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태조 왕건 초상화, 고려 태조 왕건 동상.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지식산업사 제공
초등 국정교과서, 왕건 초상 등 곳곳 오류
역사단체 지적에도 교육부는 ‘모르쇠 해명’
노명호 교수 “동상이 가장 사실적”
역사단체 지적에도 교육부는 ‘모르쇠 해명’
노명호 교수 “동상이 가장 사실적”
“신하 의복을 입고 있다고 지적받은 왕건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태조왕건의 정부 표준 영정임.”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9일 <한겨레>에 “국정 교과서에 신하처럼 보이는 왕건 초상화를 실은 것도 적절하지 않지만, 교육부 해명은 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공신력이 떨어지는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정부표준영정’으로 정해놓고는 정부가 인정했으니 국정 교과서에 실어도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는 지적이다.
발단은 7일 역사교육연대회의가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 교과서인 <초등 5학년 2학기 사회(역사)>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한 기자회견이다. 배 부소장은 이 자리에서 “85쪽 ‘태조 왕건 초상화’의 모습은 왕이 아니고, 복두건은 주로 신하가 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언론이 이 초상화를 국정 교과서 오류 사례로 소개하자 교육부가 해명자료를 냈다.
태조 왕건은 아들인 광종 때 만들어진 ‘고려 태조 왕건 동상’이 1차 사료로 남아 있다. 이를 보면, 태조는 복두건이 아니라 중국 황제가 쓰던 통천관을 쓰고 있다. 나신인 청동상에 황제의 옷을 입혀 제례를 지냈으리라 추정되는데, 전문가들은 황제의 옷은 정부표준영정보다 채도가 낮고 화려하다고 지적한다.
‘정부표준영정’ 제도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이후 2014년까지 90여개의 표준영정이 지정됐다. 왕건은 1999년에 지정됐다. 배 부소장은 “태조 왕건 초상화는 이길범 화가가 그렸는데, 이 분이 정조 표준영정도 그려서 왕건과 정조 얼굴이 흡사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겨레>는 2004년 국내에 처음으로 ‘고려 태조 왕건 동상’을 소개한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한테 9일 자문했다. 노 교수는 “1992년 북한에서 발굴된 ‘고려 태조 왕건 동상’이 왕건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표준영정은 화가가 상상으로 그렸을텐데 더 정확한 자료가 나왔다면 다시 그리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국정 교과서는 왕건 표준영정을 쓰고, 검정 교과서는 청동상을 쓴다. 어느 게 나은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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