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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죽음의 헥사곤’ 전형, 흙수저 학생엔 더 가혹했다

등록 2016-03-16 21:25수정 2016-03-17 08:39

[학생부의 배신…불평등 입시 보고서]
(1) ‘죽음의 육각형’ 입시
2016학년도 서울대 수시전형 지원자 6명이 말하는 합격·불합격 이유
2016학년도 서울대 수시전형 지원자 6명이 말하는 합격·불합격 이유

“진짜 우리한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요.”

정해연(가명, 서울 강북 일반고)양은 고등학교 3년 내내 ‘타임 푸어’(time poor: 만성적 시간 부족인 사람)로 살았다. “수능 준비는 1년 내내 해야 하고, 중간중간 내신 대비도 해요. 거기다 교내 토론대회나 경시대회, 동아리 활동, 독서 활동 같은 비교과에도 시간이 엄청 소비되거든요. 다른 거 다 줄이고 잠도 최대한 줄여야 해요. 항상 졸린 상태였죠.” 정양은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일반전형에 지원했으나 1단계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대학 1곳당 전형 개수가 최대 6개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대입 전형 간소화 정책’을 실시했지만, 학생·학부모들이 체감하는 입시 부담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기존의 입학사정관제를 대체한 ‘학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이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강조한 것도 큰 원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한겨레>가 2016학년도 서울대 입시에 지원한 7명의 학생을 인터뷰한 결과, 서울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내신 성적(학생부 교과 성적)과 수능 말고도 학생부, 비교과 활동, 자기소개서(자소서), 면접까지 최대 ‘6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는 수시모집 2개 전형(지역균형선발전형+일반전형)을 100% 학종으로 선발한다.

노무현 정부 입시에 대해 ‘죽음의 트라이앵글(=삼각형, 내신+수능+논술)’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면, 현행 학종은 ‘죽음의 헥사곤(육각형)’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다. 결국 부모, 사교육, 학교 등의 조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고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이른바 ‘흙수저 학생’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비교과 활동…“교수와 함께 논문 쓰는 학교 프로그램 덕봤어요”

“이과 중에선 제가 학생부가 제일 길었어요. 이과인데 문과 활동도 하고, 학교에서 하는 대회는 거의 다 나갔어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갔죠.” 고현석(가명, 서울 강남 일반고, 서울대 수시합격)군은 학교가 제공하는 다양한 비교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학년 때는 국립대 치과병원 교수와, 2학년 때는 국방 전문가와 함께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제연구’(R&E: Research and Education)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흔히 ‘알앤이’로 불리는 이 소논문 활동은 학생들이 대학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고급 스펙’ 가운데 하나다.

현재 학생부에 기록되는 비교과 활동의 종류는 △교내상 수상 경력 △자율 활동(학생회나 체육대회 등 교내 행사 참여 내역)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교내 진로·진학 프로그램 참여 내역) △독서 활동 △교과 영역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교과 영역에 기록하지만 사실상 비교과 활동) 등 7가지에 이른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의 경우 10년 전인 2007학년도에도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는 서류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교과 성적 100%로 1단계를 거른 뒤 2단계에서 반영했으며 반영 비중도 10%(250점 중 25점)에 그쳤다. 하지만 현재 학종 체제에서는 1단계부터 학생부와 자소서, 교사추천서 등을 활용하는 ‘서류평가’를 통해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비중이 훨씬 커졌다.

■ 학생부 기록…“담임선생님이 소홀히 쓴 학생부 탓인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한테 세부능력·특기사항에 제 꿈이랑 연관해서 적어달라고 계속 부탁드렸어요. 수시모집에서 다양한 과에 원서를 냈는데, 선생님이 학생부 쓰실 때 그런 거 감안해서 제가 쓴 학과랑 관련된 내용을 조금씩 다 넣어주셨어요.” 인천 지역 일반고를 다닌 최서연(가명, 인천 일반고, 서울대 수시합격)양은 담임 교사가 자신의 꿈을 충실하게 반영해 작성해준 학생부가 합격에 주효했다고 믿는다.

대학은 학생부를 통해 학생을 1차적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교사가 학생의 능력과 잠재력을 얼마나 잘 드러나게 충분히 기록해주느냐도 합격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현재 학생부에 기록되는 비교과 활동의 경우, 독서 활동을 빼고는 전부 교사에게 기록 권한이 있다. 김다경(가명, 인천 일반고, 서울대 수시불합격)양은 고교 3년 교과 내신 성적 평균 1.08등급을 얻어 전교 1등을 하고도 서울대 1단계 서류평가에서 탈락한 이유가 ‘학생부’ 탓이라고 생각한다. “담임 선생님이 세부능력·특기사항에 5줄 정도 적어주셨는데, 3줄이 단순한 상 이름이었어요.”

