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의 규정 없어 ‘되풀이’
현대산업개발·부산은행 등이 참여하는 아이파크마리나㈜는 2014년 5월 “해운대구 수영만 요트경기장 안에 325실 규모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정화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
학교보건법은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절대정화구역엔 술집이나 오락실, 여관, 호텔 등을 원천 금지하고, 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200m까지에서 절대정화구역 제외)엔 전문가 등 13~17명으로 꾸려진 정화위원회의 찬성을 얻으면 호텔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화위원회는 그해 6월 위원 13명 전원 반대로 아이파크마리나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 업체가 계획하는 호텔이 ㅎ초등학교 경계선으로부터 불과 71m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사업자가 제기한 행정심판이 기각되고, 행정소송 1·2심에서도 사업자가 패소했다.
아이파크마리나는 첫 심의가 기각된 지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다시 심의를 신청했다. 해운대교육지원청은 지난달 15일 다시 정화위원회를 열어 반대 결정을 내렸다. 호텔 위치를 6m 뒤로 하고, 주차장 위치만 일부 바꾸었을 뿐 사실상 원안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이파크마리나는 닷새 뒤 부산시교육청에 또다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부산시교육청은 3일 두번째 행정심판을 연다.
사실상 같은 사안을 놓고 정화위원회 심의와 행정심판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똑같은 안건의 재심의를 금지한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학교보건법, 시행령, 규칙 등 어디에도 재심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다. 사업자가 계획 일부만 살짝 바꿔 재심을 청구해도 동일한 행정절차를 다시 밟을 수밖에 없다.
부산시교육청 쪽은 “행정력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다시 심의하기 위해 외부 심의위원들이 회의에 반복해 참석해야 하고, 심의를 할 때마다 위원들한테 100여만원의 수당 등을 지급해야 한다. 해운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한 달에 두 차례나 심의를 한 적도 있다. 행정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일사부재의 규정을 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파크마리나의 주간사인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지난해 말 관광진흥법이 수도권에서 학교 앞 호텔 건립이 가능하도록 개정돼 우리도 다시 심의를 받아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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