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현도정보고등학교 인성교육관의 한 강의실에서 5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롤플레잉(역할극) 등을 하며 김성환 교사(경기 양평 조현초·가운데 왼쪽)의 학급긍정훈육법 관련 연수를 받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학교 현장에서 뜨는 학급긍정훈육법
‘친절하게 대하면 애들이 나를 무시하겠지.’
‘단호하게 행동하면 나한테 거리를 둘 거고 나만 외로워질 거야.’
새학기. 학생들도 두려움이 많지만 교사들 역시 두려움이 많아진다. ‘이번 학기에는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만나야 할까?’ 최근 이런 고민을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학급긍정훈육법’이 주목받고 있다. 긍정, 상호존중, 격려 등을 핵심어로 하는 훈육법이다.
‘감정’을 읽는 ‘격려’의 대화
대화 1: “이번 시험에서 만점 맞았다며? 선물을 해줘야겠는 걸. 그래. 이제 아빠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지? 공부를 잘하라는 거야! 아빠 의견을 따라줘서 기뻐. 넌 참 착한 아이야.”
대화 2: “이번 시험에서 만점 맞았다고? 기분이 어떠니? 그래.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한 거야? 그렇구나. 집에서 공부하는 게 잘 맞는 모양이네. 너의 힘으로 방법을 찾아냈구나. 아빠는 너의 판단을 존중한단다. 있는 그대로의 네가 소중해.”
“자, 첫 번째 대화 어떻게 느끼셨어요?”
“부담스러워요!”
비난·처벌에 익숙한 우리 교실
아이 스스로 원칙 정할 기회 주고
공동체 약속·책임엔 단호하게
어겼을 땐 속내 뭐였나 친절하게 묻기
재판관 구실 하며 혼내기보단
실수 격려하고 감정 살펴줘야
교사 ‘긍정훈육’ 잘 이루어지려면
학교 구성원간 존중 문화 중요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현도정보고등학교(교장 한영호) 인성교육관의 한 강의실. 5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둘러앉아 강사로 나선 김성환 교사(경기 양평 조현초)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김 교사가 제시한 위 대화는 ‘학급긍정훈육법’의 ‘격려 대화’의 의미를 말해준다. 김 교사는 “첫 번째는 기대와 평가만 있는 전형적인 ‘칭찬 대화’이고, 두 번째는 아이의 생각, 느낌, 바람(욕망)을 질문하는 ‘격려 대화’”라고 설명했다. “초등 저학년 때는 칭찬을 하면 잘 통합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격려가 담긴 칭찬을 해야 합니다. 저렇게 과한 기대, 평가가 있는 칭찬을 하면 아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남보다 뭘 더 잘했는지만을 주로 보죠. 격려가 담긴 대화를 하면 아이는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 때의 느낌을 기억해 스스로 행동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지난해 9월, 김 교사는 이런 철학이 담긴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 학급긍정훈육법>(에듀니티)을 동료교사(강소현·정유진 교사)들과 번역하고 학생들과의 소통 등에 어려움 등을 느끼는 여러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급긍정훈육법을 알리러 다니고 있다. 지난 2013년. 김 교사는 교사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맞았다. 휴대폰을 이용한 아이들의 말다툼으로 인해 학급규칙이 무너졌고,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 신뢰가 깨지는 걸 봤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책이 제인 넬슨이 쓴 <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 제대로 키우는 긍정의 훈육>(프리미엄북스),(랜덤하우스)이었다. 덕분에 괴롭던 학교생활은 360도 달라졌다.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보상과 처벌 등으로 동기부여를 하거나 문제상황에서 비난, 처벌 등을 할 게 아니라 소속감을 주고, 해결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두 책이 말하고 있는 공통된 이야기였다. 김 교사는 “그전까진 내가 학급 원칙 등을 정하는 데 주도적으로 앞장섰다면 이제부터는 아이들 모두를 참여시켜 학급 원칙을 만들고,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비난이나 처벌을 하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질문을 던지는 식의 훈육 방법을 시도해봤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고 했다.
