사팀에서 철저히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박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연구비를 용도에 맞게 썼는지 자체 감사를 하지만, 교수가 마음먹고 허위로 연구원 등록을 하는 등 조작을 하면 찾아내기 힘들다”고 했다. 기소된 김 교수는 학생연구원 14명의 인건비를 빼먹거나 허위로 연구원을 등록하는 수법으로 인건비 14억원 가운데 6억8000만원, 허위 물품구매 증빙서류를 내고 85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행각은 감사원 정기감사로 적발됐지만, 민간기업 발주 연구는 문제를 짚어내기가 더 어렵다.
규정을 어기면서 연구용역을 수주한 사례도 있다. 2012년 7월 개정된 ‘서울대 전임교원 사외이사 겸직 허가에 관한 지침’은 최근 2년 안에 특정 업체에서 연구용역을 받았으면 원칙적으로 그곳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사외이사를 겸직중인 때와 겸직이 끝나고 2년 안에 같은 업체에서 연구용역을 받을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아모레퍼시픽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송아무개 교수는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단기용역 교육과정) 2014년도 아모레퍼시픽 임원 육성 과정’ 연구를 진행하면서 5억7000만원을 받았다. 또 송 교수는 롯데제과에 2010년과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롯데그룹 임원 육성 관련 과정 설계 연구 및 과정 운영 자문’을 하고 2012년 3월 롯데제과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이는 지침 개정 전의 일이다. 2012년 9월 인피니트헬스케어 사외이사가 된 신아무개 교수는 그해에 이 업체에서 세 차례 연구를 수주해 1억8000여만원을 받았다.
송 교수는 “연구 수주라기보다 임원들 교육 프로그램이다. 다른 교수들도 강의를 했고, 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당시 학칙을 잘 몰랐다. 그 뒤로 사외이사를 맡은 기업에서 연구를 수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연구 수주나 연구비 집행 과정에서의 부정을 엄정하게 조사하고 징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외이사 기간에 연구 수탁을 받을 경우 교수로서의 업무와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기 쉽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정진후 의원은 “횡령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 수급이 발견되면 다른 국가연구개발 과제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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