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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무기력한 아이들 요리·목공 등 배우며 새로운 삶 모색

등록 2015-10-12 20:09수정 2015-10-19 17:52

지난해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1학년 대상 문화체험 로드스쿨링 프로그램으로 전주를 방문한 학생들이 비빔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은형 교사 제공
지난해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1학년 대상 문화체험 로드스쿨링 프로그램으로 전주를 방문한 학생들이 비빔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은형 교사 제공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
교실 한쪽 벽면 선반에 색색의 그릇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맞은편에 미니 오븐과 찜기도 보인다. 교실과 이어진 바깥 테라스에 나가자 테이블이 몇 개 있다. 멋스러운 식탁보 위로 식탁매트와 커피잔, 접시가 세팅돼 있고 그 옆에는 화분도 놓여 있다. 공간을 둘러싼 흰 벽면에 ‘해피 레스토랑’이란 영문 글자가 눈에 띈다.

교과 수업 위주의 기존 학급과 달리
다양한 체험 통해 학업중단 예방 나서
심리치유하고 꿈 찾게 돕는 교실
전국 1300여곳서 운영중
원하는 학생 누구나 참여 가능
교사 의지에 따라 교실 운영 천차만별
인력 문제나 낙인효과 등 한계점도

웅상고 대안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목공소에서 의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승주 교사 제공
웅상고 대안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목공소에서 의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승주 교사 제공
지난 1일 찾아간 대전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교사 체력단련실로 쓰이던 공간을 ‘대안교실’로 탈바꿈시켰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직접 요리해 교사와 학생을 대접한다. 대안교실 수업 중 하나다. 이곳에 온 학생들은 학업중단 위기에 처한 학생들이다. 분노조절 장애를 겪거나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도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대안교실을 찾은 15명의 학생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김은형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이곳에 온 뒤 요리를 배우며 자신감도 생기고 폭력성이나 무기력함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가정 형편이 열악해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김 교사는 처음에 이런 학생들에게 빵과 쿠키를 만들어 줬다. 그러다 대안교실 학생들과 레스토랑을 꾸미고 전문가에게 요리를 배웠다. 스승의 날 행사를 직접 기획해 교사나 학생을 대접하거나 양로원에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음식을 스타일링 하는 것은 물론 레스토랑의 종류와 시즌별 음식에 따라 어떤 음악이 어울리는지 등 음악의 역사도 배웠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눈총을 받던 아이들은 대안교실 안에서 시나브로 달라졌다.

2학년 김현일군은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욱해서 싸우는 등 친구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실습을 많이 할 거라 생각해 이 학교를 선택했지만 이론 수업이 많아서 흥미가 없었다. “여기서 미니어처 음식이랑 케이크를 만들면서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음식을 만들면서 상상력도 높아지고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고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자신감도 붙었다.”

김 교사는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재료를 접하고 음식 냄새를 맡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며 “제대로 잘 차려진 식사를 즐기는 것은 충만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관계 맺기의 노하우도 배우게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2013년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행동정서검사를 한 결과 62%(장기 무단결석학생 제외)가 약물과 상담치료 등 전문가의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었다. 지난해 자퇴를 하거나 방송통신고로 전학 간 학생도 91명이었다. 일탈행동을 하거나 학교에 부적응한 아이들도 많았다. 정서적으로 결핍된 아이들은 술과 담배에 의존했다.

김 교사는 이런 문제를 알고 난 뒤 담배를 피우러 화장실에 오는 학생에게 입구에 서서 사탕을 나눠줬다. 또 빼빼로데이 때는 담배를 가져오면 빼빼로와 맞바꿔줬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거나 청소를 하면 칭찬스티커를 나눠줘 레스토랑의 떡볶이나 어묵 등과 바꿔 먹을 수 있게 했다. 김 교사는 “먹는 것에 민감하고 집중하는 시기인 만큼 이런 활동 이후 교내 흡연율도 줄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또래관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뇌과학이나 심리 서적을 읽으며 아이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습관이 돼서 문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대안교실의 목적은 무기력하고 일탈을 하는 아이들이 다양한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삶의 패턴을 올바르게 재배치하는 것이다.”

직업체험하며 일과 업무 마인드 모두 배워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기본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학업중단 학생은 6만568명이었다. 교육부는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2013년도부터 대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안교실은 정규 과정대로 교과학습을 하는 기존 학급과 달리 학교 내에서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급이다. 정규 교육과정의 전부(전일제) 또는 일부(부분제)를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직업체험과 심리치료·금연교육·목공 등 수업 내용은 다양하다. 현재 전국 1290개교에 약 2만8000명이 대안교실 수업을 듣는다.