원칙 앞에 ‘엄격’, 감정 앞에 ‘친절’
심리학자 아들러와 드라이커스의 이론에 기초한 이 훈육법은 영국의 결혼, 가족, 어린이상담가인 제인 넬슨 등에 의해 소개됐다. 흔히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는 것을 ‘훈육’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잘한 일’에 대해 보상을, ‘잘못한 일’에 대해 처벌을 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하지만 학급긍정훈육법에서는 소속감과 자존감 등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훈육한다. 이때 중요한 요소는 바로 ‘단호하면서 친절한 교사의 태도’다.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라는 뜻은 아니다. 김 교사는 “한 인간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약속과 책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하고, 학생들을 대할 때 인간으로서의 인격, 감정에 대해서는 친절해야 한다는 걸 말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는 교사가 정해둔 원칙들이 있죠. 하지만 학급긍정훈육법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 원칙 자체를 학생들이 모두 참여해 정합니다. 이렇게 정한 원칙에 대해 교사는 단호함을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원칙을 어긴 아이가 나왔을 때 대하는 태도에선 친절함을 보여야 하죠. ‘왜 그랬냐?’는 식으로 비난, 조롱하는 방식의 전형적인 훈육을 해서는 안 되고요. 어떤 상태에서, 어떤 기분으로 원칙을 어겼는지 감정을 친절하게 들여다봐줘야 합니다.”
학급 운영, 학생들과 소통을 할 때 이런 방법을 대입해보는 교사들도 나오고 있다. 화성시 반송중 김순희 교사는 미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실습이 많다. 그전까지 실습 활동 중 아이들이 떠들면 “조용히 좀 해라”라고 말했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도 떠드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요”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학급긍정훈육법을 안 뒤 김 교사는 학생들과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모든 학생들이 ‘행복한 수업이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라는 주제로 회의를 하고, 거기서 정한 것들을 교실 벽에 붙여뒀다. 그 원칙에 어긋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교사를 비롯해 교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얘들아 우리 가이드라인 중 ‘경청’이 있었지~”라며 벽에 붙여둔 내용들을 인지시킨다. 교실은 신기하게도 조용해졌다. 김 교사는 “훈육을 하되 아이를 비난하거나 다그치는 방식이 아닌 존중하는 방식”이라며 “아이는 ‘선생님이 분명히 내가 잘못한 걸 지적하는 것 같은데 나를 혼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를 돕고, 긍정적으로 변하도록 도우려는구나’ 하는 ‘존중’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했다.
현도정보고 조환문 교사는 학급긍정훈육법을 만나면서 김영원, 오은주 교사와 함께 학급긍정훈육법 공부모임에도 참여한다. 얼마 전에는 싸운 아이들을 지도하다 학급긍정훈육법을 적용해봤다. “너 그 태도는 대체 뭐냐!”라고 화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두 아이가 왜 싸웠나 근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이야기해도 되니?”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어떤 일이니?” 말 안 하겠다고 하던 아이는 차차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많은 훈육프로그램이 드러나는 빙산의 윗부분, 즉 학생의 행동에 대해서만 설명하면서 상벌을 사용해 그 행동을 관리하려 하지만 학급긍정훈육에서는 빙산의 윗부분뿐 아니라 수면 아래 있는 아랫부분에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어른을 비롯해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은 걸 똑같이 되돌려주며 보복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와 교사는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고 실망하지만 아이 마음속에는 ‘난 상처받고 있어. 내 마음을 알아줘’라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학급경영·회의 등에도 접목 가능해
비폭력대화법 등이 대화법에 한정돼 있다면 학급긍정훈육법은 학급경영, 학급회의 등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연결할 수 있다.
