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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빼앗긴 ‘명희샘’과 제자들 “응답하라 1989 마지막 수업”

등록 2016-02-22 20:25수정 2016-02-24 08:03

1989년 강제해직됐던 김명희 교사가 20일 정년퇴임식에 앞서 당시 길원여고 3학년이었던 46살 제자들을 다시 만나 그날 못다 한 ‘마지막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이림 예천여중 교사 제공
1989년 강제해직됐던 김명희 교사가 20일 정년퇴임식에 앞서 당시 길원여고 3학년이었던 46살 제자들을 다시 만나 그날 못다 한 ‘마지막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이림 예천여중 교사 제공
[짬] 정년퇴임하는 ‘전교조 1세대’ 김명희 교사
“나는 정말이지 울지 않았으면 해.” 지난 20일 경북 안동시 가톨릭상지대 두봉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펼쳐졌다. ‘전교조 1세대’로 불리는 19살 여고생들이 46살이 되어 ‘학생’으로 다시 모였다. 27년 전 ‘마치지 못했던 수업’을 끝내기 위해서다. ‘응답하라 1989, 명희샘과 못다 한 14회의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은 안동시 길원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전교조 탈퇴 거부를 이유로 해직됐던 김명희(봉화 재산중) 교사다. 이날 정년퇴임식에 앞서 중년의 제자들과 다시 만난 그는 애써 울음을 삼켰다.

전교조 탈퇴 거부에 수업중 ‘연행’
안동 길원여고 ‘고3’ 35명 등 제자들
정년퇴임 기념 ‘못다 한 수업’ 마련

“너희도 ‘참교육 1세대’ 버거웠지?”
애써 울음 참으며 ‘27년만의 위로’
“다시 해직풍랑…다시 시작할거다”

그해 89년 뜨거웠던 여름, 고3 교실에 전교조 담당 사복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수업 중이던 교사를 교단에서 끌어내렸다. “얘들아, 나를 잊지 마!” 한마디 외침을 남기고 검은색 승용차에 실려 떠나는 그를 여학생들은 “선생님 선생니임~” 애타게 불렀다.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차 꽁무니를 쫓아간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명희샘’을 빼앗겼다.

전국 각지에서 온 제자 30여명이 ‘명희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이림 예천여중 교사 제공
전국 각지에서 온 제자 30여명이 ‘명희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이림 예천여중 교사 제공
“난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너희도 ‘참교육 1세대’라는 타이틀이 혹 버겁고 힘들었던 적 있니?…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니?” 안동뿐 아니라 서울·부산·대구·대전·울산·제주 등 전국에서 마지막 수업을 받으러 온 길원여고 14회 졸업생 35명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교단을 떠나는 스승을 응원하러 온 10대에서 50대를 아우르는 300명가량의 제자들도 눈과 귀를 모았다. “길원 14회 제자들을 생각만 해도 명치끝이 아파온다”는 김 교사는 ‘안녕’ 인사도 못 하고 돌연히 떠나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했다. 그날 경찰에 이끌려 탄 검은색 승용차는 1시간쯤 떨어진 예천의 한천둑에 그를 내려줬던 것이다.

그는 1학년을 맡으면 3개년 교과계획을 세워 가르쳤기에 이날 수업은 ‘채우지 못한 6개월’을 마무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7년 전 독서노트를 주고받으며 진행했던 토론수업은 ‘말하기 표현 수업’으로 이어졌다.

“이듬해 대학에 들어가 학보사 기자 면접에서 ‘왜 선생님이 떠나가야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아무 대답도 못 했습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서 원망스러웠습니다. 참교육 1세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습니다.”(제자 황효순씨)

그때 ‘명희샘’을 빼앗긴 학생들은 미적분 방정식을 푸는 대신 한 달간의 수업 거부와 운동장 연좌농성, 이웃 남학교와의 연대 시위를 벌였다. 충격으로 학교를 관둔 학생도 있었다. 그렇게 ‘혼란의 시절’을 보내야 했던 제자들 가슴에는 ‘명희샘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돌덩이가 얹혀 있었다.

‘마지막 수업’은 1년 전부터 준비됐다. ‘14회 동창모임 밴드’에 ‘명희샘’을 초대해 ‘맞춤법 끝장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4·4조 운율의 내방가사 대결을 펼치는 ‘국어수업 놀이’로 밤을 새울 즈음이었다. 국어교사가 된 제자 박상인씨가 주축이 됐다. 박씨는 “전교조 교사로 활동하면서 해직교사들에 대한 고마움과 부채감을 지녀왔는데 명희샘 퇴임 소식을 접했다. 마지막 수업이 명희샘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해직된 모든 분에게도 위로가 되는 자리였으면 한다”고 했다.

추진위원회가 꾸려지자, 제자들은 저마다 장기를 살려 일을 맡았다. 동요 작곡가인 주유미씨는 선생님께 불러드릴 노래를 만들어 올렸다. 방송작가인 황효순씨는 <그대, 들꽃처럼>이란 200쪽 남짓한 문집의 편집을 책임졌다. 간호학원 원장이 된 박송옥씨는 ‘깔깔 교실’ 오락분과위원장을 맡아 ‘안막 5공주의 칼군무’로 수업 분위기를 띄웠다. 학교 민주화 바람을 타고 최초로 직선제 학생회장을 지낸 이난주씨는 수업 장소를 물색하며 실무를 착착 진행했다. 미국,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살고 있는 제자들은 ‘선생님 사랑합니다’란 펼침막을 든 플래시몹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왔다.

문집에 담긴 제자들의 기억엔 아나운서보다 더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말 한마디의 힘’을 강조하고 ‘그냥요’란 대답을 용납하지 못했던,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끌던 ‘명희샘’이 있다. 김 교사는 특히 한 달에 한 번 <생의 한가운데> <인형의 집>과 같은 여성의 자의식을 키우는 책을 읽히고 아이들과 토론했다. 그는 “400~500권의 독서노트를 1주일간 읽고 답하는 내내 나는 울고 웃으며 밤을 하얗게 새우기를 얼마나 했던지, 90년대부터 오른팔에 마비가 왔지만 놀라기보다 행복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교사의 행복은 수업의 힘”이라 믿는 그는 94년 복직 뒤에도 평교사로 교실 현장을 고집해왔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국어수업 모델을 전파하는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메밀꽃밭에 데려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배창자가 터지도록 크게” 읽히는 식의 들꽃수업과 신문수업 등이 대표적이다.

표현교육을 담은 교단일기 <얘들아, 말해봐>, 문학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등을 펴낸 그는 40년간의 알찬 수업자료들을 묶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타는 국어수업>(창비교육)을 지난 20일 출간했다.

법외노조 판결로 합법화 17년 만에 다시 ‘해직 풍랑’ 앞에 선 전교조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그 무시무시하던 89년을 겪었는데 못할 게 뭐가 있나. 우리는 또다시 시작할 거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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