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어린이집 몫의 누리과정(만 3~5살) 예산까지 시·도교육청 예산에서 의무 편성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교육감들한테 떠넘기는 처사라는 반발이 거세다. 무엇보다 추가 재정 지원 없이 넉넉지 않은 교육청 살림으로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초·중·고 학생 예산을 나눠 쓰다 보면 ‘첫째 아이의 밥그릇을 빼앗아 동생에게 우유를 먹여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13일 누리과정 예산, 인건비 등을 ‘의무지출경비’로 명시하는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은 자체 예산이 없어 정부에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받아 사업을 벌인다. 이번 시행령 개정 추진은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을 이 교부금에서 의무적으로 지출하라는 취지다. 지난해 10월 교육감들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하라며 한때 편성을 거부했는데 이런 상황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얘기다.
교육청들은 당장 “시행령을 법 위에 두는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유치원과 보육기관(어린이집)을 묶는 ‘유·보 통합’을 추진 중이라지만, 아직 어린이집은 시·도지사 관할로 법률이 정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지방재정교부금은 교육기관에만 쓰도록 돼 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어린이집 지원을 “위법”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법적 근거의 정비, 지방교육재정 확대가 먼저다. 수순이 잘못됐다”고 짚었다.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은 만 5살만 지원하던 2012년엔 4400억원이었지만 2013년 이후 만 3~5살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올해는 2조1000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교부금 총액(39조4000억원)의 5%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은 교부금을 늘리도록(내국세의 20.27%에서 25.27%로) 법을 바꾸자고 주장해왔으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재정난에 정부 정책부터 챙겨야 한다’며 맞서왔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강행할 경우 교육감들과 권한 다툼 등 법적 분쟁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도 교부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부터 편성해야 하면 다른 재량 예산을 깎을 수밖에 없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추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내년 경기지역 초·중·고생 1인당 예산이 66만원쯤 줄게 된다. 과연 학부모들이 동의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지금도 교육청들은 학교안전 등과 관련해 급한 시설비는 빚(지방채)을 내어 충당하고 있고, 학교운영지원비나 문화예술교육·학교체육·영재교육 등 교육활동 지원을 줄줄이 감액한 상황이다. 이런 탓에 초·중·고 교육의 질이 더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교부금을 묶어둔 채 어린이집 예산부터 챙길 경우 상대적으로 유·초·중·고 학생들의 교육여건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형·언니에게 줄 몫을 빼앗아 동생한테 주라’는 꼴이라는 것이다.
교육감 재량 사업인 학교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도 불안정성이 가중될 전망이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교부금의 84%가 경직성 경비다. 무상급식과 복지 예산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오는 29일 제주에서 회의를 열어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수범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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