대안교실은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다. 초기에는 학업 중단 위기에 처했거나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주로 시작했지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도 있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웅상고 이승주 교사는 지난해 고3 담임을 하며 회의를 느꼈다. 35명 전원이 밤 11시까지 남아 ‘강압적인’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나중에 입시가 끝나고 따져보니 실제 야자가 필요한 학생은 6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의미를 못 느낀 채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이 교사는 “소수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들러리이고 숫자를 채우러, 실패를 맛보러 학교에 나오는 셈이었다”며 “잘하는 아이들은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교육에 소외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해보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교실을 맡아 미국의 메트스쿨의 ‘엘티아이(LTI: learning through internship-interest)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관련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직업체험 기회를 갖게 한다. 단순한 직업체험 위주의 인턴십이 아니라 ‘배움’에 초점을 맞췄다.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 외에 삶의 현장으로 배움을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2학년 김서빈군은 미용실에서 직업 체험을 하며 미용기술 자격증 학원에 다니고 있다. “처음엔 미용실에서 청소만 시켜서 하기 싫었지만 이것도 배움이라고 생각했고 고객 응대법도 익혔다. 대안교실에서는 항상 새로운 걸 하니까 기대가 되고 학교 오는 게 재밌어졌다.”

이 교사는 “진로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힘을 기르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관리자와 지역을 돌며 아이들이 원하는 곳이나 그들에게 추천할 만한 기업이나 업체를 찾았다.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일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멘토로 삼을 만한 ‘현장 교사’의 인성이나 운영 마인드를 꼼꼼히 따졌다. 교사가 학생과 신뢰를 쌓고 관계 맺기를 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안교실 수업에는 담당 교사뿐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참여한다. ‘움직이는 교실’이라는 콘셉트로 기존의 딱딱한 강의식 수업이 아닌 체험 위주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김군은 “평소 수업시간에 집중도 못하고 잠만 잤는데 이 수업을 통해 선생님들과 친해지고 교과 공부에도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문제아들 솎아내는 곳이라는 오해는 그만

대안교실 운영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대안교실을 문제 학생들을 솎아내는 정도로 인식한다. 담당 교사 혼자 모든 일을 떠안는 등의 부작용도 거론된다. 대안교실 운영 성패가 담당 교사의 개인적 역량이나 관리자 마인드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15년 학교 내 대안교실 운영지원 계획’을 보면 대안교실의 효과적 운영을 위해 필요하면 담당 교원의 업무를 줄여주거나 대안교실 전담강사를 따로 뽑을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한 교사가 기존 학급 담임을 맡아 교과수업도 하면서 대안교실을 전담하는 경우가 있다. 또 전문상담교사가 상담실과 함께 대안교실을 동시에 맡거나 아예 외부 기관에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하기도 한다. 이는 학업중단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배제하지 않고 학교 안에서 끌어안자는 대안교실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인력 배치는 대안교실의 운영에 영향을 미쳐 교육 효과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 때문에 외국의 경우 전문인력을 배치해 운영한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대안교실 프로그램인 ‘핸즈온러닝’은 외부 전문가를 두 명 정도 선발해 대안교실을 전담하게 한다. 미국의 메트스쿨(‘스스로 공부하고 세상과 소통하라’는 모토로 직업교육을 진행하는 도시형 공립 대안학교)도 가이드티처를 따로 두고 프로그램 운영에만 신경 쓰도록 한다.

우리의 경우 그나마 형편이 나은 학교는 수업 시수를 줄여주거나 다른 교사들이 대안교실 수업을 나눠서 맡는 정도다. 고양 무원고 김연지 교사(대안교실 담당)는 “전담인력을 배치해 대안교실 운영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며 “교과 교사보다는 심리상담 치유나 진로 분야 등의 전문가가 맡는 것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교육의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밝혔듯 대안교실은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주는 게 목적이므로 전 학생이 대상이다. 오히려 위기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면 ‘낙인효과’를 낳을 수 있다. 현재 대안교실 운영매뉴얼을 제작 중이며 학교 현장 컨설팅을 하는 학업중단예방 및 대안교육지원센터의 윤철경 소장은 “아직 학교에서 대안교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라며 “기존의 학급에서 수업에 방해되고 무기력한 아이들을 모아놓는 걸로 오해하는 학교도 많다”고 지적했다.

“대안교실이 학교 내 ‘또 다른 섬’이 돼선 안 된다. 학생들이 자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도 중요하지만 담당 교사뿐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 학교 전체의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대안교실을 운영하는 교사들 대부분은 “사실 교사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버거운 부분이 있다. 지역에 대안교실 운영을 지원하는 거점센터를 두거나 전담교사를 배치해서 대안교실 학교를 순회하며 운영하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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