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후 교사의 진로·진학 마중물
지난주 서울 주요 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뒤 반수를 했던 제자가 찾아왔다. 반수에 실패하고 다시 삼수한다고 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그만두려는 이유는 수학과 물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자는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이나 관련 진로를 제대로 탐색하지 못하고 온 것 같다. 차라리 경영학과로 교차지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학생처럼 자신이 다닐 학과 관련 진로의 내용, 특성을 모르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때마침 지난 5일 교육부가 ‘진로교육 집중학년·학기제’(이하 진로교육집중학년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발표해 반가웠다.
진로교육집중학년제란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더욱 실질적인 진로교육·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진로집중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제도다.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한 자유학기제는 학교장이 의견을 수렴해 1학년 1학기, 1학년 2학기, 2학년 1학기 가운데 선택해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게 너무 빠를 수 있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진로탐색 기간을 주면서 연계를 하자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교육부는 자유학기제와 유사한 과정을 다른 학교급에 확대한 것이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와 연계해 우선 일반고 1학년을 대상으로 진로교육집중학년제를 시범 실시하고, 초·중·고로 점차 확산시킬 예정이다. 이 제도는 자유학기제와 달리 중간·기말고사를 다 치러야 한다. 운영 시기도 초·중·고 모든 학년 또는 학기 가운데 하나를 정할 수 있다. 수업 내용도 진로 관련 내용을 재구성해 교과목에 적용하는 ‘교과연계 진로수업’ 운영을 권장한다.
진로교육집중학년제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문제점도 많다. 우선 학교현장에서 진로교육집중학년제에 따른 교육과정 운영 구성이 쉽지 않다. 교육부가 예시한 고1의 집중학기형 수업시간 편성·운영을 보면, 오전에는 교과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오전에 배운 교과와 연계한 진로활동을 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진로교육 때문에 입시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고교의 경우 학교에 따라 파행운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교과연계 진로수업은 필요한 부분이지만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교과 담당 교사의 진로교육 의지에 따라 교육과정 운영에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현재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는 중학교에서도 교과연계 진로수업을 문서상으로만 진행하는 학교들도 있다. 이 때문에 모든 교사 및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 관련 연수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 가운데 하나인 동아리 활동이 진로교육집중학년제를 운영하는 때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예산 부족도 문제다. 기존에 지원받은 중학교의 지원비를 진로교육집중학년제 운영으로 초·중·고교에 지원한다면 부족한 예산으로 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진로교육집중학년제 운영을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 및 전문가 초대가 필요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실제 운영은 교실 안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질 우려도 있다.
자유학기제 도입 때 나온 문제들이 진로교육집중학년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우려도 크다. 학교별 1명 정도의 진로전담교사가 체험할 곳을 선별하고 강연 준비 등 많은 부분을 기획하기에는 업무가 많다. 맞춤형 진로탐색 기회를 제공하려면 학교에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 및 기업체에서 교육기부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횟수 및 참여 가능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농산어촌지역 학교에서는 차량 지원 등이 필요하다. 대학의 고교연계 진로교육도 대학별 역량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농산어촌지역에는 지역 소재 대학이 없어 중·고교와 연계프로그램을 지원하지 못하거나 지원이 있어도 한정적일 수도 있다. 특목고·자율고를 제외하고 일반고만 시범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진로교육에 고교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레밍’이라는 쥐는 선두에 있는 쥐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면 다른 레밍들도 뒤따라 뛰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레밍효과’라고 한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진로진학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극소수의 대학과 선호학과에 쏠릴 수밖에 없다. 고교 진로교육의 목표는 ‘개인 진로 디자인 역량강화’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진로교육집중학년제가 잘 활용되기를 희망해본다.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 문산고 교사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 문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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