여러 방법 가운데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롤플레잉’(일상생활에서의 여러 역할을 모의로 실연해보는 일을 말함)이다. 현도정보고 오은주 교사는 새학기를 맞이해 반 아이들과 롤플레잉을 했다. 아이들의 인사 안 하는 습관 때문에 시도한 일이다. 한 학생에게 앞에 나와서 인사를 해보라고 하고 첫 번째 인사를 할 때는 눈도 안 마주쳤다. 두 번째에는 “어 그래~” 정도로 받았다. 세 번째에는 인사하기도 전에 “야~방학 잘 지냈니? 어땠어?” 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물어봐줬다. “첫 번째는 너무 기분 나빴고, 두 번째는 적당히 기분 좋았고, 세 번째는 관심 가져주니 정말 고마웠어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오 교사는 “얘들아. 선생님도 똑같아. 복도 지날 때 인사들 많이 해줘요”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인사 좀 해라’라고 지시를 했을 텐데 입장을 바꿔서 다른 사람 감정을 들여다보게 했어요. 아이들이 왜 인사가 필요한지 바로 알더라고요.”
안산 진흥초등학교 조희정 교사의 교실에는 ‘생각의쉼터’라는 특별한 공간도 있다. 아이들을 대할 때 단호한 성격이 강했던 조 교사는 스스로 “화가 나면 사물함 뒤에 나가 있어!”라고 ‘부정적 타임아웃’을 해왔다. 요즘은 반대로 ‘긍정적 타임아웃’을 하고 있다. 생각의쉼터는 화가 올라왔을 때 잠시 진정하거나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학생·교사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간이다. 부정적 타임아웃이 ‘그동안 네가 한 일에 대해 생각해보렴’의 뜻을 담고 있다면 긍정적인 타임아웃은 ‘네가 타임아웃을 하는 동안 기분이 풀리도록 해보렴’이라고 제안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각의쉼터와 관련 규칙부터 시작해 그 공간에 어떤 물건들을 두면 좋을지 등은 학생들이 함께 고민해 결정했다. 조 교사는 “전에는 내가 공명정대한 판사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다”라고 했다.
“학급긍정훈육법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아이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스스로 해결해보고 안 되어 교사한테 요청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판결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야. 너희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야.’”
이런 훈육법이 빛을 보기 위해 중요한 전제조건도 있다. 김성환 교사는 “단호하면서도 친절한 교사의 태도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학교 조직 문화, 동료문화 등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 선생님은 저런 상황에서 왜 저렇게 단호해?’ 또는 ‘왜 저렇게 친절하기만 하지?’ 주변에서 이런 반응을 하며 조롱·비난한다면 교사도 이를 시도하기가 어렵죠. 비단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뿐 아니라 교사와 교사, 교사와 관리자 사이에서도 이해·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아이 스스로 원칙 정할 기회 주고
공동체 약속·책임엔 단호하게
어겼을 땐 속내 뭐였나 친절하게 묻기
재판관 구실 하며 혼내기보단
실수 격려하고 감정 살펴줘야
교사 ‘긍정훈육’ 잘 이루어지려면
학교 구성원간 존중 문화 중요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현도정보고등학교(교장 한영호) 인성교육관의 한 강의실. 5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둘러앉아 강사로 나선 김성환 교사(경기 양평 조현초)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김 교사가 제시한 위 대화는 ‘학급긍정훈육법’의 ‘격려 대화’의 의미를 말해준다. 김 교사는 “첫 번째는 기대와 평가만 있는 전형적인 ‘칭찬 대화’이고, 두 번째는 아이의 생각, 느낌, 바람(욕망)을 질문하는 ‘격려 대화’”라고 설명했다. “초등 저학년 때는 칭찬을 하면 잘 통합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격려가 담긴 칭찬을 해야 합니다. 저렇게 과한 기대, 평가가 있는 칭찬을 하면 아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남보다 뭘 더 잘했는지만을 주로 보죠. 격려가 담긴 대화를 하면 아이는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 때의 느낌을 기억해 스스로 행동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지난해 9월, 김 교사는 이런 철학이 담긴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 학급긍정훈육법>(에듀니티)을 동료교사(강소현·정유진 교사)들과 번역하고 학생들과의 소통 등에 어려움 등을 느끼는 여러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급긍정훈육법을 알리러 다니고 있다. 지난 2013년. 김 교사는 교사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맞았다. 휴대폰을 이용한 아이들의 말다툼으로 인해 학급규칙이 무너졌고,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 신뢰가 깨지는 걸 봤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책이 제인 넬슨이 쓴 <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 제대로 키우는 긍정의 훈육>(프리미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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