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아이가 초등학교 때 책가방을 챙겨주는 일이 참 힘들었다. 퇴근해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알림장을 보고 숙제와 준비물 챙기는 걸 놓치곤 했다. 초등 1학년이 지나서부터는 아이에게 거의 맡겨놓다시피 했던 것 같다. 그 바람에 우리집 아이들은 어정쩡하게 갖춘 자립으로 인해 숙제나 준비물을 잊어서 수업시간에 난처한 경험을 종종 하곤 했다. 한번은 아이가 “엄마도 ○○ 엄마처럼 집엄마였으면 좋겠어. 숙제할 때 옆에도 있고, 엄마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데, 그동안 아이가 알게 모르게 겪어왔을 곤욕과 당혹스러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했다. ‘언제쯤이면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스스로 챙기는 습관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고서 그저 아이가 알아서 자기 관리를 잘하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사람들이 불편한 사람들 옆에 잘 안 가려 한다는 게 맞나요?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것은 제 성격이에요. 사람들이 다 나를 안 좋게 봐요. 의지가 없고 잘 삐지고…. 남한테 자꾸 의지하려고 하고 저 혼자 안 하려고 한다고. 그리고 제멋대로 한대요. 근데 사람들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해요. 나도 나한테 짜증나고 화나요. 뭘 하고 싶어도 행동으로 잘 안될 때가 많아요.”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한 아이가 상담실에 오가던 어느 날 자신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초등 6학년 때 소아당뇨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들어왔던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이렇게 쌓여왔던 것 같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귀찮아서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의 부모도 생계를 돌보는 데 매여 있다 보니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순간 함께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규칙적인 운동이나 식사, 식단조절 같은 것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종종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런 아이에게 부모는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기도 하고, 엄마·아빠도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도 했을 터다. 학교에서도 아이의 행동에 대해 ‘무책임하다’, ‘의지를 갖고 자기 스스로 더 챙겨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정과 학교 밖의 세계를 떠돌았고 문제행동은 심해졌다.
이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소아당뇨’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더 악화된 면도 있지만, 이런 일이 이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자기 자녀가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또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단계에 있지도 않은 아이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해 아이를 병들게 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빠서, 귀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의존적으로 키우지 않기 위해 또는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 “이제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때잖아,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이 손에 맡긴 것이 아이에게는 강요와 밀쳐냄으로 여겨지진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못하니?”, “언제까지 엄마가 봐줘야 하니?”라고 하는 말에 아이는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기 쉽다.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점점 더 기대려 하고 혼자서 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를 아이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가슴 아프고 답답해서 무심코 내뱉은 “너 때문에 나도 힘들다”는 말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부모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것들을 요청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은 아이의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고 부적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내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보살핌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절로 알아서 잘할 수는 없다. 아이가 잘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시범도 보이고 안내도 해야 하는 것이다. 성급해지면 안 된다. 아이 고유의 속도에 맞출 필요가 있다. 어떤 아이는 초등 저학년 때라도 스스로 잘 챙기는 반면 어떤 아이는 조금 더 관심이 필요할 수 있다. 요즘 우리집은 내가 저녁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할 때 초등 5학년인 둘째가 식탁에서 숙제를 하며 그날의 일을 쉴 새 없이 얘기한다. 초등 저학년 때 좀 덜 해주었던 일을 지금 마저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원하고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서 다음 과정에는 혼자 힘으로 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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