100% 학생부 종합으로 뽑는 수시
내신·수능·학생부·비교과·자소서·면접
6마리 토끼 잡아야 해 부담 커져
부모·사교육 도움 힘든 흙수저 불리

■ 자기소개서…“마침표·쉼표 찍을 위치까지 첨삭하는 학원 있더라고요”

자소서는 ‘취준생’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에게도 필수가 됐다. 서울대는 수시모집 지원자 모두에게 자소서를 요구한다. 학종이 아닌 다른 전형에서도 서류평가 비중이 커지면서 대다수 대학이 수시모집 인원의 절반 이상(연세대 60.7%, 고려대 57.8%)에게 자소서를 요구하고 있다.

자소서는 1단계 서류평가뿐 아니라 2단계 면접에서 교수가 참고하는 중요한 전형자료다. 이 때문에 자소서는 학생 혼자 쓰는 경우보다 교사나 부모가 함께 쓰거나 사교육의 도움까지 받는 일이 적지 않다. 곽현(가명, 대구 일반고, 서울대 정시합격)군은 부모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수시모집을 아예 포기했다. 정시모집에 올인해 재수 끝에 서울대에 합격했다. “제가 대구 수성구에서 학교를 다녔는데요, 마침표와 쉼표를 어디에 찍을지까지 첨삭해주는 사교육이 있더라고요. 유명한 선생님들이 있어서, 자소서를 그 선생님한테 지도받으면 원하는 대학에 다 간다고 했거든요. 저처럼 혼자 써야 하는 애들은 경쟁이 안 될 것 같았어요.”

■ 교과…“내신 전교 1등은 기본인 것 같아요”

“학종이어도 일단은 성적이 바탕이 돼야 그다음에 비교과 활동을 보는 것 같아요.” 정해연양은 3학년 1학기 때 밤을 새우고 시험을 보다가 답안지를 밀려 써서 수학이 3등급이 나온 뒤, 3년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던 성적이 하향세로 돌아섰다. “성적이 계속 높거나 아니면 상승곡선을 그려야 좋은 평가를 받는대요. 3등급 나오고 나서 전체적으로 성적이 하향곡선을 그린 게 나쁜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다양한 비교과 활동, 충실한 학생부와 자소서가 있다 해도 합격이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대 학종은 전교 1등 또는 그에 준하는 3년 내신 성적 평균 1등급대의 높은 교과 성적이 보장돼야 한다. 수험생들은 3년 동안 평균 등급을 산출하는 데 1.08, 1.12 등 소수점 이하 두자리까지 산출한다.

■ 면접…“강남 대치동 학원서 면접 대비 했어요”

장영아(가명, 충북 일반고, 서울대 수시불합격)양은 고등학교에서 자연계 수석으로 졸업해 서울대 수의예과를 지원했지만, 수시모집(학종 일반전형)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 질문은 “만약 학생이 보건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시간별, 단계별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서 확산을 방지할 거냐”는 거였다. “지난해 기출문제를 보니까 교과지식을 묻는 면접인 것 같아서 생물 교과서를 공부해서 들어갔는데,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서 되게 당황했죠.”

고교 3년 동안 교과 공부와 비교과 활동을 열심히 해도, 면접 당일 교수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면 3년 노력이 허사가 된다. 서울대는 일반고 위주로 뽑는 ‘지역균형선발전형’의 경우 학생부나 자소서를 토대로 하는 인성면접을 보고, ‘일반전형’은 교과 지식을 묻는 심층면접으로 진행하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자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조력자가 필요하다. 이소연(가명, 경북 일반고, 서울대 수시합격)양은 면접을 앞두고 1주일 동안 서울에 올라와 대치동에 있는 면접 대비 학원에 다녔다. 학원비는 55만원이었다. “지균 대비 면접반이 따로 있어요. 지균은 학생 이름이나 수험번호도 못 알리기 때문에, 제가 지원한 학과 전공에 관련된 개념이나 관심있는 이슈를 활용해서 간단한 인사말을 만들라고 배웠어요. 다행히 교수님이 제 인사말을 듣고 제가 언급한 부분을 주로 물어보셔서 면접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어요.”

■ 수능…“지역균형 지원자는 수능 2등급 이상 압박있어요”

서울대 일반전형 지원자는 면접만 잘 보면 끝이지만, 지균 지원자는 수능을 잘 못 보면 면접조차 볼 수 없다. 지균의 경우 수능 3개 영역에서 1·2등급을 받지 못하면 서류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탈락이다. 또 인문계열의 경우 제2외국어와 한국사를 반드시 응시해야 하고, 자연계열은 탐구과목 2과목은 반드시 서로 다른 분야를 응시하도록 되어 있다.

장영아양이 이과 전교 1등을 하고도 지균이 아닌 일반전형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까다로운 수능 응시 과목 때문이었다. “제가 고1 때부터 과탐을 생물1과 생물2로 준비했어요. 지균을 하려면 같은 과목 1, 2를 보면 안 되거든요. 지균 추천 대상자가 되는지 결정이 고3 여름방학에 나는데, 그때 가서 탐구 과목을 바꾸는 건 좀 불안했어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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